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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평점 :
아이들이 커가며 교육상 TV를 없애자는 아내의 제안. 스포츠 말고는 TV를 보는 편도 아니기에 흔쾌히 동의해,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TV를 버렸답니다. 그 이후에 생긴 또 다른 습관, 독서와 라디오 청취입니다.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은 광고와 DJ의 멘트가 너무 많아 과감히 채널을 돌렸지요. 채널을 위아래로 몇 번을 돌리다 만난 CBS 음악방송, 그중에서 밤 10시에 듣던 '꿈과 음악 사이에' 방송.
귀에 익은 노래와 차분한 목소리, 들려주는 사연까지 귀에 쏙쏙 들어왔지요. 이후 쭉 채널 고정. 거의 7년째 들어오지만, 꿈과 음악 사이에 방송이 10년이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CBS도 워낙 광고가 많아 짜증 나 청취를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허윤희 씨. 방송에 소개되지 않은 사연과 윤희 씨의 감성을 담아 에세이를 냈다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라디오에서 사연을 읽을 땐 잔잔한 배경음악과 어울리는 노래를 틀어주어 더 좋았었는데, 책에서는 목소리가 아닌 텍스트와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 없다 보니 상상했던 라디오의 감칠난 맛이 다 사라져 밋밋한 느낌이 듭니다. 아쉽!! 실망!!
DJ인 윤희 씨가 방송을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해 어려운 시절이 없었겠다 싶었는데, 방송 초반에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자책으로 방송 공포증이 생겼다는 말에 더 공감이 됩니다. 그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사연과 허윤희 감성이 곳곳에서 묻어나 라디오를 듣는 듯한 상상을 하며 책을 읽게 되네요.
걸림돌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실은 디딤돌이었다. P.155
관계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다. 하지만 내 인생의 코스와 아주 짧은 접점을 가졌을 뿐인 누군가를 우린 생각보다 쉽게 판단한다. 화낼 줄 모르는 사람, 뒤끝 없는 사람. 음흉한 사람..... P.158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아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것이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이든, 인생의 목표가 걸린 일이든. P.164
그저 내 하루의 수고를 이해해주고 흐르는 눈물을 가만히 닦아주는 사람이면 되었다.
고생했어요. 수고 많았어요... 그 짧은 한마디에 담겨있는 온기는 금세 깊숙하게 스며들어 몸과 마음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내리게 했다. P.178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처받으며 살지만, 결국은 나와 다르지 않은 그래서 긴말 필요 없는 이들에게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우리 .... P.231
우린 알게 모르게 사람에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지친 하루를 마감하며 내 편이 있었으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지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고생했어, 수고했어". 이 한마디가 고픈 우리는 위로받고 싶은 바램을 담아 라디오에 사연을 보냅니다. 이렇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들이 마치 내 이야기 같고, 언젠가 겪은 듯한 아련한 추억일 수도 있기에 우리는 라디오에 더 흠뻑 빠져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라디오의 힘이 TV를 뿌리치고 라디오를 켜게 하는 힘이지 않을까요? 지치고 힘든 인생,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가 던지는 그 한마디 위로가 다시 시작하는 힘과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꿈음, 화이팅! 라디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