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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 - 윤보인 장편소설
윤보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4월
평점 :
붉은색의 강렬한 표지에 흘림체 제목 '재령'.
표지와 제목을 처음 봤을 땐 퇴마술이나 공포물을 소재로 한 소설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 내용은 한국 전쟁 전 황해도 재령에 살았던 명리학자인 할아버지와 그 아들들, 그리고 손녀의 이야기다.
명리학? 이게 뭐지? 다들 생소한 단어이지만 사주팔자라면 다들 한 번은 들어봤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주 명리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언제쯤 돈을 버는지, 과연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성공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사실 점 집이나 타로 점을 치는 이유가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혼자 걸어간 다는 것만큼 두렵고 겁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7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오빠, 하지만 열여덟이란 나이에 산에서 실족해 죽음을 맞았다.
이란성 쌍둥이 동생 주인공은 이 사실을 미국에 살고 있는 큰아버지에게 전화로 알린다.
엄마는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인해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이다.
먼 이국 땅에서 조카의 뒷수습을 해 준 큰아버지는 주인공에게 생년월일을 물어본 후, 한참 후에 미국으로 건너 올 것을 제의한다. 마땅히 한국에서도 기댈 곳이 없었던 주인공은 큰아버지의 호의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간다. 큰어머니가 하는 푸드코트에서 일을 하며 미국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의 삶엔 슬픔과 우울로 점철되었지만 그곳에서 주말에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령'이라는 청년을 만난다.모생애를 자극하는 듯한 평범하지만 조용한 청년인 재령, 할아버지의 고향과도 같은 이름이기에 그녀는 청년에게 끌린다. 하지만 재령을 짝사랑하고 소유하려는 명진애의 일방적인 사랑 때문에 접근하지 못한다.
이렇게 소설은 주인공과 재령의 사랑, 그리고 재령과 명진애의 사랑 이야기로 흘러간다.
중간에 큰아버지의 가정 이야기와 명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섞어가며 독자들에게 관심을 이끌어낸다.
사실 명리학은 오랜 세월 동안의 통계를 바탕으로 사람의 미래와 삶을 예견하는 학문이다.
흔히 심심풀이나 새해 운세를 점치기 위해 찾아가지만 왠지 불길한 소리를 들으면 찜찜한 건 사실이다. 또 못된 술사들은 이를 근거로 사기를 치기에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미신에 가깝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명리학에 대한 소개와 세세한 이론을 보며, 내가 태어난 시간이 언제인지 궁금해진다.
소설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 엇갈리며 마무리된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명리학 이야기라 조금은 색다른 시각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비 오는 토요일 무료함을 한 방에 날려준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