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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샤이 - 가슴 뛰는 삶을 위한 단어 수업
케빈 홀 지음, 민주하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책 필사를 많이 했다. 그만큼 좋은 말들이 많았고,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받은 책을 만나것 같다.
단어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닌것 같다.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니 만든 사람이 정말로 많은 고민을 했고, 그에 합당한 단어를 만들려고 한것 같다. 단어의 어원을 연구한 사람을 인터뷰 해서 쓴 글인데, 약간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서 의미를 다시한번 파악하게 된것 같다.
왜 이런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연금술사에서 만든 책은 겐샤이와 비슷한 류의 책들이 많은 것 같다.
믿고 보는 출판사란 생각이 든다. 꼭 다시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나는 늘 리더의 첫 번째 의무가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영감을 주다 inspire'라는 단어가 다른 사람의 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이며 그것의 반대말인 '끝나다 expire'가 생명을 거두어 간다는 의미임을 알 때 그 단어들이 새롭게 살아난다. 생명을 불어넣는 단어들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꿈을 이루도록 도울 수 있다.
겐샤이Genshai는 누군가를 대할 때 결코 그가 스스로를 작게 느끼도록 대해선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머니는 내가 이루고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일관되게 말씀하셨고, 다행히도 나는 어머니의 말을 믿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언제나 나에게는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도 단 한 가지는 빼앗을 수 없다. 인간의 마지막 자유, 즉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 자신의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그것이다.
등불을 들고 타인의 길을 비춰 주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더 분명히 볼 수 있다.
제임스 앨런은 [생각이 만드는 기적]에서 말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한다. 인간은 생각의 무기고에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무기를 만든다.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해 기쁨과 힘과 평화의 집을 지을 연장을 만들기도 한다. " 내 안에는 신성함이 있다. 내 안에는 위대함이 있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이라고 믿는 것을 내 삶으로 끌어당긴다.
'믿는다 believe'는 '사랑한다. be love'는 의미이다. 내가 나 자신을 믿을 때,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나는 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존중 respect'는 '보다 spect'라는 뜻과 '다시 re'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존중'은 곧 '다시 보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다음의 네 가지를 알 필요가 있다.
1. 나의 길에 나타난 사람들 People은 나의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2. 행동 Actions은 기회를 잡는다.
3. 생각 Thoughts은 내가 의미 있고 중요한 삶을 창조해 나가도록 돕는다.
4. 행복 Happiness과 천복의 순간들
사람들, 행동, 생각, 행복. 이것이 길 PATH을 만든다!!!
그는 '진정한 authentic'이라는 단어를 소개하며,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의 '아우토스 autos' 와 '되다'라는 의미의 '헨테스 hentes' 두 단어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손동작까지 덧붙이며 미소 지었다. "따라서 '진정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된다'라는 의미입니다.
"케빈, 재능을 낭비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가 계속 말했다. "우리 모두는 본래부터 부여받은 재능이 있습니다. 나는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지 않는 것은 잠재 능력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열정은 당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 기꺼이 고통받으려는 빅터의 의지는 그를 그의 재능으로 이끌었다. 열정은 그가 하도록 되어 있던 일을 하도록 이끌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을. 빅터는 가르쳤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핵심적 욕구는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길과, 그것에 뒤따르는 모든 고통과, 그가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길은 가장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에게 삶의 깊은 의미를 알아갈 많은 기회를 준다." 우리는 종종 고통을 통해 그 의미를 발견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모든 벽에는 문이 있다'라고 말했다.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열정, 즉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고통받으려는 마음은 종종 우리를 우리의 길로 이끌어 주는 문이 된다.
그대의 희망이 신의 법칙이나 인간의 법과 모순되지만 않는다면 그대가 바라는 어떤 것이든 이룰 수 있다. 그대가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르고자 한다면."
너무 지쳐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은 때도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 여행은 그가 가진 모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빅터 프랭클이 '빛을 비추는 존재는 반드시 불에 타는 과정을 견뎌야 한다'라고 말한 의미를 채드는 배웠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면,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이 바뀐다.'라는 말이 있다.
사페레 베데레
이 문구는 라틴어로 '방법을 알다'라는 의미의 '사페레 sapere'와 '보다'라는 의미의 '베테레 vedere'가 합쳐진 것이다. 사페레 베데레는 '보는 법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속담을 '믿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로 바꿔 놓는다. 사파레 베데레를 가진 사람은 안을 들여다볼 뿐 아니라 앞을 내다본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을 믿을 수 있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빈치는 인간이 사물을 볼 때 처음에는 뇌로, 그다음은 마음으로, 그러고 나서는 눈으로 본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보는 법을 아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결정적인 요인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라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에 집중하게 한다. 사파레 베데레가 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다리에 도착하면 그곳을 건널 것이다." 사페레 베데레가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건너기 전에 그 다리를 볼 것이다."
사페레 베데레는 사후 판단과 예지력과 통찰력이 합쳐진 삼차원의 관점으로 본다. '사후 판단 hindsight'은 뒤를 보는 것이다. '하인드 hind'는 '뒤'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온 곳이다. '예지력 foresight'은 앞을 보는 것이다. '포 fore'는 '앞'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 앞에 있는 것을 말한다. '통찰력 insignt'은 안으로부터 보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고 심장 박동으로 느끼는 것이다.
마일즈 먼로는 자신의 저서 [비전의 힘]에서 이렇게 썼다.
"시력은 눈의 기능이며 비전은 마음의 기능이다. 비전은 눈이 볼 수 있는 한계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가슴이 느낄 수 있는 자유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가슴이 무엇을 믿을지를 머리가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다음 아서는 '비전이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멸망한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라는 성경 잠언의 구절을 인용했다. 비전이 있으면 사람들은 확신을 갖고 앞을 내다본다. '확인 confidence'은 '믿음 faith과 함께 con 간다'라는 뜻이다. 분명한 비전은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나아가게 한다.
