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존감 공부 - 천 번을 미안해도 나는 엄마다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존감에 대한 책들은 정말로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자존감은  아이의 자존감과 연결된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많이 들었다.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진 아이들을 보면 그들의 엄마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먼저 자존감이 무엇인지부터 아는 게 중요하다.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는 힘.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라면서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는 것일까?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아이가 크면서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아이는 점점 자존감을 잃게 된다고 한다. 그럼 엄마들은 왜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는가.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를 낳고 집에서 가정 중심성으로 오래 있다 보면 엄마는 사회생활의 결핍 등으로 인해 자존감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런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진 자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결과이기 때문에 엄마는 자존감을 잃지 말아야 하며, 그 자존감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가정에만 있는 엄마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집에서 놀고 있으랴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어요."하지만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놀고 있는 엄마는 없다. 엄마라는 역할이 놀고 있게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하늘의 태양이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태양은 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양이 중심을 잘 잡고 있기 때문에 태양계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엄마의 역할은 태양과 같은 역할이 아닐까 싶다. 엄마가 건강해야 가족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다.

엄마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영향이 아이들에게 갈 수가 없다. 자존감을 공부를 해야 할까? 하지만, 공부를 해서라도 엄마는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유지해야 한다.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그냥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스스로 크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 가득 양분을 줘야지만 아이는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다. 그만큼 엄마라는 자리는 어렵고 힘들지만, 보람되고,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자리인 것 같다. 그래서 참 감사하고, 그래서 참 행복하다.

<다시 보고 싶은 글귀>
나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간절한 바람이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 아이들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속도와 성취를 지시하고 따라오라고 강요하는 것이 양육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스스로 죽음에서 탄생으로 이끌어낸 엄청난 힘, 사는 내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려줄 그것.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첫 번째 마음이 바로 '자존감'이다. 모든 아이는 죽음을 통과해서 탄생으로 나온다. 그것만으로도 인생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일을 해낸 거다.

나는 낳아준 사람, 어릴 때는 세상의 전부 와 다를 바 없는 부모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상처는 삶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나를 지키는 힘이 없으니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고, 나를 키우는 힘이 없으니 하고 싶은 게 생겨도 도전하지 못한다.

자존감을 홈메이드다. 공부나 예체능 같은 지식이나 스킬은 밖에서 얻어도 되지만, 자존감은 그게 안된다. 아이 자존감을 키워주는 양분은 부모만이 줄 수 있다. 그런데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무언가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니 무엇보다 부모 자신의 자존감이 가장 중요하다. 자존감이 없는 부모는 아이에게 자존감을 줄 수 없다.

자존감 높은 엄마는 아이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줄 수 있다. 그냥 막연하게 '괜찮다. 괜찮다.'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는 프레임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위기의 순간이 여러 번 다가온다. 엄마의 자존감이 낮을 때 다가오는 위기는 온 가족에게 심각한 불행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마의 자존감 공부가 어느 정도 돼 있다면, 자존감을 바탕에 두고 내 아이를 가장 신뢰하는 해석을 할 수 있다면, 문제는 훨씬 쉬워진다.


생명의 '탄생'을 이해하고, 내 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자 아이들을 대하는 내 모습도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무엇이 진짜 교육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양육이란 없는 것을 채워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이 안에 있는 그것을 행복하게 꺼내 쓸 수 있도록 도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엄마 노릇'이라고.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는 공부라는 '단칸방'만 있는 게 아니라 100개의 수많은 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고 자신만의 천재성을 찾기 위한 도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내 아이의 점수는 항상 내가 매겼다. 그 점수 속에는 아이 혼자만의 갈등, 혼자서 꿋꿋이 버텨낸 것에 대한 믿음, 아직 빛을 보지 못했지만 분명 자신의 꿈을 키워갈 수 있다는 가능성 등이 포함됐다. 그리고 나는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아주 주관적인 나만의 점수를 주곤 했다.

아이는 눈치가 100단이다. 엄마가 날 충분한 존재로 인정하는지, 아니면 빈약한 존재로 인정하는지 금세 눈치를 챈다. 무엇으로 건 충분히 갚으면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에게 빚지지 않는 떳떳한 아이로 성장한다. 마음에 상처 나 짐이 없는 아이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그늘이 없다. 죄책감으로 자신을 망치고 부모와 멀어지는 대신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성취를 차근차근 해나가면서 당당한 성인으로 성장한다.

아이를 올라오게 하려면 아무도 너를 비난하지 않고 믿으며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를 계속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마침내 올라왔을 때, 그 시간이 아픈 과거가 아니라 인생의 깊이를 만들어준 경험이었음을 함께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너의 그 깊이가 곧 높이라고, 그 깊이만큼 뿌리가 단ㄷ나한 사람으로 커나갈 것이라고 말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건 '거리'다. 그건 부모 자신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이에 따라서 '적당한 거리'는 계속 달라지지만, 분명한 건 서로의 반경과 공간을 침해하면 그 어떤 생명도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둘 중 하나는 정신적으로 독립을 못 해서 병들기 쉽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먼저 몸을 써서 움직여봐야 한다. 엄마가 먼저 도전하고 실패해봐야,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가장 현명한 답을 줄 수 있다. 인터넷 카페에 물어봐서 얻은 답이 아닌, 오직 사랑하는 누군가의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답을 해줘야 한다. 엄마란 30년 먼저 태어나서 30년 먼저 실패하고, 그 경험을 통해 아이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세상에서 그냥 집에서 노는 엄마는 없다. 온 가족의 중심으로 살아내느라, 가족들이 자시 삶을 살 수 있도록 중심 잡느라 사실은 하루 종일 애쓰는 거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너무나 소중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젊었을 때는 내가 중심이라는 생각을 못 한다. 매일같이 휘청휘청 흔들리니까. 그런데 엄마 노릇도 계속하다 보면 애가 크듯이 나도 같이 커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단단한 중심을 잡아간다. 그런데 만약 엄마라는 중심이 병이 들면? 가족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심하면 궤도를 벗어나 흘랙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엄마가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 흔들리다가도 다시 중심을 잡게 된다. 그렇게 엄마의 리더십은 성과를 내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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