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식물 -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이 소중하다 아무튼 시리즈 19
임이랑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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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갑작스럽게 인왕산 자락길을 나선날, 들른 '초소책방'에서 골라 읽은 책이다. <아무튼>시리즈 책들은 기획부터가 신선한데다 주제가 생활과 밀접,친근한 에세이로 가득하다. 읽으면 거의 '재밌게 읽기'는 성공할 만한 책들이라 생각없이 집어도된다. 비치되어 있는 책들이 거의 환경에 관한 책들이었는데, 두께로보나 쉽게 다가기로 보나 이 책이 내게 주어진 시간엔 읽기 좋다고 여겼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전문적이거나 플랜트 러버들이나 보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심심하면 말할 듯한 대사 '난 선인장도 죽인 사람이야!'를 뱉은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해도 식물 이야기는 내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는 아녔다.


3년 전, 키우기 쉽다고들 말하는 고무나무 화분이 첫 대형화분으로 들어왔다. 뭣 모르고 환기시켜준다고 바람 쐬주다가 최후엔 가지 세 개 중 한 가지에 달린 마지막 잎새(?)가 떨어져 버렸다. 나는 남편의 비웃음('뭐야!! 고무나무는 쉽다던데 그 마저 죽인 거야?? 깔깔깔'라고 했지!!!! 잊지 않겠습니다!!!)과 함께 식포자가 되었다. 그러다 이사를 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시로 가지고 오는 화분과 씨앗 그리고 집들이 선물로 받은 각종 화분들이 우리집에 줄을 지어서면서 죽일 수 없어 살리고자 행동을 재개했다. 식물에 대한 짝사랑을 다시 해볼 기회를 갖게 된 낸 거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맞던가? 나는 근 2년간 고추, 상추, 토마토, 수박, 강낭콩, 바질, 해바라기까지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우리집에 들어온 여인초와 스투키는 1년이 넘게 생존 중이며, 수중식물인 스킨답서스, 테이블 야자, 개운죽, 싱고니움까지 쑥쑥 잘 자라게 돌봐주고 있다. 세상에 식물 똥손이란 없다. 키우고 죽여보며 관심을 가져봐야 식물을 키우는 노하우가 스스로에게 베일 뿐이다.


'정말 세상에 쉬운 식물은 없구나.'

식물과 사람 사이에도 분명 궁합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식물과의 궁합은 생년월일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다. 나에게 어떤 식물이 가장 잘 맞는지는 많이 키워보고 또 많이 죽여보며 알아가는 수밖에. p.121


그녀의 이 위로의 말을 2년 전에 읽었더라면 남편의 비웃음에도 콧방귀끼며 두고보라고 큰 소리쳤을 텐데 아쉽다. 식물에게 죄책감을 가득안은 쭈구리로 식물에게 몰래몰래 사랑을 베풀다 식물생장에 성공(?)을 이루고 난 지금에야 누구에게나 식물초보 땐 실패담들이 하나쯤은 있음을 알았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안 동식물의 정보는 흥미로웠다. 에세인데 감성적일 뿐 아니라 은근히 지식도 전달해 주잖아!! 비에 질소가 풍부하다니 비가 오는 날에 담겨진 비를 보면 버리기에 바빴는데, 식물들에겐 고로쇠물과 같은 존재라니!! 머리 속에 꼭꼭 기억해둔다. 옮겨심는다고 식물이 성장하던 때마다 다이소에서 흙을 사다 채웠다. 나도 옆 화단에서 흙 좀 퍼오면 안 되나 생각했는데,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된다. 영양부족! 배수불량!!


물 주라는 정보, 흙의 습도를 재는 방법 등. 정말이지 내게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정보였다. 어떨 땐 그 말을 순순히 듣고 줬다가 죽인 적도 몇 번 있고, 손가락을 아무리 후벼파도 이게 건조한 건지 습한 건지 감이 안 잡혔다. '습한 것도 같고, 건조한 것도 같고 그러니 물주자!' 이런 결론만 내렸으니 결국엔 다 죽고 말았지...


