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미터O
이준영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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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판타지 소설에 녹여냈다. 방사능 오염으로 지구는 더 이상 생명이 존재하기 어렵게 된 가운데 외부와 단절된 구원의 방주가 남았다. 그곳에는 30여 명의 인류가 태양광 발전과 인공지능 로봇에 의존한채 생존하고 있지만 방사능에 노출되어 정상인 후손을 생산해 낼 수 없다. 이렇다 할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에서 이들의 목적은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의사이자 과학자가 만들어낸 쾌감기에 의존해 하루를 버텨나가는 것뿐이었다.

이에 반해 방주의 전력 생산량을 총괄하는 엔지니어인 주인공 조슈는 모두의 생존을 위해 전력 생산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간다. 이들에겐 필수이지만 조슈 말고는 이에 딱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황무한 지구에도 아직 자연현상은 유지되는지 엄청난 태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태양광 패널이 부서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전력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지자 사람들은 모두 조슈를 비난하는 가운데 태양광 패널 복구를 위해 뜨거운 광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이때 우연히 전혀 새로운 기계종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이름은 '이브'

기계종들을 움직이게 하는 인공지능을 확인하기 위해 명령 프로토콜이 저장된 단말기를 이용해 접속했지만 화면에 뜨는 것이라고는, 파라미터 O:

가 전부였다. 그리고 명령어를 입력하는 커서가 조용히 깜빡거리고 있었다.

인공지능을 창조한 사람이 인공지능 로봇에게 어떠한 명령도 주지 않은 채 살아가라고 한 것이었다. 어째 지금의 인류와 비슷하지 않은가?

무한대의 시간이 흐른다 해도 진화 이론으로는 생명 창조의 신비를 밝혀낼 수는 없다. 창조주가 있다는 말인데 과연 있기는 한지 의심까지 든다. 기계종 이브는 기존의 지식과 조슈를 통해 받은 새로운 명령 '일하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다. 일하기를 통해 학습하며 자기 분열을 통해 종족을 번식한다. 이브족들은 과학자도 배출하고, 생산자도 만들어내고, 군인도 만들어낸다. 창조주의 뜻에 따라 그들의 목적에 맞게 번식하며 삶을 살아간다. 마치 인간들처럼.

조슈는 이브의 존재가 무척 궁금했다.

이곳에 있는 인간 이외에 누군가가 바깥세상에 존재하며 이런 기계종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이브족들 중에 정탐 부대를 만들어 점점 더 멀리 정찰을 나가며 지도를 만들어 가던 중 정찰대 1개 소대가 적에게 납치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브족과는 다른 기계종이 외부에 존재했던 것이다. 기계종들은 사람의 무릎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사람들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자신의 피조물과도 같았던 이들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에 조슈는 직접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이브와 기계종들이 탄생했던 판게아 연구소를 찾아내게 되었다. 그곳에서 진행되었던 인공지능 기계종들의 탄생과 파라미터 O의 목적에 따른 종족을 알게 되었다.

A부터 시작된 인공지능의 실험이 단계를 거치며 마지막 EV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었다.

과연 이런 기계종들을 누가 만들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다시 인류가 머물고 있던 방주로 되돌아온다.

인류의 최고의 기술자이던 조슈의 어머니 가야, 그녀는 방사능 때문에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뇌를 스캔하여 인공 지능을 만들고 있었다. 이것이 신에 대한 도전이라는 종교 재판으로 결국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의사는 그녀의 뇌를 적출해 인공 지능과 연결했던 것이다. 인류는 이브족이 생산하는 전력과 도움으로 넉넉히 살수 있게 되었지만, 이를 못마땅히 여기는 목사는 이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긴다. 역시 소설에서도 종교가 문제다.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남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신념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또 한 번 느껴진다. 목사는 조슈의 제자인 엘라를 꼬드겨 이들을 이간질 시켜 갈라 놓았다. 그리고 구형 기계종을 이용해 기형아들과 죄수들을 살해하며 동시에 죄를 이브족들에게 뒤집어 씌운다.

이브족을 모두 멸족하기 위한 인류의 계획은 똑똑한 인공 지능에게 포착된다. 하지만 조슈는 엘라와의 갈등 속에 감옥에 있는 상황 속에 이브는 종족을 지키기 위해 방주에서 탈옥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브족이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었던 인류는 조슈를 이용해 이브족에게 다가서는데...

과연 인류는 생존을 위한 인공 지능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신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소설을 읽으며 창조자 조슈와 피조물 이브를 오가며,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스펙터클한 전투나 반전은 없지만 인류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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