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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ㅣ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아... 진짜..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의 책을 읽으면 부럽다 못해 얄밉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많이 팔린 이유가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36쇄면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2쇄 가는 것도 힘든 시기인데... 개인적으로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ㅎㅎ
글 쓰는 것이 나의 직업이 될 수 없고, 나의 취미 겸 부캐 정도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안타까울 뿐이다.
작가는 빨강 머리 앤을 보면서 13년 동안 소설가 지망생으로 살다가 마지막 도전을 했다고 한다. 빨강 머리 앤은 그렇게 우리에게 힘을 주는 캐릭터이다. 내가 어렸을 때 빨강 머리 앤을 보려고 손꼽아 기다렸던 추억이 있다. 캔디캔디와 함께 정말로 좋아했던 만화영화였는데... 확실히 커서 다시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주옥같은 대사들이 너무 많다. 그때는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만화가 좋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만화였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잘 못 보게 하니 더더욱 기다렸던 만화였다. 그 이유만으로도 내게는 소중한데, 이렇게 주옥같은 대사들이 있으니... 또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작가도 만나고 싶다. 친구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하룻밤 날 새도록 수다를 떨어보고 싶다. 언젠가 내 바램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 사심 가득한 글을 기억해 두었다가 기회가 되면 보여주고 싶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린느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실망할 것도 없으니까'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수없이 앤을 봤다. 하지만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앤이 한 말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앤이 한 말을 '듣기만 했을 때'와 그녀에게 들은 말을 '노트에 적었을 때'의 차이는 컸다. 그 차이만큼이 내겐 기적의 크기다. 나는 다시 한번 실망하더라도 오래 꿈꿔왔던 것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한 그루의 평범한 벚나무를 아늑한 자기만의 방으로 멋지게 바꿀 줄 아는 앤은 사랑스럽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앤의 그 말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다. 기다리고 고대하는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게 실제 우리이 하루다. 하지만 그럴 때 앤의 말을 꺼내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희망이란 말은 희망 속에 있지 않다는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나이와 행복의 관계를 조사하면 늘 60~70대 노인들이 더 행복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 왜? 노인들이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면서 좋은 일, 나쁜 일을 모두 겪었다. 좋은 소식을 들어도 지나치게 요란 떨지 않고, 불행한 일이 일어나도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는 말을 되새기며 기다릴 줄 안다.
살아갈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시간 시야는 확실히 좁아진다. 노인들이 행복한 건 그 때문이다. 시가 시야가 좁아진다는 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과거와 미래에서 자유로워지면, 자신에게 주어진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다. 공원에 가득 핀 목련을 보면서, 다음 날 해야 할 집안일을 걱정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노인들은 공원에 핀 저 꽃이 얼마나 빨리 시들고 지는지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그들은 어쩌면 젊은 시절과는 다른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꽃이 보여주는 건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아름다움은 그토록 빠르게 사라진다는 사실이라는 것 말이다. 그러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순간을 지금 만끽해야 한다.
고백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것이 알려지면 겪게 될 고난이 크기에 비례해 두려움이 커지기 때문이다. 앤은 고백과 함께 성장한 캐릭터다. 그녀가 저지른 실수의 목록이 늘어날 때마다 고백의 리스트 역시 늘어났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점점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앤의 솔직한 고백에 감동받은 조세핀 할머니는 언젠가 샬롯 시에 있는 자신의 집 손님용 침대에서 앤을 재워주겠단 약속까지 한다. 어쩌면 고백은 '말'보다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다면 '사랑한다!'는 메시지 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것에 진심을 담아 상대에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미안하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태도는 곧 행동이다. 고백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진심을 다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가 '해야'하는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좋아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아닐까. 나는 직업을 꿈과 연결시켜 내가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마치 실패자인 것처럼 좌절하게 만드는 요즘 세태를 생각했다. 그리고 집업이란 '내'가 아니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합당한 대가를 받은 일이란 생각에 이르자, 사람들이 느끼는 '자아 현실'과 '직업' 사이의 괴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앤이 내게 물었어도 아마 같은 대답을 했을 거다. 이제 나는 '너의 꿈을 너의 직업으로 이뤄라!'같은 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직업은 적어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본래의 직업은 자아실현과 거리가 먼 셈인 것이다. 나는 버리고 떠나는 삶을 존중하지만, 이제는 버티고 견디는 삶을 더 존경한다. 이 시대가 너무 '나'를 강조하다 보니 그것이 자기애적인 강박으로 작용하는 것 같단 생각 역시 끝내 지울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질 수도 없지만, 만약 모든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아마 이 세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느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조심스럽게 '잘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을 오래 반복하면 점점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이외에 자신의 일에 대한 특정한 태도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태도'란 그 일을 좋아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한때의 빛나는 재능이 훗날의 아픈 족쇄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자신의 꿈을 직업적인 성취로 이루지 못했다고 꿈이 없어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실패자란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으면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나로 말하면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꿈을 자기 직업으로 갖게 된 사람들의 지독한 불행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꿈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이 세상에 '삶'보다 강한 '꿈'은 없다. 인간은 꿈을 이룰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꿈꿀 수 있는 때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는 그칠 것이다. 눈은 잦아들고 바람은 지나갈 것이다. 하늘에 떠있는 별조차, 좌표를 바꾸며 끊임없이 변한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바꾼다. 하지만 지금의 앤에게 슬픔을 참으라고 말하지 않겠다. 슬픔은 참아서 잊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약이란 말도 하지 않겠다. 아직 슬프다면 더 울어야 한다. 눈물이 더는 흐르지 않는 시간이 되면, 얼마간 담담해진 얼굴로 피어 있는 꽃도 보고 반짝이는 달도 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상처가 회복된다고 해도, 인간에겐 흔적이 남는다. 우리는 그것을 흉터라 말한다. 흉터를 안은 채,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 견디거나 버티는 것, 어쩌면 삶은 그런 것에 보다 가까울지 모른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를 믿는 건 어쩜 어른이 되어간다는 말일는지도... 벚꽃이 바람에 비처럼 흩날린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는 4월이다.
아저씨의 무덤가에 꽃을 꺾으면서 꽃이 예뻐서 본능적으로 향기를 맡는 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그 옆에서 밥을 씹어 삼킬 수 있는 게 어쩌면 삶이다. 나는 이제 '절대'라거나 '결코'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잘 믿지 않게 되었다. 절대,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 같은 건 없으니까. 그럴 수도, 이럴 수도 있는 게 인생이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간신히 이해한 삶이다.
나는 행복을 '다행'이라 바꿔 부르는 사람을 몇 명 알고 있다. 돈을 버는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안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안다.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불행해지지 않는 것보다 행복해지는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젠 어쩌면 꼭 그런 게 아닐지 모른다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행복'이 '행운'과 관련 있는 말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면서 사는 게 한결 편해진다.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린드 아줌마나 마릴라 아줌마가 앤에게 하는 말은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증언이었다.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일들을 겪었을 테고 그래서 축적된 지혜를 앤에게 이야기해 준 것이다. 이젠 그걸 알기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앤의 말도 맞지만 내 말도 맞아,라고. 사람은 바뀐다. 시간이 하는 일은 대게 속도가 느려서 다만 자신도 모르게 바뀌어 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두 개의 인생이 주어져 있습니다. 두 번째 인생은 삶이 한 번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 _ 백영옥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