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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격자 -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전기
앙투아네트 메이 지음, 손희경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하나의 민족이 이념 갈등으로 원수가 되어 70년이 가까이 전쟁을 했던 곳, 한반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냉전이 결국 작은 땅덩어리 한반도에서 확전을 넘어 세계대전 직전까지 불거졌다. 왜 이 미친 전쟁이 계속되었을까?
전쟁의 현장을 누비며 기사를 작성해 전 세계에 소식을 알리던 종군 기자.
그들에게도 총알은 공평하게 날아가기에 항상 죽음을 목전에 두었기에 종군 기자는 대부분이 남자였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되어 온 종군 기자의 삶에 젊고 아름다운 금발의 아가씨가 뛰어들었다.
마거리트는 1941년 대학을 막 졸업하고 트리뷴 신문사에 입사한다.
그리고 1944년 2차 세계대전을 취재하기 위해 런던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며 기자로서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마거리트가 주목한 것은 나치가 자행한 것과 똑같이 해방군들도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1950년 4월 스물아홉의 마거리트는 도쿄로 발령받았다.
5월에는 이웃 나라 한국에서 4천 년 역사 이래 최초의 총 선거가 실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생긴 공백에 러시아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였다. 공산주의 북한과 자유주의 남한의 경계선이 되어 버린 위도 38 도는 한국의 정치 상황을 깡그리 무시한 지리상의 분할이었다. 그 결과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27일 마거레트는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서둘러 서울에 도착했다. 믿기지 않게도 그날 새벽, 북한군의 탱크가 서울에 출현했다. 피난민들과 함께 한강에 도착해 다리를 건너는 순간 다리가 폭파되었다.
이미 그녀는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 헤엄쳐 한강을 건너 수원까지 걸어서 도착했다.
일생일대의 특종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기 왕복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서 기사를 송고하는 것뿐이었다. '트리뷴' 1면은 '탈출한 기자의 눈으로 본 서울의 함락'이라는 헤드라인과 그녀의 사진을 넣어 대서특필했다. 1년이 다 되도록 전장을 누비며 기사를 작성한 공로로 실제 전투에 관한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그녀가 많은 남자들의 의식을 성장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을 보지 못했을 테고 그런 게 당연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 p.242>
남성의 세계에 겁 없이 뛰어든 그녀에 대한 험담은 전설처럼 남아있다.
심지어는 그녀가 기사를 따 내기 위해 장교들에게 몸을 팔았다는 음해성 험담까지 들려왔다. 이런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그녀는 한국 전쟁의 현장에 남아 소식을 전했다. 팽팽한 힘겨루기 속에 전쟁은 정치적 해법을 찾기 위해 휴전으로 나가고 있었다. 결국 그녀도 지루한 전쟁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베트남 전을 취재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를 죽인 것은 베트남 모래 파리가 옮긴 리슈마니아증이라는 열대 질환이었다.
'전쟁의 목격자' 책은 마거리트 히긴스의 전기로 그녀의 일대기를 기록했다.
한국 전쟁의 참상을 읽기 원하는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참여와 1940~50년대 남성의 편견을 깬 선구자였던 그녀의 삶은 인정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