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하나님께 인문학을 하나님께 1
한재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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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다. 나는 누군가가 추천해 주는 책은 기록해 놨다가 무조건 읽는다. 이처럼 많은 책들 중에서 좋은 책을 골라서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부변에서 추천한 책은 일단 한번 검증받은 책이 되기 때문에 무조건 읽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 책을 추천할 때 그것을 무시하는 것을 보면 가장 안타깝다. 나의 고민하는 시간을 덜어주는 얼마나 감사한 것인데,...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많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처음 이 책은 어려웠다. 도입부분서부터 1/3지점까지 잘 읽히지 않았다. 그만 둘까 하다가 그래도 장로님이 추천해 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에 끝까지 잡고 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포기하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성경은 어려운 책이다. 많이 공부하신 분들이 이렇게 풀어서 다시 써주면 나는 너무 감사하다.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더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점점 갈수록 재미있게 읽게 두었고, 두 번째 책도 정말 기대가 된다.

인문학 책을 읽고 이렇게 성경과 연결해서 써주신 아이디어가 참 좋다. 언젠가 나도 성경을 더 공부해서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성경 공부를 더 해야겠고, 성경적으로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감사하다. 자꾸 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나서...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인문학은 '나는 누구인가?'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했다. 성경은 이처럼 인문학이 추구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명쾌한 답을 준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진 존재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주께서 주신 삶을 다 마치고 주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렇다면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가? 인간이 그려야 하는 무늬는 무엇인가?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를 찬양하며 기쁘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그리고 이 구원의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인공지능까지 나온 이 시대, 이제 우리는 되고 싶은 것은 다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 있다. 하나님 없이 '힘'만 강해진 인간의 절규이다.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모른다면, 힘을 가지 자가 악마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처럼 무서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 올을 칼날 위에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두 갈래가 난다는 취모 지검을 가지고 정신없이 칼춤을 추는 사람과 같다. 우리는 대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힘이 없는 것이 잉ㄴ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힘을 어디다 쓸지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그 사랑, 그 이름을 불러 주심이 있었기에,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되지 않고, 하늘나라의 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프랑켄슈타인 괴물이 아니다. 아무리 실패하고 넘어져도 여전히 하늘나라의 꽃이다. 그러니 꽃처럼 웃자. 이웃을 향해 황홀하게 눈 맞추며 축복하자.

모든 작품은 예술가의 자서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이 스며든 하나님의 자서전이다. 100년에 한 번 꽃피우는 대나무처럼 세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단 하난의 꽃을 완성하기 위해 평생을 사는 예술가도 있다. 우리가 그렇게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예술품도 절반의 완성이라는 말이 있다. 나머지 절반의 완성은 그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위대한 작품으로 창조했어도 우리가 스스로를 싸구려 상품같이 여기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과 우리 스스로를 모독하는 것이다. 작품답게 살자. 우리는 상품이 아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큰 것을 주어야만 준 것이 아니다. 일어서기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웃기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다. 절망해 타락한 장소에서 타락한 몸짓을 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 신실하게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모습만 보여 주어도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다. 그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닉 부이치치.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

참 아이러니하지만, 넘치는 것보다 조금 모자란 것이 좋다. 모자라야 서로의 필요성을 알고 겸손하며, 서로를 이해한다. 이웃은 우리의 빈 공간을 통해서 들어온다. 부족해서 겸손한 공간이 소통의 공간이다. 나의 부족함은 이웃이 들어오는 비밀의 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2% 부족함을 주셔서 더불어 살라고 하셨나 보다.

우물쭈물하며 자신 없어 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이봐! 해봤는가? 뺨 한 대 맞는 거 별거 아니야! 거룩한 배짱을 가져! 그들은 너희의 먹이야! 내가 너와 함께할 거야!" 세상이 강해서 우리가 쪼그라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과 확신이 없기에 하나님이 작아 보이고 세상이 커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잘아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웃에게 필요한 것이 내게 있어서 이웃을 도와줄 수 있음에 기뻐한다. 자기에게 있는 많은 것이 이웃에게 흘러가게 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사람을 세워준다. 이웃에게 흘러가게 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사람을 세워준다. 이웃에게 흘려주어야 한다.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다 거두려 하지 말자. 안 거두어들인 아름다운 흘림, 아름다운 어리석음이 이웃을 살린다. 그런 인생을 산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사과 향기를 맡는다.

이 중에서 '상호성의 원칙'이 모든 설득의 기본이 되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간단하다. '주면 받는다'라는 것이다. 이 원칙에 의하면 사람은 다른 사람이 베푼 호의를 그대로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기에 상대방에게 먼저 충분히 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빚진 상태(?)로 만들어놓음으로써 설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설득 전에 상대방을 어떻게 대했는가 하는 것이 설득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권면한다. 설득은 말의 테크닉이 아니다. 설득은 감화 감동이다. 설득전에 상대방에게 먼저 주고 섬기는 인격적인 삶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설득이 아니라 협박 내지 강요가 된다.

별이 빛나는 것은 밤하늘이 배경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대, 지금 빛을 발하고 있는가? 별이 빛날 수 있게 배경이 되어준 밤하늘의 소중함을 늘 기억해야 한다. '나를 딛고 일어서세요! 나를 배경으로 꽃으로 피어나세요!" 하늘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이렇게 배경이 되어 주는 사람이다.

또한 기도했으면 믿고 기다려야 한다. 기도할 때도 며칠까지 빨리 해내라고 하나님의 팔을 비틀며 협박하는 듯한 기도는 우례하기 짝이 없는 기도이다. 주님이 역사하실 틈을 자신이 꾸역꾸역 메꾸려 하는 교만함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을 인정하고 기다리며 바라보는 '신앙의 여백'이 필요하다. 여백이 클수록 하나님의 도우심과 채우심고 크다. 빈틈없는 나의 완벽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중요하다.

선물을 가리키는 present는 현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가 선물이다. 지금 여기의 일상이 선물이다. 일상 속에서 웃고, 감사하고, 감동하고 나누는 삶을 산다면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지금 내가 앉아있는 자리가 선물이요. 꽃자리라고 하신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은가? "사랑하는 자여, 반갑고 고맙고 기뻐하여라.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 자리니라."

별과 꽃을 보라. 별과 꽃이 자기 자랑만 하려고 할 때, 타락이 시작된다. 별은 비추어 주기에 별이고, 꽃은 웃어 주기에 꽃이다. '꽃'이라는 뜻의 영어 flower를 보면 낮은이라는 의미의 low가 들어 있다. 꽃은 자신을 낮추며 웃어 줄 때 참 꽃이다. 별이 제 한 몸을 태워 어두운 길을 비춰 줄 때 진정한 스타이다. 불이 붙지 않은 초가 백 년을 산다 해도, 그건 산 것이 아니다. 초는 제 머리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혀 주면서부터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저자는 타인과 상호작용이라는 면을 중신으로 사람을 기버, 테이커, 매처라는 세 부류로 구분한다. 기버는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반면 테이커는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매처는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사람이다. 매처는 기버와 테이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자기 이익에 가장 민첩하고 유능한 듯 보이는 테이커가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지만 저자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기버라고 한다. 그러면서 겸손한 세일즈맨, 말더듬이 변호사, 학생들보다 어린 교수 등 수많은 사례를 찾아서 '주는 자'각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논증적으로 보여 준다. 즉, 주는 사람이 되어 마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으면, 마법같이 끌어당기는 힘이 생겨서, 그 혜택이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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