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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인생 - 평범한 삶이 아주 특별한 삶으로 바뀌는 7가지 이야기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4월
평점 :
나는 이분의 책을 참 좋아한다. 이분의 책은 거의 다 읽은 줄 알았는데 다른 분의 책 속에서 이 책을 추천해 주셔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책 제목처럼 깊이 읽어야 이해가 더 잘 되는 것 같다. 그냥 후다닥 읽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책이다. 묵상하듯 깊이를 느끼며 읽으면 좋을 책인 것 같다.
작가는 과거로 돌아가서 그 주인공들의 심리까지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변호사였던 간디를 만나본 적도 없지만, 간디의 일생 중 어느 사건의 지점으로 돌아가서 그가 겪었던 일들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에게 설명해 준다. 정말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기차가 연상이 되었고, 가벼운 여행 가방을 든 간디가 상상 속에서 그려졌다. 마차에 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그의 글에는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역사의 한 장면 속에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그가 이런 차별을 받은 것도 이런 경험을 한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준비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연으로 치부될 수 있었던 이 사건이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이 된 것이다. 왠지 기독교적인 사상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장전된 대포에 불이 붙는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듯했다.
내 인생에도 장전이 필요하구나.. 그래야 준비되었을 때 바로 쏠 수 있구나...
장전을 하기 위해서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그 시간에 홀로 외로이 있어야 할 고독이라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자신을 뛰어넘어 우주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고 한다. 우주까지는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만이라도 뛰어넘었으면 좋겠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많은 역사의 인물들을 꺼내왔다. 이 분이 역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이런 역사 속의 인물들을 가지고 설명해 주셔서 더 잘 이해가 되며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역사학 교수는 되지 못했다. 우연이라고 하지만 작가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1인 기업가로서 가장 먼저 이름을 알린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신의 비밀을 너무나도 많이 깨우쳐서 그런가... 신은 그를 너무 빨리 데려간 것 같다. 그분의 인생의 깊이를 보면서 나도 생각의 깊이를 늘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그리하여 내 꽃도 한번 찬란하게 필 것이다. 그런데 내 안의 잠재력이 때를 만나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려면,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문'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문은 '깨우는 문'이다. 소명에 대한 각성과 고유한 잠재력이 발견되는 대각성의 순간이다. 두 번째 '견딤의 문'을 들어서면 오래 참아내야 한다. 침묵의 10년을 고독하게 지내며, 선택한 삶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 문은 '넘어섬의 문'이다. 선생을 넘어서야 하고 나 자신도 넘어서야 비로소 우주의 위대함에 닿을 수 있다.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우연은 비로소 필연적 운명이 될 수 있었다. 장전된 대포에 불이 붙듯, 준비된 바탕 위에 우연이라는 불길이 나를 터지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알게 된다. 어떤 우연한 사건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이미 어쩔 수 없이 얽혀 있다는 점을 말이다. 간디가 마리츠버그의 모욕을 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사건이 그의 존재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건 이전에 이미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미 그 존재의 깊은 심연 속에 중재력을 가진 도덕적 정치가 간디가 도사리고 있었고, 영혼 속에 그것이 그의 운명'이라는 각인이 깊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마리츠버그의 사건은 다만 미래를 암시하는 전령관이고 도화선이었다.
사건이 사람을 이끌고 우연히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우연도 위대한 각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제자가 준비되면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듯, 사람이 준비되면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자체로 위대한 스승이나 사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에 그 만남이 위대해지는 것이다. 우연의 얼굴을 가진 필연, 그 사람 자체가 바로 운명임을 홀연 깨닫게 해주는 위대한 떨림은 이렇게 맺어진다.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은 우리를 어딘가로 이끈다.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체험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 일이 없었다면 그저 막연하고 피상적 지식에 그치고 말았을 지식을 '내가 연류되 직접적인 사건'에 적용하게 함으로써 위대한 지적 도약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깨달음의 실험장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재능은 주어진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러나 받은 재능을 다 쓰고 가야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그리고 위대함이란 받은 탤런트의 크기가 얼마가 되었든 받은 만큼 다 쓰고 갈 때 찾아온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람은 방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대책 없는 기이한 삶이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랑을 하는 동안 나는 신비할 만큼 유기적인 우연을 즐기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고 같았다. 나뭇가지 하나가 어느 날 한쪽에서 삐죽이 나오고 다음에는 다른 쪽에서 나와 자라게 된다. 제멋대로 내버려 두어도 나무는 훌륭하고 아름답게 자란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살다 보면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된다. 자신의 에너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빠져들어 지낼 일이다.
그러므로 훈련의 첫째 요소는 반복이다. 반복, 반복, 오직 반복, 대가가 되는 유일한 실천의 비법이다. 매일 훈련한다는 것은 결정적인 과정이지만 그 훈련이 억지로 강업적으로 노예처럼 하는 것은 아니다. 깊어질수록 스스로 즐거움이 된다.
훈련의 두 번째 요소는 창조성이다. 반복하되 단순히 반복하지 않는다. 훈련 역시 창의적 진화를 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불현듯 무엇을 어떻게 반복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역사학 교수가 되는 대신 20년을 직장인으로 멀리 돌아오는 동안, 나는 변화 경영사상가가 되었고, 작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 스스로 계획하여 오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역사학 교수와 긴 길을 돌아 어찌어찌하여 이르게 된 지금의 길 중 어느 것이 더 나 다운지를 물어본다. 나는 지금이 좋다. 천복을 찾은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이 나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와 싸우지 마라. 먼저 과거의 유산을 상속받으라. 부끄러움 없이 훔쳐 모방하고 반복하여 먼저 과거의 정점에 서도록 해라. 미래의 풍경은 그 산 너머에 있다. 그러니 매일 걸어라. 매일의 힘만이 꿈으로 인도하는 단 하나의 믿음직한 주술이다. 명심하라. 평범한 자가 비범한 자를 능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분야를 정하고 들이 파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그 분야에 대해서는 너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니. 침묵을 10년을 보내라. 고독한 10년, 궁핍한 10년을 보내라. 누구든 우드스턱의 시대를 거쳐야 한다.
세상의 생각 대신 자신의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외로움이란 바로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고 세상에 이미 알려진 상식적 삶에 질문을 퍼붓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은 고독을 만들고, 고독은 철학을 가짐으로써 위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철학이 없는 뛰어난 인물은 없다. 왜냐하면 철학은 지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심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어느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카를 야스퍼스의 말은 옳다. '철학이란 도중에 있는 것이며, 질문은 대답보다 중요하며, 모든 대답은 새로운 질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생활 속에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은 철학을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