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곧 마흔이 되는 주인공 사라는 더 이상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인생의 최악의 경험들을 맞이한다. 10년간 같이 살았던 남자친구가 2년 동안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되고, 일 중독으로 직장에서도 일하다 쓰러지게 된다. 남동생의 허영으로 집은 파산을 맞게 되며, 갈 곳도, 살 곳도, 그리고 남자친구와 함께했던 주변 사람들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나도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라. 마흔의 나이에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는 것도,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 것도, 직장에서의 인정받는 삶도 살기에는 늦었다고 절망하는 주인공에게 고양이가 찾아온다. 그녀를 입양하기 위해서..  시빌이라는 그 고양이는 인생의 절망 끝에 서있다고 생각하는 사라를 입양한다.

참 재미있는 설정이다. 처음 부분에는 고양이의 말이 너무 철학적이어서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끝으로 갈수록 "이 고양이 정말 멋지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짜 우리 주변에 이런 고양이들이 있을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고양이가 있지만 나만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는 사라에게 고양이처럼 가르친다. 고양이처럼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고, 심지어 먹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무심코 하는 행동과 그냥 먹는 음식들에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알려준다. 과일에서 태양의 맛을 느끼고, 바람의 숨결과 자연을 통해 얻은 물의 감사함까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것 같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최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인간에게 너희 인간들은 그것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 때문에 실제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그 어려운 말을 했다. 작가는 고양이를 통해서 모든 평범한 사라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무언가 시작할 때에는 늦은 건 없어. 그건 네가 정한 시간이라고. 실제 현실에서는 늦지 않았어. 마흔이라는 나이의 한정도 네가 정한 거야. 모든 걸 다 잃었다고? 생각해봐. 거울로 보이고 네가 지금까지 맞다고 생각한 게 실제로 맞지 않을 수가 있어!!

사라라는 여성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의 한계는 정말 우리가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게 실제로는 이것이 정말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놀이처럼 시작해봐!라는 고양이의 말처럼 어쩜 내게 필요한 건 고양이처럼 놀이로서 시작해 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가 실제 내 또래여서 그런지 소설이지만, 내가 진짜 현실 속 사라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 봤다. 내면에 그어두었던 한계점. 그리고 안 될 거라는 생각. 결국에는 내가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런데 네가 할 수 있다는 게 밝혀지면 어떡할래?"라는 시빌의 말처럼, 어쩜 나는 정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표지처럼, 행복은 소리 없이 곁에 다가온 느긋한 고양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마법과 같은 소설이다.



 

 

 

 

< 다시 보고 싶은 글귀>

이거야말로 네 인생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 네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는 생각이 전부인 게 아니야.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사실 네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는 생각과는 상관없다고 해야 할까. 관찰을 해봐, 사라. 네 주변 공기의 냄새를 맡아봐. 네 피부를 느껴보라고. 귀 기울여 들어봐. 인생은 매 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어.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항상 새롭게.


시빌이 뭐하고 했더라? 우리 인간들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정작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걸 보지 못한다고 했었지. 언제나 과거를 곱씹으며 미래를 예측하고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무수한 가능성과 망상, 꿈과 악몽을 생각한다고. 그렇게 우리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동안에도 인생은 상관없이 흘러가는데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한다고.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지도 못한다고 말이다. 이 거대한 창고는 석 달마다 한 번씩 완전히 새로운 물건들로 바뀐다지. 바로 그 물건들이 우리가 정신없다는 증거야. 난 시빌이 목에 낸 상처를 손가락으로 쓸면서 고양이가 나한테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게 이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리상자 아래로는 "셜록홈스의 일기"라는 가짜 일기장이 있었다. 일기장을 채운 손글씨는 아마도 코난 도일이 직접 쓴 것일 테지. 펼쳐져 있는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자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보를 얻기 전에 가설을 세우는 것은 크게 실수하는 거야.'


고통이 올 때면 마음을 내줘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걸 제어하려고 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아. 넌 이미 여기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강렬한 고통을 경험했지. 그 고통 역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끝이 날 거야. 그렇게 고통을 보내주면 넌 전속력으로 달린 뒤에 쉴 수 있지. 밤이 지나고 찾아오는 다음 날을 기쁘게 시작할 수 있고, 아이가 태어나면 뽀뽀해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인간 역시 진짜 세상을 응시할 수 있는 길이 있긴 있어. (중간 생략) 그 비결은 바로 네 자신이 세상을 보는 모습을 바라보는 거야.


그렇다니 좋네. 그 상태를 하루 종일 유지하도록 해봐. 또렷한 감각으로 네 주변의 모든 것을 인식해봐.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도록 해. 네가 사는 매 순간이 바로 너의 순간, 너의 시간, 너의 인생이니까. 네 인생은 회사의 것이 아니야. 네 인생은 네 거라고. 다른 사람한테 네 인생을 뺏기지 마.


"사랑은 잃어버리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찾을 수도 없어. 그리고 사실 사랑은 찾아내야 하는 그 무엇도 아니야." 고양이는 다시 내게로 와서 내 태블릿 컴퓨터 냄새를 맡았다. "이런 걸 들여다봐야 소용없어. 무엇보다도 이 냉랭하고 딱딱한 물건을 보는 게 제일 나빠. 사랑은 네가 연습해야 하는 거야. 사랑은 기술이니까."


당연히 쉽지 않지. 하지만 그건 네가 글쓰기를 놀이가 아니라 일로 보기 때문에 불안해서 그런 거야. 작가 놀이를 해봐. 열 살 때처럼 말이야. 행복한 동심을 지니는 건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니까!


넌 정말 '난 못 해'라는 말 좋아하는구나. '난 회사까지 못 걸어가.' '난 내가 좋아하는 거 못 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트레칭은 못 하겠어.' '나는 마음을 열 수가 없어.' '난 행복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할 수 있다는 게 밝혀지면 어떡할래?


그리하여 나라는 이 털 없는 원숭이는 선조들의 식단을 따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시빌의 말대로 '동물 먹기'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압박을 느낀 게 바로 그때였다.  동시에 거울 저편에 있는 나의 형상, 내가 언제나 신뢰했던 또 다른 사라가 이제껏 확신해왔던 대로 채식이란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과일만 먹어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물과 공기만 마셨는데도 행복하다면 이것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엄청 쉬울 거다. 그리고 그레 가능하다면, 내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른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내가 거울 저편의 형상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다면, 내가 못 할게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식생활 변화는 내 삶의 변화 중에서 제일 작은 것이었다. 사라 레온의 안에서 무언가 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변화는 겉으로 보면 알아차릴 수 없는 작고 미묘한 것이었지만 알고 보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난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라고만 말하는 거울 속 형상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많이 놀고 더 적게 일하기 시작했다. 닫힌 방에서 바로 걸어 나갈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난 이미 밖으로 나갔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