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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평점 :
다른 것보다 이 책의 제목이 나를 이끌었다. 내가 요즘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짜 잘 모를 때가 있다.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다. 이 말이 정말 광범위하긴 하지만 잘 살고 싶다. 그리고 선하게 살고 싶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에 맞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무척이나 강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시험이라고 하듯 할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너 얼마까지 버티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앙심을 품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그럴 때는 진짜 속상하다. 이런 나의 생각을 무참히 짓밟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일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처럼 내 이익 챙기고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1원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살아야 하나?
하나를 내어 주었더니 두 개 세 개를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게 때문에 아직은 사회가 아름답다 말할 수 있고 세상은 살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한두 명의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탁하고 우울해진다. 그리고 자꾸 내 삶을 흔들어 놓을 때마다 이 책과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나는 정답을 얻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삶에서 정답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분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책이 좋은 것 같다. 정답은 없지만 스스로 찾게 하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이런 삶에 대한 책들을 많이 볼 것 같다. 그리고 보고 싶다. 정의를 내릴 수는 없어도 알아가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리고 잘 사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아프고 지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요즘은 책도 신문 방송도 모두 '힐링'이 대세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가 위로와 치유의 효과를 내는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자기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위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년은 아기가 아니다.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상처를 입어도 혼자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상처를 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람의 느낌... 이런 것들이 살아 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어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삶은 좋다. 죽음은 좋지 않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삶이 죽음보다 좋은 건 아니다. 삶이 더 견디기 힘들어서, 또는 계속해서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숱하게 많다. 그럴 때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걸로 살아볼 일이지!" 그러나 자살을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도 죽는 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도 죽음도 주체적 선택일 수 없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라몬 삼페드로가 남긴 글을 읽으면서 육체, 욕망 충동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사랑의 의미, 감각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서도 예전과 달리 해석하게 되었다. 우리는 많은 것들로 삶을 채운다. 그런 것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일, 놀이, 사랑, 이념, 지식, 돈, 명예, 권력... 무엇이든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고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 삶에 주는 기쁨과 의미를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무엇으로 인생을 채우고 있는가? 그것이 당신의 삶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살아 있는 순간마다 당신은 기쁨을 느끼는가? 라몬 삼페드로가 이렇게 묻는 것만 같다.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 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또는 사회의 평판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일을 집업으로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처음부터 절반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놀이는 즐거워서 스스로 하는 활동이다. 생존에 꼭 필요한 활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의 반대말처럼 쓰기도 한다. 그러나 놀이와 일을 명확하게 나누기를 어렵다. 일도 즐거울 수 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좋아서 일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일과 놀이가 같은 건 아니다. 놀이는 반드시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즐겁기 때문에 누가 가용하지 않아도 스스로 한다. 일은 그렇지 않다. 즐거워도, 즐겁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게 일이다.
나는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삶은 똑같이 귀한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이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야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다. 자식이든 친구이든 타인에게 의존하면 삶은 존엄과 품격을 상실할 수 있다. 늙어도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를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돈, 건강, 그리고 삶의 의미이다.
개인이 생존하는 데는 사회적 결속과 유대, 상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이기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과 쉽게 공감을 이루어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타인의 기쁨뿐만 아니라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대가 해고 노동자들의 고통과 죽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눈물이 나려 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임을 입증하는 생물학적 증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