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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평점 :
직장과 민주주의? 이 두 단어를 연결해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나는 40대 초반으로 95년에 대학에 입학한 x세대이다. 98년 IMF 시절 다행히 군대에 가 있었던 터라 92학번의 취업에 대한 공포는 모른다. 복학 후에는 민주나 통일 같은 구호로 대모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고, 등록금 저지 데모가 주를 이루던 때이다. 또 2002년 월드컵을 앞둔 2001년도에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코스닥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2002년 결혼했고, 시간이 지나 대리, 과장, 차장, 팀장으로 승진했다.
솔직히 직장은 생계를 위해 다니는 것이지 자아실현이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직장은 싫은데도 참고 일하는 곳이다. 직장인들에게 일하는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고, 그 고통을 지불하고 월급이라는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깨닫는 데는 1년이라는 시간이 채 안 걸려 깨달았다. 하지만 직장 민주주의와 같은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성장률 자체가 하락하면서 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넘치는 시절이 되었다. 이제는 일하는 사람이 힘들다고 해도 막 대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너 말고도 사람은 많아." "입사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여차하면 비정규직 데려다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근래에 들리는 위험의 외주화, 409일이라는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비정규직 여성에게 행해지는 성추행과 성폭력, 갑질, ME TOO 등 우리 사회의 전반에서 불거지는 다소 불쾌한 소식에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느끼게 되었다.
현재 한국 기업은 때로는 군대 같고, 때로는 조폭 같고, 어떨 때는 군대와 조폭을 섞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먹고 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 해왔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돈을 버는 시대가 너무 길었다. 우리 경제 상층부를 생각하면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고, '졸부'라는 표현이 입에 짝짝 붙는다.
잘못됐다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솔직히 직장의 하단에서부터 개혁을 할 수는 없다.
힘과 권한이 있는 상부에서부터 이 문제를 자각하고 해결방안과 교육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넓은 의미의 직장 민주주의는 직장 내 위계에 의한 갈등을 줄이고 지금보다 더 수평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금이나 출연금을 받는 공공기관이나 학교, 중소기업부터 교육과 시스템을 갖추면 어떨까?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아무일 없이 버틸 수 있다지만 후배 혹은 자식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은 동일할 것이다. 일하고 싶은 회사, 일을 통해 꿈을 이루는 회사 등등 직장 민주주의는 지상낙원 같은, 출근이 너무너무 즐거운 직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