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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인생 - 쓰레기장에서 찾은 일기장 148권
알렉산더 마스터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어보고
작성한 포스팅이에요.
#폐기된인생

초등학교 시절
숙제였던 이유로
일기를 몇 권씩이나 쓴 적이 있다.
그 일기를 집 외부 창고에 엄마가 넣어버렸고
누군가가 내 일기를 읽었단다.
(비참했다. 내 속내가 다 들켰어!! 소문날까?)
대학 시절
속상하고 울음이 터질 때마다
일기를 썼다.
손은 아파도 눈물 흘리며 꾸역꾸역 썼던 기억이 있다.
(아 다시 보고 싶진 않다!! 어딨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10년 넘게...
아이들을 키우며 남긴 흔적이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육아일기 겸 내 일기를 썼다.
많은 사람들이
읽는 편은 아니나
'전체 공개' 중인 내 일기들은
N사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런 일기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친정아버지도 지금 일기를
몇십 년째 수기로 쓰고 계시지만,
'아빠의 글씨체를 견뎌가며
딸인 나는
아빠의 수많은 일기들을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
가끔 생각 한다.
하물며 나도 이런데
누군가 내 일기를 읽으려 할까?
특별하지 않은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 반복되는
훌륭하지 않은 사람의 생각이 담긴
그런 내 일기를...?
일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은
위에서 말한 '나의 일기'에서 순전히 시작됐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 적었다고 하는 일기가 아닌
쓰레기장에서 찾은 일기장,
148권...
주목받지 않는
폐기된 인생이 담긴 줄 알았던 일기는
그렇게 한 작가의 손에까지
다다랐다.
일기에 드러난
글씨체와 그림,
설레고 흥분한 것들,
겪어낸 실패,
그녀의 키와 생김새,
그녀가 좋아했고,
함께 살던 사람들,
그녀에게 영향을 줬던 이들까지!!
그녀는 쓰는 일을 사랑했다.
그래서 수십 권의 일기를 썼다.
일기에서 얻어낸 여러 가지 정보로
독자들도 일기의 저자(메리아님;Not Marry)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간다.
이 한 인물이
온전히 주인공이 된
책인 셈이다.
쓰레기 속 폐기된 인생이 아닌
책 속에서 그녀는
재기한 인생을 살아가는 듯했다.

4년이 넘는 장시간 동안
저자, 알렉산더 마스터스는
'메리 아님이란 한 인물을
치열하고 과감하게 파고든다.
여러 전문가(공인 필적 학자 협회장, 사립탐정, 음악가 등)를
이 일기 프로젝트에
투입시킬 정도로,
이 남자(알렉산더 마스터스)
그야말로 한 인생의 일기에 진심인 남자다.
이 과정이 마치 소설과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한데
그러면서 주어지는 단서와 반전은
또 추리소설급이다.
책을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구나
감탄스럽기도 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번사는 인생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특별한 사람들을
선망한다.
(아니라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특별해지기 위해
우리는 어쩌면 인생을
고되고 치열하게 살기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도
좋아하는 것과
도전하는 것으로
삶을 이끌어가고 싶어 했다.
누군가처럼 성공하고
특별한 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실패했고,
칭송보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렇게 저렇게 인생을
끌고 갔다.
우리는 (위인) 전기의 주인공,
소설 속의 주인공에
매료되고
그들의 성공과 화려한 삶에
대리만족이라도 해서
작은 보상이라도 맛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크나큰 괴리감을 느끼곤 한다.
이 책은
반대의 책이다.
성공하지 않은,
주목하지 않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담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담긴 책 말이다.
그녀는 일기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일기는 그녀의 낙이자 삶이었고
구원이었다.
그게 그녀가 쓰는 이유였다.
그녀의 '씀'을 보고
나의 '씀'도 위로와 공감을 받았다.
지금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하다는 건 좀 과하네요. 이전처럼 비참하진 않아요.
언제 그렇게 달라졌나요?
여기 살면서부터요. 나이가 들면서부터요. 세상일을 받아들이게 되죠.
그러지 말았으면 좋았을걸. 저러지 말았으면 좋았을걸,
하지만 지금은 그래 봐야 할 수 있는 게 그리 없어요.
더이상 후회하지 않는 순간이 오는 건가요?
후회해봐야 별 의미 없죠.
안 그래요? 여기서 난 예상했던 것보다 잘 살고 있어요.
p.326
한 사람이 살아감에 따라
깎이고 깎여
점차 삶을 수용하는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임을
이 문장에서 공감했다.
아마 그녀에겐
일기가 삶을 수용하게 하는 데
큰 힘이 되었을 거다.
일기가 인생을 구원했다!
적어도 발견된 일기장의 저자에겐
그런 것 같아 보인다.^^
일기로
그녀의 삶을 지탱했고,
일기로
그녀란 존재가
그녀와 전혀 다른 삶은 살고 있는
한국의 독자에게도
알려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