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제가 사랑스럽나요? -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젠틀 위스퍼 그림 묵상 에세이
최세미(젠틀 위스퍼)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이런 묵상집을 좋아한다. 내가 미쳐 깨닫지 못한 부분을 쉽게 그림으로 표현해 주니 그것도 좋은 것 같다.

편안하게 후루룩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마치 우동처럼 급하게 먹었지만, 배부르면서 맛까지 있는 그런 음식 같은 책이 그림 묵상집인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뒤돌아 보게 된 점이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시간이 없다고 내가 원하는 소원만 말하고 끝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주변에서 "네가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아서 그래. 조금 더 간절하게 기도해 봐."라고 말을 들으면 화가 났다.

기도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간절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만 표현의 차이이지. 하나님은 퍼포먼스를 좋아하지 않으셔.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는 분이야! 하면서 내 방식대로 기도했었다. 그런데 이 책의 기도 부분을 읽으면서 나에게 새롭게 깨달음이 왔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내 소원을 적고 말하는 타이밍이 아니었나... 뒤돌아 보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원하면서도 그렇게 했다.

하나님은 내게 직접 말씀해 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평가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끝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래서 기도를 1분 이상 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 것일까? 어떤 사람은 한 시간이나 한다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요즘에는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최소 30분은 하게 된다. 그래도 그 30분은 대화가 아니라 하나님께 아뢰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상황들을 놓고 기도를 하다 보니 그것만 해도 30분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다 하고 나면 나 혼자만의 만족감이었던 것 같다.

"나는 했어!"라는 스스로의 퍼포먼스에 만족했던 것 같다.

기도는 대화다. 하나님과의 대화! 하지만 나의 기도는 보고 형식이었다.

"하나님. 내 상황이 이렇고, 내가 지금 필요한 게 이것인 것 같아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떤 책이던 읽고 딱 하나만 적용하면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기도"부분에 더욱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시했던 나를 회개한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기도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희한하다. 하나님이 분명 약속해 주셨고 확신이 있어서 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아니면 착각한 걸까?" 하는 별의별 생각에 좌절하고 절망했다. 그러다가 다시 묵상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께 약속해서 받았음에도 모든 게 내 눈에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모른다.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해서 죄송해요. 당장에 제가 기대한 결과가 아니라고 해서 제 마음대로 좌절하지 않을게요. 약속해서 받은 땅에서 처음 마주한 것이 기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임을 끝까지 믿고 제 마음대로 그 땅을 떠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지금은 다 알지 못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 거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상황이 바뀌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바뀌지 않는 상황을 탓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제발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마음에 기쁨이 생겨났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더 이상 그 상황이 괴롭지도 않았다.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예레미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다가 소름이 돋았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는 일이 없게 해 주세요!"라고 부르짖자마자 방금 묵상하던 말씀이 떠오르더니,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 주시는 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혹여나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길로 가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하고 불안해하던 마음이 감동으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다고 했을 때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는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이기 때문에 대답을 듣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도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말씀으로 하나님 알기를 힘쓰고 매일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교제함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여 내 욕심을 내려놓기를 갈망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미루는 순간 끝장이라는 마음으로 당장 기도해야 한다. 1순위에서 밀려나는 순간 기도는 자기 전 짤막하게 내 소원만 말하고 끝내 버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와는 상관없는 행동이 되어 버리고 만다.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깊이 대화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 수 없다.

부당한 대우에 따박따박 대들고 화를 냈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으면서 난 또 내 자아를 살려서 화를 냈다. 그 당시에는 억울해서 울었지만 내 안에 성령님이 속상해하시는 게 느껴져서 정말 심란하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부당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화가 많이 났었다. 감정을 매우 잘 표출하는 성격이라 부들부들 떨며 화를 냈었다. 뭘 안다고 나에 대해 함부로 지적하고, 그러는 보인은 마치 의인인 양,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훈계를 두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혼자 씩씩거리면서 머릿속에 이런저런 되받아 칠 대사들을 떠올리며 잠까지 설쳤다. 화나는 마음을 다 터뜨리며 기도하는데 사역자에게, 리더에게 동역자들에게 요구하고 지적하던 지난 내 모습들을 보여 주셨다. 순간 억울하고 분하던 마음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 봤자 사랑이 없던 말들은 지적에 불과했고,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상대방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하는 말들은 판단에 불과했다. 본인은 의인인 척 내게 판단하는 모습에 화를 냈지만, 돌아보니 그건 사실 내 모습이었다.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서 눈물만 나왔다. 내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사람이 맞나, 그분을 경외한다면서 이렇게나 맘대로 살아왔나 싶어서 울고불고 회개했다.

내가 무엇을 하나님 믿듯 믿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말씀을 읽는 행위로만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내 삶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 정말 하나님만 의지하는지, 삶을 살아가는 모든 방식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인지 계속해서 돌아보고 물어봐야 한다.

순종의 대가가 클까. 순종하지 않는 대가가 클까? 내 자아를 죽이고 자존심을 버려야만 가능한 그 순종이 사실 밤에 잠을 설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나를 어렵고 힘들게 만들지만, 결국 순종하고 나면 나의 인생의 주인이 정말 예수님이 되어 주시는 기적이 일어난다. 하지만 내가 내 자아를 포기하지 못한 채 예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고 교회는 다니지만 정작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부자 천년과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순종하지 않는 삶은, 내 인생의 주인을 예수님이 아닌 다른 존재로 뒤바꾸는 끔찍한 대가를 만들어 버린다.

상황에 의해, 사람들에 의해 낙심이 되어 버리니 기도를 해도 사랑의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라는 가사를 통해 그토록 큰 위로를 받았는데, 정작 몇몇 사람들이 내게 등 돌린 것 같은 상황이 닥치자, 예수님마저 내게 등 돌렸다고 착각하며 좌절하고 있었다. 내가 믿는 사랑의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등 돌리지 않으신다며 의식적으로 큰 소리로 기도했고, 내가 하나님을 오해하도록 거짓 생각을 심고 있는 사탄을 결박하며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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