비전은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것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어떤 것이 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것을 봐야만 한다. 제임스 앨런은 말했다. "고귀한 꿈을 가져라. 그러면 꿈꾸는 대로 될 것이다. 당신의 비전은 언젠가 될 당신의 모습에 대한 약속이다."
겸손 humiliy'의 어원은 흙을 의미하는 라틴어 '후무스 humus'이며, 이것은 특히 색깔이 짙고 영양분과 유기질이 많은 흙이다. 씨앗을 비옥한 땅에 심으면 그것은 훨씬 더 큰 것으로 탈바꿈한다. 작은 도토리가 참나무가 된다. 봄에 정성 들여 심은 아주 작은 씨앗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이룬다. 이 모든 것이 양질의 토양인 후무스와 함께 시작된다. 우리 삶에 충분한 흙, 후무스가 있다면 우리는 자라고 발전하며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을 무성하게 자라나게 할 것이다. 겸손은 성장을 낳는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고 인정하는 겸손함을 지닌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 일생 동안 배우려는 자세를 가짐으로써 우리는 성장한다. '성공'과 '겸손'은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닌 듯하지만 두 단어는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겸손'과 마찬가지로 '성공'의 어원학적 뿌리 역시 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공 success'은 '뚫고 나오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수케데레 succedere'에서 파생되었다. 중간 부분인 '케데cede'는 '씨앗 seed'의 어원이다. 씨앗이 비옥한 땅, 즉 후무스를 뚫고 햇빛 속으로 나올 때 그것은 성공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뚫고 나오는 것이 곧 성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뚫고 나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기름진 토양을 이용하는 일이다. 우리는 겸손에 기반과 뿌리를 둠으로써 성공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성공 없이는 진정한 겸손이 없고, 겸손 없이는 진정한 성공이 없다.
"삶이란 마법 같지 않나요?" 자신을 비어 있는 양동이라고 여기고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샘물로 여길 때, 그 흘러나오는 샘물 밑에 양동이를 두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 삶을 지속시키고 성장시켜 주는 모든 영양분들이 당신의 양동이로 흘러든 것입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고개를 숙이고 따르는 것이다. 한때 잠자고 있던 씨앗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땅을 뚫고 나오면서 구부러지고 꺾어지는 묘목으로 탈바꿈된다. 도전은 변화를 만들고, 변화는 성장의 계기가 된다. 목표를 세우는 것은 일부러 도전을 만드는 한 방법이다. 마치 물처럼 목표는 나를 유지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잘 계획된 목표는 나에게 장애물을 받아들이고 통과하고 돌아가게 하는 힘을 준다. 능력과 재능은 목표 성취를 위한 연료가 돼지만, 재능은 개발하지 않으면 위축된다. 이것이 위축의 법칙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 위축은 쇠약해짐을 의미한다. 근육처럼 재능도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 도전받고 긴장될 때 근육은 더 강해진다. 이겨냄과 커짐, 변화와 성장, 전개와 발전, 이것이 겸손의 진정한 본질이다. 영국이 극작가 필립 메신저는 이렇게 가르쳤다.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자 하면 먼저 자기를 다스려라."
아서는 나를 위해 직접 숨까지 참아 가면서 '영감을 주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한 뒤, 그것과 관련된 단어로 주제를 옮겨 갔다. 그 단어는 '용기를 주다 encourage'였다. 그는 자신의 심장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로망스어(라틴어에서 유래한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을 이르는 말)에서 '쾨르 coeur'는 '심장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때 당신은 그 사람의 심장에 무엇을 보태는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좌절시킬 discourage' 때 당신은 그 사람의 심장에서 무엇을 떼어 내는 것이다.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용기를 주는 사람은 가치를 더해 주는 사람 appreciator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아서는 설명했다. 반명, 영감을 사라지게 하고 좌절시키는 사람은 가치를 낮추는 사람 depreciator이다.
지진이나 거대한 폭풍이 대지를 흔들 때 고대 아즈텍족은 그러한 힘을 한 단어로 표현했다. "올림 ollin" 이것은 아즈텍족의 달력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신성한 의식에서 사용되던 많은 도구들에게 발견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강력하고 즉각적인 움직임을 전달하는 깊은 의미를 가진 표현이다. 고대 나후아틀족 언어에서 유래한 '올린'은 심장을 의미하는 '욜로틀 yollotl'과 생명을 이미하는 '용리스틀리 yolistli'에서 나왔다. '올린'은 '지금 온 심장을 다해 행동하고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삶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기릉ㄹ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올린'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올인(한 곳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을 해야 한다. 지진이 일어날 때, 그것은 목적의식을 갖고 움직이고 행동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임을 알려 준다.
올인한다는 것은 온전히 전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올린'은 시간제로 하거나 단지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도로시아 브랜디는 썼다. "무력감과 좌절검의 주문을 깨는 데 필요한 전부는 이것이다. 실패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행동하라. 그것은 실패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성공으로 향하게 하는 부적이자 공식이며 강력한 명령이다." '매그넘 magnum'은 '위대한'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그리고 '오푸스 opus'는 '작품'을 뜻한다. 나의 위대한 작품 즉 나의 매그넘 오프스는 무엇인가? 위대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온 마음을 다해 뛰어들어야 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매일 다섯 가지의 긍정적인 일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나무에 도끼질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나무가 아무리 크고 단단해도 그 나무는 결국 넘어갈 것이다. 실패가 불가능할 것처럼 행동할 때 보이지 않는 힘이 도와주러 온다. 그리고 그때 아즈텍족이 '올린 하는 심장'이라고 부른 것이 발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