마음을 삽니다
장양숙 지음 / 파지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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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철부지 어린아이였던 주인공은, 외삼촌의 짧은 휴가 복귀가 못내 아쉬웠다. 집에 있으라는 엄마의 엄포에도 가는 외삼촌이 아쉬워 신작로까지 따라 나갔다 엄마의 꾸지람에 외삼촌에 품에 안겼다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군 트럭에 그만 치여 사고가 난 것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고, 내 새끼 죽네..." 흐느끼던 엄마의 목소리가 작아지며 의식을 잃었다.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가 절단된 채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 그때까지는 절단된 다리가 현실이 아닌 줄 알았다. 그동안 동생에게 빼앗긴 부모의 사랑이 자신에게 집중된 데다가 병문안 온 손님들의 과자 바구니가 더 탐났던 것이다. 퇴원하던 날, 내 다리를 붙여 주지 않으면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여섯 살의 꼬마 소녀의 울부짖음에 부모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퇴원 이후 의족을 맞추었지만 익숙지 않았고, 굳은살이 배기지 않았기에 고통이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거기에 잘린 다리에 고름이 잡히며 그 고름을 짜내려 엄마와의 사투가 이어진다. 너무 아픈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녀를 달래며, 함께 죽자며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 때문에 아픔을 참고 견뎠다.

하루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데 외삼촌이 갑자기 선물 한 바구니를 사들고 나타났다. 삼촌보다는 선물 바구니에 온 정신이 팔렸던 소녀는 그게 삼촌의 마지막 방문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자신 때문에 조카의 다리가 잘렸다 죄책감을 가졌던 외삼촌은 그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한편, 소녀의 잘린 다리를 볼 때마다 아빠는 엄마와 외갓집 식구 탓을 하며 부부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고단했던 삶과 남편의 꾸지람에 속상한 엄마는 그녀와 함께 방죽에 빠져 죽을 다짐을 했지만, '저 어린 것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하며 체념했다고.

​초등학교 시절, 남들과 다른 모습에 차츰 자신감을 잃어가던 소녀는 외부 세계와 단절을 택했다. 간혹 친구들의 호의와 친절로 외부 세상에 나올 때도 있었지만 세상을 보는 부정적인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지만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사로잡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서 뒹굴뒹굴하곤 했다. 그런 그녀가 못마땅했는지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런 년 안 잡아가고..." 하는 엄마의 한탄 소리에 슬슬 자신이 한심해지곤 했다. 마침 장애가 있는 그녀에게 선 자리가 들어왔는데, 애가 둘 딸린 홀아비라든지 아니면 장애를 갖은 사람뿐이었다. 그런 부모가 원망스러웠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자신을 사랑해 주고 경제적으로 독립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남편은 한쪽 다리가 마비되어 목발에 의지해 걸었지만 자신의 사업을 꾸리고 있기에 결혼을 생각했다.

​신혼의 단 꿈에 빠져 있었지만 바라던 아이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평소와 다른 느낌에 병원을 찾았더니 임신 4주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집으로 향하지 않고 바로 남편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레 방문한 그녀를 본 남편의 얼굴에는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장애인 부모를 두어야 할 아이가 불쌍하기도 했고, 아이가 크면서 비장애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아이를 품에 안으며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해 달라고, 빌고, 빌고, 또 빌었다.

남편이 하던 액세서리 사업은 규모가 작았지만 꽤 안정적이었다. 신문사 기자를 하던 친구가 생활 정보 신문사를 하면 광고비로 때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에 남편은 사업을 정리하고 생활 정보 신문사를 차렸다. 하지만 실상은 밑빠진 독에 물 붙기였다.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넣고도 직원 월급 줄 돈이 없어 지인들과 친정에 손 벌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결국 신문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남편과 함께 보따리 행상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남편은 몸이 불편해 물건을 팔러 다닐 수 없었기에, 가장의 역할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삶이었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점포를 돌며 보따리를 풀며 장사를 시작했다. 한 번도 영업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절박함이 그녀를 이곳저곳으로 이끌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나 할까? 행상을 위한 차가 고장이 나고, 도둑이 들고 심지어는 내일 물건 살 돈도 잃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삶이 그녀 앞에 펼쳐졌다. 그래도 그녀만 바라보는 가족들이 있기에 그녀는 죽음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넘어지면 안 되는 삶이다. 남편이나 딸아이가 보기에 용감하기만 한 나는 절대로 넘어지면 안 된다.

행상으로 꾸려 가던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돈이 모두 떨어졌는데 집이 은행에 압류된 상태에서 이자를 연체하면 집이 넘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장 지인들에게 부탁을 해야 할 처지였지만 통화를 위한 공중전화 요금 100원도 없었다. 차를 이 잡듯 뒤져 겨우 100원을 찾아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려다 공중전화 옆에 놓인 생활 정보지의 일일 학습지 교사 모집 구인 광고를 보고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았다. 학습지 영업의 첫 번째 난관은 낯선 집의 문을 두드려 열어 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 건의 계약이 절박했던 그녀는 염치 불고하고 직진을 선택했다. 첫 출근 날 여섯 시간을 넘겨 겨우 한 건의 계약을 성공시키며, 1일 1계약이라는 그녀의 의지가 불타기 시작했다. 첫 계약을 성공하고 나니 자신감이 200% 상승했다. 비록 다리를 절름거리고, 말은 어눌하고, 유아 교육에 대한 지식도 많지 않은 내가 오로지 가족을 위한 마음 하나로 해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열한 삶을 시작한 그녀에게도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학습지 지점의 지점장까지 오르는 성공의 길도 열렸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뿐, 부끄러움도 창피함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건강한 여자였다.

팀장이나 지점장으로 일하면서도 주위를 챙기기 위해 열심이었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는 말투에 상처를 받은 사람도 간혹 있었다. 그때의 일을 기억하며 상처받고 퇴사한 직원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연락을 한다. 그런데 퇴직한 직원이 이전보다 더 좋은 조건에 내근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를 통해 텔레 마케터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절뚝거리며 외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급여도 더 많은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학습지를 그만두고 이직을 결심하였다. 텔레 마케터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그녀의 절박함 때문이었는지 적응에는 문제가 없었을뿐더러 이전 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으며 일을 해나가게 된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일과 사업의 부도로 인해 그녀의 삶도 이리저리 휘둘린다.

누구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남을 흉보지 않는다. 혼자만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짜 부끄러움은 장애를 장애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이다.

40대 후반 갑작스럽게 찾아온 갱년기. 그동안의 삶이 허무해지고 마냥 죽고 싶고 눈물만 나왔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기에 속으로 삭히는데도 쉽지는 않았다. 하루 시간을 내 여동생과 함께 교외의 기도처를 찾았다. 마냥 울며 기도하며 하루를 보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동생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프다는 비명만 나왔지만 구석구석 동생의 사랑이 전해지며 차츰 삶의 의욕을 다시 찾았다. 그렇게 하루 만에 갱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한 것은 영업이라기보다 삶을 견딘 것이었다.

어느덧 60대를 향해가는 나이에 이르렀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윤택하지는 않다. 하지만 남편은 목회의 길을 걷고 있고, 사랑스러운 딸은 이십 대 후반으로 잘 성장했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삶, 힘든 삶이기에 장애라는 굴레가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지난 난들은 우울했고, 그래서 난 방황했다. 그건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할 어린 장애인들을 위해 장애인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꿈은 생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돈은 얼마나 필요할지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우선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급선무라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실패만 할 때는 두렵고 무서웠던 세상이었다. 무엇인가를 해내고 보니 어렵고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행복했다. 성취감이 나를 살아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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