테라스에 식물들을 내놓고 키우면서부터 나는 비를 좋아하게 되었다. 번개가 치는 날에는 비에 질소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고 한다. 질소는 비료의 훌륭한 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식물 애호가들은 비를 보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돈 주고 사서라도 식물에게 뿌려줄 영양분이 하늘에서 내리니 비 오는 날이 반가울 수밖에. p.19


초보 가드너들이 식물을 죽이는 가장 흔한 이유는 과습이다. '일주일에 몇 번 물 주세요' 하는 말을 무작정 따르다 보면 식물은 서서히 익사하게 된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마치 먹은 음식이 완전히 소화되고도 전에 더 많은 음식을 억지로 계속 입에 밀어 넣는 꼴과 같다. 흙의 상태를 파악하고 흙이 적당히 말랐을 때 물을 줘야 식물 뿌리가 건강하게 자란다. p.31

초보 시절엔 흙을 돈 주고 사려니 어색했다. 지천에 널린 게 흙인데 산이나 들에서 한 삽 퍼 와서 쓰면 안 되는 걸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땅에서 퍼올린 흙 속에는 수많은 벌레와 세균이 존재하기 때문에 집 안에 두기엔 곤란한단다. 영양분도 부족하고 배수도 불량하다. 산에 사는 식물들에게는 괜찮을지 몰라도 집 안에서 사는 식물들에게는 해로운 흙이다. 친구가 던졌던 명언이 생각난다.

'원래 사람이 안 키우는 식물이 제일 잘 커.'


씨앗이 내 손에 들어와 흙에 심고, 하루가 다르게 싹이 트고, 줄기를 뻗어나가며,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는 매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건 키워본 사람만 안다. 그 아이와 나는 한마디 말이 없어도 잘 자라줌으로 그 아이의 생명력을 드러내고, 나는 사랑스레 쳐다보며 아이를 쓰다듬는다. 그걸로 충분한 교감이 된다는 사실! 저자의 말처럼 내가 물을 주고 신경썼을 때만큼 식물은 정직하게 성장하고 살아간다. 거기서 진정한 힐링을 맛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때와 영영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예전의 나로서,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로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혐오한다. 그 커다란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옥수수를 심고 온 정성을 다해 길러 따 먹어봤다는 경험 때문에 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수확 직후부터 빠르게 당도가 떨어진다는 옥수수를 최고로 맛있게 먹어보려고 물을 팔팔 끓여두고 테라스에 올라가 옥수수를 땄던 기억 그 자체가 즐겁고 사랑스럽다. 얼기설기 이빨 빠진 것처럼 엉성하게 자라준 옥수수 덕분에, 단맛이 하나도 없었지만 너무 기쁘게 베어 먹었던 수박 덕분에, 스스로를 혐오하는 어떤 밤에 그 혐오를, 나를 달래줄 고마운 카드가 한 장 더 생겼다. p.115



꽃집을 지나치면 꽃들을 훑어본다. 화분을 펼쳐놓은 인도를 지나다 보면 식물 하나하나를 눈여겨 본다. 그만큼 내게 식물이 내뿜은 색을, 그가 담고 있는 생명력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문장을 공감하고 이해한다.


식물을 키우려고 포기하고자 했던 삶에 의욕을 가진 것까지는 아니지만(이미 내게는 식물 대신 아이가 있으니까), 아직은 저자만큼 식물에 따라서 비를 맞게 하고, 해를 쬐주려고 가장 필요한 순서대로 배열을 한다던가, 벌레 하나하나를 잡아줄만한 열정과 에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식세계에 입문한 사람으로써 식물이 주는 잔잔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줄은 아는 이라 자칭 할 수 있기에 <아무튼, 식물>은 너무나 즐겁게 읽힌 책이었다. 주변의 식집사들에게 선물해주고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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