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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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텔레비전을 잘 안 보는 나이지만, 우연히 본 그 프로그램에 매료되어 자주 시청하곤 했다. 각기 다른 전공의 박사님이나 전문가들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정말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어쩌면 이렇게 다들 박학다식한지 보면서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 책을 보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덕무의 글을 한정주님이 재해석하셔서 책으로 엮은 책이다.

그의 글 소재는 주변에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말똥구리의 모습을 보면서라든지, 개미들의 모습들을 보면서라든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자연소재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글을 썼다. 만약 그의 글을 그대로 옮겼다면 아마 어렵거나 재미없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는데, 한정주님이 요즘에 맞게 해석을 잘 해 주셔서 글을 읽기가 수월했다.

글이 짧아서 그런지 읽기는 쉽다. 하지만 그 짧은 글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덕무는 정말로 주변을 볼 때 그냥 보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주변을 잘 관찰하고 잘 캐치해 나가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 글을 읽으면 그 상황이 연상되는 게, 그만큼 정확한 그의 관찰력 덕분인 것 같다. 그 관찰 속에서 깨달음이 있다.

어린아이가 거울을 보면서 웃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를 본받아야겠다고 느낀다. 아이의 울고 웃는 모습에 타고난 천성을 느끼고, 어른의 거짓된 감정을 부끄러워하는 분이다. 글을 쓰시는 분이라 작은 포인트 하나 놓치지 않고 보는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 대통령이 힘들었을 때 이덕무의 글을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덕무의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동안 이덕무의 책들을 보면 두껍기도 두꺼웠지만,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두려움이 책을 펼치는 것조차 어려워했는데, 이 책은 책 표지만큼 상큼하게 다가와 쉽게 열 수 있었던 것 같다.

< 다시 보고 싶은 글귀>
글을 읽을 때 그림이 그려지면, 그 글은 진실로 좋은 글이다. 글이란 '그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 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림을 볼 때 글이 떠오르면, 그 그림은 참으로 훌륭한 그림이다. 이러한 까닭에 옛 그림에는 반드시 화제나 발문이 있었다. 글을 쓰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말똥구리와 여의주 _ 35p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_ 선귤당농소

말똥구리에게 여의주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 용 역시 자신의 여의주가 귀한 만큼 말똥구리에게는 말똥이 귀하다는 것을 안다. 비록 상상의 존재지만 우주 만물 중 가장 귀한 동물로 여겨지는 용의 여의주와 가장 미천한 동물로 여겨지는 말똥구리의 말똥의 가치는 동등하다. 이제 우열과 존귀와 시비의 이분법은 전복되고 해체된다.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늘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주 만물의 가치는 모두 균등하다. 단지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할 뿐이다.

동이 속 금붕어 _ 49P
동이를 묻고 물고기를 기른다. 열흘이 지나도록 물을 갈아 주지 않았다. 이끼가 끼어 마치 청동처럼 변해 사삼의 옷을 물들일 지경이다. 금붕어도 온통 연녹색이 되었다. 머리를 늘어뜨리고 비실비실 헤엄치고 있다. 시험 삼아 깨끗한 샘물로 갈아주고 먹잇감으로 붉은 벌레를 던져 주었다. 마치 토끼를 쫓는 매처럼 생기가 돈다. 물 위로 반쯤 몸을 드러내고 서서 사람을 향해 말을 하려고 한다. _ 선귤당농소

살수 없는 곳에 놓아두면 생기 넘치는 금붕어도 죽게 되고, 살 만한 곳에 놓아두면 죽어 가는 금붕어도 생기가 돌아온다. 어디 금붕어만 그렇겠는가? 생명 있는 모든 것이 그렇다. 사람은 어떤가? 자질과 능력이 있더라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있으면 아무런 쓸모없는 잉여 인간이 되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곳에 있으면 꼭 필요한 인재가 된다.


자연은 누가 가르치거나 깨우쳐 준 것도 아닌데 제각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서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한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자연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쥐와 족제비와 벼룩의 습성과 행태 속에서 다시금 자연을 배운다. 특별하지 않는 것에서 특별한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일상의 재발견이다.

열매 맺지 못한 꽃 _ 80p
널리 알면서도 편찬하거나 저술하지 못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나 다름없다. 이미 떨어져 버린 꽃이 아니겠는가. 편찬하거나 저술하면서도 널리 알지 못하는 것은 근원이 없는 샘물이나 다름없다. 이미 말라 버린 샘물이 아니겠는가. _ 이목구심서 2


경험과 인식의 오류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아는 것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는 오류다. 사람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곧 보는 것이 아는 것에 지배당한다는 뜻이다. 사물의 실체나 진상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대로만 사물을 본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소나무와 회나무에 매미가 깃들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소나무와 회나무 숲에서 매미를 보지 못한다. 혹 매미를 발견하더라도 특이한 경우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으로 생각할 뿐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호박에 먼지가 붙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생각할 뿐 어떤 시험도 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 오히려 아는 것을 방해하는 셈이다. 모든 것에 의문을 갖고 모든 것을 시험해 보라. 자명하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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