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 - 대한민국 1호 도슨트가 안내하는 짜릿한 미술사 여행
김찬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그림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들의 감성은 비슷하다. 아름답고 예쁘고 멋있는 것을 보면 다 좋아한다. 나는 미술은 꽝이다. 백지를 보면 글을 어떻게 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도화지를 보면 막막하다. 무슨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림은 좋아한다. 조금 더 알았으면 좋겠고 제대로 즐기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어렵다. 막상 그림 공부를 하려고 하면 무슨 무슨 시대의 어떤 파 누구의 그림. 이런 식으로 나누어지는 게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미술관에 가서 그림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보게 되면 내가 봤던 그림과 전혀 다른 그림으로 인식된다.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 매력에 자꾸 미술관에 가나 보다.

처음에는 똑같이 그려야 잘 그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점점 그림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과 연관을 지어본다.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화가의 이야기라든지 뒷배경까지 알게 되면 그 그림을 더욱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내 취향 그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100% 이해한 것은 아니다. 100% 이해가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흐름은 잡은 것 같다. 왜 이렇게 쉽게 느껴졌을까? 우선 책 자체가 나를 데리고 설명해 주는 설명체로 되어 있다. 미술관에 가서 아주 친절한 도슨트를 만난 느낌이다. 내비게이션이라고 책 제목을 지은 것처럼 그냥 따라가면 된다. 그래서 책을 덮은 다음에는 즐거운 여행을 마친 기분이었다.

자세한 미술사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이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전혀 미술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가볍지만 지루하지 않게 미술사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어디 가서 아는 척할 수 있는 얇고도 넓은 지식을 얻은 기분이라 다음번 미술관에 갈 때 조금은 기대가 된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초현실주의가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초현실주의를 '다다이즘이 순한 맛'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쟁의 시대 속 아름다움이 아닌 파괴된 혼돈과 허무를 표현한 예술이 다다이즘이었다면 초현실주의는 여기서 힘을 조금 뺀 상태로 파괴된 현실을 부정한 채 그 너머에 존재하는 무의식을 표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은 먼가 익숙한 듯 생경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는 것 너무를 그린다. 보이는 것 너머라, 왜지 익숙한 문장 아닌가요? 다다이스트 또한 보이는 것 너무를 포착하고자 했었죠? 다다이스트는 시각적인 재현 대신 개념적인 해석을 통해 보이는 것 너무에 존재하는 의미를 제시했습니다. 시각적인 재현은 유지하되 보이는 세계에 대한 재현이 아닌 보이지 않는 혹은 볼 수 ㅇ벗는 무이식의 세계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자와 다다이스트는 일견 닮았습니다. 하지만 시각적 감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초현실 주의가 좀 더 대중적인 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_ 살바도르 달리

마크 로스코는 자신이 느끼는 색과의 소통, 경험, 감정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제작하는 데 그리는 시간은 단 10%뿐 나머지는 기다림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실제로 로스코는 오랜 시간 사색하며 캔버스를 바라보다가 영감을 얻는 그 순간 색을 쌓아올려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투명하게 겹겹이 쌓아올린 면과 면 사이에는 미세한 색의 떨림이 존재합니다. 그 색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지평선이나 수평선을 바라보듯 색면 너머의 공간을 경험하게 되고 그 순간여이로운 감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이죠.

돈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 _ 앤디 워홀

우리가 스쳐 지나온 미술사의 시간을 토해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미술은 그 표면적 한계를 초월해 내면의 울림을 주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이끄는 예술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미술, 아니 예술에서 재료나 장르적인 한계는 없으며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거죠.

개념 미술은 시각적이 테크닉보다 개념을 더 중시하는 미술이라고 할 수 있죠. 토레스가 시계를 두고 시간을 확인하는 기능을 가진 사물이 아닌 연인과 함께한 삶의 모습으로 바라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사저적 정의를 벗어나 새롭게 사고하고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 존재했던 미술은 이미 우리 삶, 우리 일상으로 들어와 있는 거죠.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입니다. 과거의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의 미술을 바라보며 나의 시대와 나의 인생을 응시할 수 있는 감상의 영역. 그 끝에 우리의 목적지가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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