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식탁 -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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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정치적인 식탁"이란 제목을 보는 순간 책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함께 밥 먹는 행위는 다른 생명을 나눠 먹으며 서로가 연결되는 시간이다. 또한 먹는다는 것은 살아 있는 나와 죽은 타자의 만남이다. 다른 대상을 죽이지 않고 나를 먹일 수 없다. 필연적으로 시체와 만난다"와 같은 색다른 시각으로 식탁을 소개한다. 어? 이거 조금 썬데!

또 작가는 책을 먹는 여자, 만드는 여자, 먹히는 여자,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 6장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한다. 소제목도 만만치 않다.

먹는 여자

한동안 된장녀, 김치녀 등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아침 해장국은 노동자 서민의 밥상이고, 브런치는 사치한 된장녀의 밥상이 되었다.

노동자의 남성적 이미지와 소비의 여성적 이미지라는 편파적인 구도가 이런 관념을 만들지는 않았을까?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은 가정에서 남편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낳은 산물이지 않을까?

만드는 여자

과부 삼 년이면 쌀이 서 말이고, 홀아비 삼 년이면 이가 서 말이라는 옛말이 현재 진행형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성의 요리가 주로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불 노동이라면, 남성의 요리는 전문 직업인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직업여성은 대체로 저임금과 업무에 대한 무시를 동반한다. 성차별을 기반으로 닦은 전통은 타파해야 할 폐습이다.

먹히는 여자

식과 성이 인간의 일상에서 밀접하다 보니 성을 먹거리에 비유하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있기 마련이다.

여성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깊은 무의식을 드러내는 언어가 바로 여성을 '먹는다'라고 하는 표현이다. 여성의 몸은 먹히는 고기이자 보이는 꽃이다. 여성은 식용과 관상용 사이를 오간다.

여성에게 남성이 끊임없이 밥을 강조하는 태도는 정확히 권력의 표현이다.

여성에게서 가장 필요로 하는 두 가지가 밥과 섹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남성적 시각과 남성 위주의 편파적인 관습에 대한 고발이다.

나 역시 남자이기에 이런 관행과 요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책을 통해 그릇된 사회의 시각과 통념을 작가는 꼬집어 지적한다.

가장 평범한 일상에 스며든 가장 익숙한 권력이 사실은 가장 흉악한 착취이자 무시라고.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사람이며, 여성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성장한 남성 우월주의는 더 이상 인정받을 수 없다고. 남성들이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과 부조리에 대한 고발뿐만 아니라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한계도 같이 고발한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인생,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가가 가장 핵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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