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라 그래 (양장)
양희은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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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 씨가 선물로 보내 준 책.

아마도 책 제목처럼 "그러라 그래!" 그러면서 세상 힘든 일 다 떨쳐버리라는 마음에서 준 것 같다. (내가 마음을 제대로 읽었을까?)

워낙 목소리가 젊으셔서 70대의 나이인 줄은 몰랐다. 가수 생활 50년, 라디오 디제이로 '여성 시대'라는 프로그램을 22년째 맡고 있다. 웬만한 사람 아니면 이렇게 꾸준하게 생방송을 진행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여성 시대라는 프로그램은 나도 몇 번 들었다. 여성들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하나???

여러 사연들을 듣고 나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슴 아픈 사연들도, 작은 일이지만 큰 기쁨처럼 느껴지는 그런 사연들도 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프로그램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양희은 님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건 경제적인 것과는 다르다.

삶의 연륜이라고 해야 하나? 위에서 내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뭘 그렇게 아등바등 사니!! 잘은 모르지만 텔레비전에서 봤던 그분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톡 쏘는 말투, 그리고 구수~하고 넉넉함이 느껴지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목소리가 비슷한 양희경 님의 이야기가 곳곳에 나오는 것도 좋았었고, 그렇게 언니와 동생이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는 것도 참 좋게 느껴진다.

나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 듯 하나... 여성 시대 같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양희은 님처럼 오랫동안 진행해 보고 싶다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꿈도 꿔본다. 오프라 윈프리를 꿈꿨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양희은 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에게 힘이 되고, 삶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꿈꿔본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봄꽃을 닮은 젊은이들은 자기가 젊고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젊은 날에는 몰랐다. 그걸 안다면 젊은이 아니지. 자신이 예쁘고 빛났었다는 것을 알 때쯤 이미 젊음은 떠나고 곁에 없다.

"뭘 몇 살까지 하겠다는 계획을 해? 그냥 해! 단 하나, 나이 든 사람이 방송하면 말투가 꼭 한문 선생님 같아지는데, 자꾸 사람을 가르치려고 들면 그땐 그만둬. 아직 그런 투는 안 붙었어. 그럼 계속하는 거지." 나는 또 질문했다. 방송을 그만두고 노년의 긴 세월 동안 무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유성 선배는 대뜸 그냥 살란다. "여행 다녀.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우리 삶은 죽고 싶다고 해서 죽어지지도 않고,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지지도 않는 것 같다. 인간의 목숨이란 게 미리 짜인 각본처럼 예정이 돼 있나 싶기도 하다.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 한 발짝 내딛게 해 준다.

모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위한 연습이었나? 그래서 결론은, 세상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없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별나게 겪은 그 괴로웠던 시간들이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보탬을 주면 주었지 빼앗아간 건 없었다. 경험은 누구도 모사할 수 없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따지고 보면 '결핍'이 가장 힘을 주는 에너지였다. 이왕이면 깊게, 남과는 다른 굴절을 만들며 세상을 보고 싶다.

이렇게 칠십까지 살아서 이러쿵저러쿵할 줄 몰랐다. 어떤 나이 든 간에 죽음 앞에서는 모두 절정이라 치면, 그래. 지금이 내 삶의 절정이고 꽃이다. 인생의 꽃이 다 피고 또 피고 난 후라 더 이상 꽃구경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니 지금이 가장 찬란한 때구나.

나는 영돌이의 멋진 긴 털에 가리어져 아무도 몰랐던 그 목걸이를 보면서, 내 삶에도 틀림없이 저렇게 중요한 부분을 옥죄고 있는 편견, 열등감, 자격지심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품고 살지 않는가?

어렸을 땐 흉터 하나만 갖고도 친구와 종일 얘기 나누며 놀 수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모든 상처를 영돌이처럼 멋진 털로 그럴듯하게 가리고 아픔이나 상처는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산다. 자신의 아픈 부분을 더 깊숙이 조여서 영돌이처럼 버둥대며 뻗을 때도 있다. 털어내면 아무것도 아닌 상처, 비슷한 아픔 앞에 서면 차라리 가벼울 수도 있는데... 상처는 내보이면 더 이상 아픔이 아니다. 또 비슷한 상처들끼리는 서로 껴안아줄 수 있으니까, 얘기 끝에 서로의 상처를 상쇄시킬 수도 있다. 같은 값을 지워나가듯 그렇게 상처도 아문다.

위로라는 말은 좀 버겁다. 가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내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까. 어쩌다 내 노래에 위로받았다는 분들을 뵌다. 아마 슬픈 노래를 내가 많이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 슬플 때 더 슬픈 노래를 들어야 위로를 받는달까? 고단한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내 노래가 지친 어깨 위에 얹어지는 따뜻한 손바닥만큼의 무게, 딱 그만큼의 위로라면 좋겠다. 토닥여줄 줄도 잘 모르지만, "나도 그거 알아" 하며 내려얹는 손. 그런 손 무게만큼의 노래이고 싶다.

스스로 딛고 일어나기 힘들다면 자신을 붙잡아줄 누군가의 손을 꼭 잡길 바란다. 내 편을 들어줄 한 사람만 있어도 살 힘이 생긴다. 곁에서 고개 끄덕이며 얘기를 들어줄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길 가다 모르는 할머니가 건네는 웃음, 사탕 하나에도 '살아 봐야겠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인생이리라. 넘어졌을 때 챙겨주는 작은 손길에도 어두운 감정들은 금세 사라진다. 미련한 성격 탓에 맞서오는 파도를 피할 줄도 모르고 온몸으로 맞고 선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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