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욥기를 읽고 있는 내게 목사님이 이 책을 소개해 주셨다.

다른 분 설교에 나왔던 사례인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빌렸다.

우와... 내가 느낀 느낌이었다.

첫 번째로 표현력이 너무나도 좋다. 요즘 표현이랑은 완전히 다르지만 너무나도 가슴속에 와닿는 표현력이 너무 좋았다.

역시 유명하신 시인이자 소설가의 에세이는 달라도 이렇게 다르는구나..

두 번째는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 그분의 삶은 부잣집 마나님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분의 30대부터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36살 남편의 병과 24년간 지속된 병간호. 그리고 시어머니의 9년간 병간호.

그나마 그냥 아프기만 해도 괜찮을 텐데, 여러 번 자살시도한 남편. 그래서 3번이나 입원하게 된 정신병원.

그때는 왜 이렇게 와이프를 때리는 남편들이 많았는지...

작가님의 남편도 툭하면 팔을 부러트리고 뼈가 나갈 정도로 부인을 때렸다고 한다.

뭐가 좋다고 이런 사람을 살리려고 그렇게 맞으면서 살았을까?

뭐가 좋다고 다시 부인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걸까?

우리 엄마 세대의 분이라 분명 우리와의 세대 차이도 있겠지만, 한 여성의 삶으로 본다면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은 아니었을 것 같다.

욥처럼 끊임없이 계속되는 불행 가운데서 계속 살아야 하는 작가의 마음이 너무 힘들다.

작가는 천주교인으로 계속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를 찾았다. 읽으면서도 답답했다. 고구마 몇 개를 물 없이 그냥 먹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작가의 글 솜씨에 반해 이 책을 후다닥 다 읽게 되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기사를 찾아봤다. 대학에서도 은퇴를 하셨지만 아직도 글을 쓰고 계신 멋진 할머니가 되셨다.

문학계에서는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고 꾸준하게 책도 내시면서 강의도 하시는 멋진 여성이시다.

왜 사람들이 이분의 글을 좋아하는지 딱 한 권만 읽어봐도 알 것 같다. 이런 글을 이분만 쓸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이 시대의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건가? 사연보다.. 책 내용보다 이분의 글이 내 마음에 더 많이 남는 건 나뿐일까?

언제 가나도 이 분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글을 꼭 써보고 싶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이 또한 쉽게 지나가리니'다. 행복할 때는 오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이 말이 필요하고 불행할 때는 견디기 위해서 필요하다. 나는 단연코 행복해서 그 시간을 오만으로 채우지 않기 위해 쉽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내 입으로 암송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가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시 시간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다만 그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만 다를 뿐이다.

희수야! 나는 애국자도 아니고 나라 걱정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기를 낳자 나는 우리 부부도 좋아야 하지만 우리나라도 좋은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철이 난 거지. 아기도 낳아 봐야 해. 아기를 낳아 본 여자, 여자에서 어머니가 된 여자는 이 세상에서 이길 자 없을 거야. 낯선 남자 앞에 가랑이를 있는 대로 벌리고 생명을 내어 놓고 생명을 얻는 여자가 무엇이 두렵겠니? 여자는 그렇게 무너져 봐야 해. 그렇게 부서지고야 사랑을 아는지 모르지.

남편이란 게 얼마나 좋은 지도 알겠어. 언젠가 생일에 꽃을 사 주었는데 내가 그랬지. 앞으로는 돈으로 달라고... 시인이란 게 썩었다고 펄펄 뛰고 시인도 돈이 필요하다고 펄펄 뛰며 싸우면서 우리는 웃고 말았던 적이 있지. 남편이 얼마나 좋은가. 그런 유치한 말도 망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니. 남편 하나가 없으니까 돈 달라고, 왜 돈을 안 주냐고 대들 사람이 없어. 희수야, 내가 이 세상 누구에게 돈을 달라고, 왜 안 주냐고 대들겠니

천국이란 어떤 것인지 아니? 천국은 있어야 할 사람이 다 있는 곳이라고 했다. 바로 가족을 말하는 것이지. 있어야 할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바로 천국이며 축복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세상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일을 해주었다.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는 나에게 적어도 남자로서 마지막 결단과 선물을 주었던 것이다.

삶이 뭐 거대 담론이니?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이지만 소중한 것들이지. 누가 아프면 약국에 가서 파스 하나 사 오는 거. 그게 사랑이지. 그게 사는 거야. 넘어지면 팔을 붙들어 일으켜 주는 거. 그게 사랑이며 사는 일이야.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꿈꾸며 홀로 있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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