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작가의 나이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20대 중반쯤 될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인생의 깊이는 60대 이상의 살아있는 현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희귀난치병인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병명으로 6년간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생사를 왔다 갔다 하는 길목에서 그녀는 수없이 생각했을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 그리고 삶에 대해서..

머리를 밀고 멸균실에 들어갈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문밖에서 가족들이 그녀를 위해서 서 있는 모습을 본 그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6년이라는 시간이 그녀에게는 정말로 뜻깊은 시간이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희귀병을 앓은 것도, 생사를 왔다 갔다 한 경험을 한 것도, 그런 병에서 완치 판정을 받았던 경험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험 안 해도 좋다!라고 하겠지만, 분명 그녀의 삶은 정말로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이미 다른 사람보다 한 번 더 삶을 사는 느낌이 들것 같다. 그런 그녀라 그런지 글의 깊이도 다르다.

글을 읽을 때는 정말로 20대 초반의 여대생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기분처럼 가볍게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가 고통을 겪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녀의 글은 더 이상 20대 소녀의 글이 아니었다. 글은 가벼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글안에 들어있는 깊이가 느껴졌다. 40대 초반의 나도 겨우 느낄까 말까 한 것들을 이미 그녀는 뛰어넘은 상태인 것 같다.

6년간의 병원 생활 때문에 한동안 무기력증에 힘들어했다고 하지만, 그녀라면 분명 이겨낼 거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미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남들의 배를 살았기 때문에 늦은 건 아니다. 동기들보다는 느릴 수 있겠지만 인생은 짧지 않다. 길게 봤을 때 그녀는 어느 경주를 하건 분명 이길 수 있다고 생각된다. 너무 조바심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 길이 되었던... 다만 가는 길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늦은 건 없으니까... 이만큼 살아보니 늦은 것도 없고 빠른 것도 없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완치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책을 덮을 때 기분이 좋았다. 이런 책들 중에서는 유독 좋지 않은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다 읽고 나서 좋은 메시지는 받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가득했던 경험들이 있었다. 해피엔딩이라 더 기분이 좋았던 이 책을... 요즘 젊은 세대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잠시 쉬고 있다는 걸

멈췄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마음을 먹고 문제를 똑바로 쳐다본 후

그 일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직면하지 않고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고 했던가.

문제를 바라볼 용기조차 없었던 나는 이제 피해도

상관없는 것들까지 도전해볼 만큼 성장했다.

오렌지주스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 삶에 닥쳐 오는 떫고 쓴

문제들에도 언제든 맞설 수 있으리라.

흉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생처가 생길 때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느끼며

딱지가 생기고 떨어지는 과정은 인내를 요하고

새살이 돋을 땐 가렵기까지 하다.

딱지가 떨어진 후에도

상처가 있던 자리는 주변의 살과 색이 달라

여전히 눈에 띄며, 조화를 이루기까지 또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가 흉터로 변하는 일도 시간이 관장한다.

왜 이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느냐고,

언제쯤이면 내가 아프지 않을 수 있냐고

화내거나 억지 부릴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제 무기력에서 제법 헤어 나왔지만 아직도 가끔씩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병원에서 새벽마다 바깥을 내다보던 때를 떠올린다.

'여길 나가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면'이란 전제를 달고

하고 싶은 일을 손꼽던 그때를 떠올리면

환자복을 입고 바깥을 바라보던 과거의 내가 달려와 냅다 뺨을 후려치며

말한다. 그 정도 삶을 영위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알면 잘 살라고.

지루할 만큼 무난한

이 일상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던가.

아픔과 공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

때로는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한다는 한 영화의 대사처럼

우리의 공백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앞으로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