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 어느 수의사가 기록한 85일간의 도살장 일기
리나 구스타브손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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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이중적인 동물이다.

사람과 친한 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 부르며 끔찍이 아끼지만 다른 동물에 대해서는 잔인하기 짝이 없다. 동물 복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기업들의 광고를 보며, 과연 그들은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 자유를 보장하는지 의문스럽다.

그들이 말하는 복지란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국가가 정한 합법적인 상태로 죽이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 역시 동물 복지를 위해 일하고 싶은 수의사가 가축 도축장에서 일하며 써 내려간 85일간의 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도축장에서는 수의사가 검사를 마쳐야만 도축이 시작된다. 수의사의 검사가 늦으면 전체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는 문구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동물을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닌 하나의 제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생명을 죽여야 한다는 끔찍한 사실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전체 시스템이 그만큼 늦어지고 생산성이 저하됨으로 인해 기업의 실적이 악화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 역시 자신들이 하는 일을 그냥 하나의 프로세스로 여기면서 차츰 현실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때린다. 돼지들은 누구에게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 고기가 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기 위해 여기 와 있을 뿐이다. 그런데 고기가 되러 가는 길에도 매를 맞는다.


수의사인 작가는 몰이꾼들이 돼지를 심하게 때리는 것을 보며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죽음의 냄새를 맡은 동물들은 가스실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틴다. 이들도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항변이다. 결국 '도축해도 좋다고 서명을 해주는 사람'이 바로 수의사 자신이기에 그 끔찍한 결정에 자신의 일말의 죄책감을 갖는다.

47일 정도 지나자 작가 자신도 이곳에 적응해 가는 모습에 불쾌감을 갖는다.

한편, 시설도 열악하고 남들이 터부시하는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만 20여 년이 넘게 일한 동료들을 만나며 그들이 일을 버티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한다. 처음엔 다들 몇 달만 버티려 일을 시작했지만 가정을 꾸리고 벌어먹여야 할 자식들이 생기며 그 일을 버틴다고 한다. 또, 일은 고되고 지겨울지라도 동료들이 있기에 일을 견딘다는 끈끈한 우정도 알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들의 아버지들을 생각나게 한다. 하루에도 사직서를 던지려 하지만 자식들 얼굴과 생명줄 같은 월급봉투에 오늘도 한없이 작아지는 우리의 아버지들 말이다.


어쩔 수 없어요. 살다 보면 그냥 고개를 돌려야 할 때도 있어요. 우리가 다 바꿀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취직 후 61일째, 그녀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녀석들이 억지로 가스실로 밀려 들어가는 광경을 나는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나는 얼마나 자주 서명하여 그러라고 허락했던가'

동물 복지를 위해 도축장에 취직했지만 그곳에서 그가 한 것이라고는 도축 시스템의 일부 그것도 매질과 돈사 바닥에 대한 이의 제기뿐이었다. 그녀는 가스실 앞에서 동물들이 느낀 최대의 불안과 공포를 직접 보았지만 이 시스템을 바꿀 힘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시스템에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62일 만에 사표를 제출한다.

우리는 '식탁에 올라오는 다른 생명들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을까?

돼지, 닭, 소, 어류, 다양한 식물들 역시 하나의 생명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의 죽음에 대해 희생에 대해 존중해 본 적은 과연 있었을까?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이중잣대를 가지고 동물과 식물을 봐 왔음을 깨닫고 그들의 희생에 대해 잠시 고민에 빠져본다. 그렇다고 딱히 비건이나 동물 보호론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잠시라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존중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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