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읽다 - 실감나게 읽는 성경 속 광야 이야기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추천해 주신 책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빌려서 휴가 동안 읽게 된 책이다.

만약 내 책이었다면 엄청 줄을 그으면서 읽었을 것이다. 좋은 말씀들이 많아서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여놓으면서 책을 읽었다.

그만큼 이 책은 내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책 한 권을 다 필사해도 좋을 만큼 참으로 감동적이었고, 내게 광야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준 책이었다.

내게 와닿았던 것은 광야는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산으로 종종 비교한다. 하지만 삶은 산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이루고 목표한 만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무사히 통과하는 것... 광야인 줄 모르고 산을 오르는 것처럼 살고 있기에 힘들고 지치고 낙심하는 것이었다... 아... 그런 것이었구나. 광야에서는 살아남아 있는만 해도 감사해야 하고, 성공한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다른 것에 초점을 두고 살았으니 삶이 힘이 들었구나...

낙타처럼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사자의 용맹함도 필요 없다. 용기보다 꾸준함이었다.

인생의 중반쯤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나는 광야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했다. 왜 이렇게 힘이 들고, 왜 이렇게 숨쉬기가 어려운가... 했는데, 이런 게 삶이었다. 왜냐하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광야인 것이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잘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광야에서는 가이드가 없으면 갈 수 없고 살수 없다는데 그동안 나는 내 뜻대로만 하려고 했으니 잘되지 않았던 것이다. 광야에서는 그 길을 알고 있는 가이드와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이었고, 내가 이 광야에서 함께 해야 하는 분이다.

휴가 동안 한 일이 없다. 코로나로 어디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거의 집에서만 보냈다. 집에서 보내니 많이 나태해진다. 덥기도 덥고...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다 보니 아이에게 신경 써야 할 일들도 많고 나보다 아이 먼저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 지금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혼자만 오롯이 휴가를 보내봤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이번 휴가 때 잘 한일이 있다면 이 책을 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여운을 휴가 내내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광야를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성공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생을 산에 오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이 올라가지 않은 산에 올라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데 사실 인생은 산에 오르는 것보다 광야를 지나는 것과 더 많이 닮았다. 결혼하는 것이 산에 오르는 것이라면, 결혼생활은 광야를 통과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산에 오르는 것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광야를 통과하는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산에 오르는 것이라면 직장 생활은 광야를 통과하는 것이다. 이처럼 광야를 지나는 것이 인생인데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것처럼 등산화를 신고 로프를 들고 있다.

인생에서 광야가 더 많이 펼쳐져 있음을 안다면, 사람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발버둥 치지 않을 것이다. 더 빨리 올라가려고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광야인 줄도 모르고 산을 오르는 것처럼 살고 있기에 힘들고 지치고 낙심하는 것이다. 장막에 살고 있다고 집이 없다고 불평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아놓은 것이 없다고, 창고가 비어 있다고 원망하지도 말라. 우리는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는 작은 그늘에도 만족하고 감사해야 한다.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번쩍거리는 황금이 아니라 목마른 갈증을 해갈시켜 줄 생수이다. 그러므로 황금을 팔아서라도 생수를 사야 한다. 생수 한 모금에 감사하고 일용할 양식이 주어지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광야에서는 성공이 목표가 아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다.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광야에서는 살아남기만 해도 성공하는 것이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셔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목자와 같이 그들을 인도하셨는가? 첫째, 목자는 늘 양보다 앞서간다. 길을 인도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목자는 양들과 항상 같이 간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늘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서가시며 길을 인도해 주셨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셨다.

둘째, 목자는 잘 따라오지 못하는 어린 양이나 다친 양, 또는 아프거나 징계하느라 다리를 부러뜨린 양을 어깨에 메거나 품에 안고 간다. 우리가 광야를 지나가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지치면 주님은 우리를 안고 가신다. 결코 버려두지 않으신다. 앞에서 잡아끌지 않으신다. 뒤에서 카우보이들처럼 몰아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도자이자, 가이드가 되신다. 가이드가 되시는 하나님은 항상 옆에서 같이 가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다.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가 넘어지면 일으켜 주시고, 힘들면 쉬었다 가게 하시고, 걸을 수 없을 때는 업고 가신다. 우리가 광야를 다 통과할 때까지 우리 곁에서 우리아 동행하시고, 우리의 가는 길을 앞서 인도하시고, 마침내 광야를 무사히 통과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다.

인생을 살다가 길이 안 보이거나 막막할 때, 앞길이 캄캄할 때,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잃어버린 길을 찾게 해주실 것이다. 없는 길을 만들어 주실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설 때도 있다. 잘못된 판단, 잘못된 결정을 내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주님과 동행하기만 하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기만 하면, 잃었던 길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헐떡이고 살아간다. 낙타는 헐떡이지 않는다. 헐떡이면 수분이 증발되면서 체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코 헐떡일 정도로, 숨이 찰 정도로 달리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간다. 그것이 생존 전략인 것이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는 것이지 100미터 경주를 하는 것이 아니다. 속도를 줄여야 한다. 너무 많이 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짐도 너무 많이 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함, 서두름, 과욕 때문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억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은 용맹한 사자가 아니라 느리지만 묵묵히 걷는 낙타다.

낙타는 매일 주인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면 주인은 낙타에게 적당한 짐을 실어 준다. 주인이 욕심을 부려서 낙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실어 주는 일은 없다. 그러면 얼마 가지 못해서 쓰러져 죽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만큼의 짐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아신다. 그래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짐만 실어 주신다. 성경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짐을 지워 주실 때는 우리가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생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든지 우리가 감당할 수 있기에 주시는 것이다.

광야를 지날 때는 이슬같이 내려주시는 은혜에도 감사해야 한다. 광야를 지나면서 장맛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날마다 내려 주시는 이슬에 만족해야 한다. 이슬 같은 은혜와 축복만으로도 광야에서 충분히 버텨 낼 수 있다.

우리도 문제를 놓고 기도한다. 기도 응답은 둘 중 하나다. 문제를 해결해 주시거나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죽음 앞에 놓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면서 기도하신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자 담대하게 죽음을 향해 나아가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광야를 지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견딤의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시련과 고통과 연단을 통해 인생의 마디가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우리 인생이 더욱더 강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고 하자. 그러면 남보다 1~2년 늦어진다. 그러나 그 시기에 대나무처럼 인생의 굵은 마디를 만들면 더 강해질 수 있다. 군대는 참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그 시기는 대나무의 마디를 만드는 시기다. 실직, 이혼, 질병, 가난, 고통, 실패 등 고난은 우리 인생에 마디를 만들어 우리를 더욱더 강하게 해준다.

조개는 처음에는 이물질, 즉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끊임없이 밀어내려고 용을 쓰지만 나중에는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품에 끌어안는다. 현실로 받아들인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 결과물이 진주인 것이다. 상처가 진주가 된다. 상처가 있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아픔을 견뎌 낸 사람만이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고통과 시련이 주어질 때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밀어내려고만 하지 말고 참고 견뎌야 한다. 그러면 진주가 만들어질 것이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살아였는 즉 (사 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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