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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고 싶은 독서치유의 모든 것
윤선희 지음 / 소울메이트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독서가 마음의 치유가 되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에 힘들었을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냥...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그 이유만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어느새 그 책들은 이 블로그에만 600권이 넘었고 이전 블로그에 있는 것까지 합하면 700권이 넘어간다. 왜 나는 이렇게 책을 읽게 된 것일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아 가기 때문에?
그런 그런 것도 있다. 책이란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하게 해 주니까... 하지만 계속 읽다 보니 책을 통해서 내 마음이 위로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게 좋아졌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혹은 내 마음의 쉼이 필요할 때 나는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책은 나에게 여유였고, 삶의 충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책만 집어 들게 되면 공부하는 마음보다 책을 통해서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는 것 같다.
꼭 소설이나 스토리가 있는 글만 치유받는 건 아니었다. 어쩔 때는 자기 계발서에서도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다. 참 이상하다. 분명 작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독서 치유라는 것에 관심이 가게 돼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왜 책에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이 풀리는 것 같다. 또 요즘 독서모임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꼭 치유라는 말과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책을 읽고 나눔으로써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고 의식이 확장됨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마음치유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모임도 만들고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현대인들에게 이런 마음의 치유는 꼭 필요한 것 같다. 특히 바쁘게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더더욱 쉼표와 마음의 상처를 대면할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다. 그 상처를 그냥 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책을 통해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인생에서 좋은 역할 모델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그를 닮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힘이 되어주는 종교를 가지는 것과 같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책에는 반드시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등장인물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실행에 옮기는 힘을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거울신경세포가 그 모든 것들이 삶에서 역할 모델처럼 될 수 있도록 작용해줄 것이다.
목표한 삶의 방향으로 이끌어줄 그 무엇인가가 책이라면 좋을 것이다. 책은 다른 것들에 비해 손쉽게 늘 가까이하면서 자신을 다독거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줄 수 있다. 독서 치유에서 중요한 것은 동일시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과정뿐만이 아니다. 종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떤 특정한 병적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아픔이 있으며 누구나 위로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과장되게 표현하면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숙명처럼 마음의 상처라는 멍에가 씌어진 것은 아닐까?
영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를 겪는 사람들에게 약물 대신 자기 구제를 위해 독서 처방을 내린다고 한다. 정신적 문제에 대해 경중을 떠나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개방적 사회 시스템을 준비해놓음과 동시에 독서 치유처럼 상시로 옆에 두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기 구제의 방법 또한 준비해놓은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의지를 키우도록 돕고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노력이 중요하다.
독서가 주는 많은 이점 중 하나는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생각해보지 못한 낯선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젊지만 장군의 입장이 되어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안타까운 마음을 느껴볼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삶을 느껴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낯선 삶을 엿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자신의 일이 떠오르기도 하고, 나이 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상상해보게 디며, 아무런 연관도 없는 듯한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작품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던 자신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내면아이 또는 어른 아이라는 말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면에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즉 마음속에 치유받지 못한 상처 받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는 충분한 사람으로 위로받고 치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현실을 피하고 부정하면서 상처 난 그대로 혹은 상처 난 부위보다 더 과장된 채 남아 있으며, 그런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모습으로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평생 누군가에게 꺼내지 못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잠금장치를 한 경우도 있다. 상처를 수면 위로 꺼내 놓는 것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그러므로 책 속의 인물들을 통해 혹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상처 없는 삶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다른 치유의 과정에 앞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형태와 크기만 다를 뿐 상처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지난날의 상처를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책 속에 내가 있고 나의 문제가 있다. 우리 주변에 훌륭하다고 불리는 사람들 주에서는 책을 읽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경우 책이 좋은 보약이 되어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한 번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좋은 영감을 준 책을 곁에 두고 자주 읽는다는 것이다.
독서 치유에서 동일시는 이야기 속의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하는즉 인물과 나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해버리며 감정적인 유대감을 가지는 과정이다. 독서 치유를 위해 흔히 이야기를 선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 속의 인물에 유대감이나 거리감을 가지게 되면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화는 새로운 인식과 함께 감정까지도 새롭게 변화시켜버리는 힘이 있으며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한다. 물론 우리가 겪는 문제들이 모두 다 새로운 시각으로 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일, 즉 문제에 놓이게 되었을 때는 그 일을 자신에게 있는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문제라는 늪에 파묻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찰의 과정을 정확하게 어느 선까지 깊이를 가져야 하는지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찰을 독서 치유의 과정에 넣은 것은 감정과 행동에 대해 이해하기 위함도 있지만 문제와의 연결성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고찰을 독서 치유에서만 필요한 과정은 아니다.
독서 치유에서도 마찬가지다. 통찰로 얻은 것을 적용할 수 있는 적용 매뉴얼이 필요하며 거기에 지속적인 노력까지 보태져야 할 것이다. 보통 독서 치유 시에 자기 적용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많이 권유하는 편이다. 머리로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 금세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읽으면서 자신의 변화를 느껴보기 위해서도 글쓰기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 물론 글쓰기라고는 했으나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말해서 녹음을 해두는 것도 가능하고 메모처럼 간결하게 남겨두어도 상관없다.
독서 치유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언제 어디서라도 스스로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자기 적용을 위한 계획을 세워보자. 그렇다고 원대한 계획을 세우라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평생학습'이라는 모토에 맞게 독서 자체를 일상적으로 습관을 들여야 하고, ㅈ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독서를 해야겠다는 의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읽는다는 말은 '독해'라고 하며 독해는 주어진 대상을 읽고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말의 뜻을 조금만 확장하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행위를 읽는다는 의미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고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론 읽는다는 말 대신 독해라는 표현을 썼을 때 우리는 읽고 이해한다는 것에 보태서 분석한다거나 비판적 시각으로 본다는 등의 추가적인 의미를 더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