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 - 삶과 죽음, 그 후에 오는 것들
줄리 입 윌리엄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토요일 새벽. 나를 잠 못 이루게 한 책이다. 은근 두꺼운 책이었는데, 책에 푹 빠져서 그 두께감을 잊게 했다. 내가 만약 저자라면... 계속 대입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그녀가 아니라서 정말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녀는 정말로 극과 극의 생활을 다 해보았다. 40년이라는 짧을 생을 살았는데, 그녀의 인생은 정말이지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태어나서 2달 만에 백내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려고 했다. 목숨을 걸고 베트남을 탈출하기도 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하버드 대학의 법학과를 졸업. 변호사가 되었다. 정말로 꿈에 그리던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예쁜 두 딸을 얻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 이후에는 암이라는 병에 걸려서 5년 정도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도대체 그녀의 죄명은 무엇일까? 왜 그녀는 하나만 겪어도 힘든 일을 몇 가지씩 걸려야 했던 것일까? 내가 그녀였어도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 같다. 물론 그녀도 신을 원망했다. 종교는 없었지만, 자신을 이렇게 만든 신들에게 원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가졌던 장애, 환경을 극복하려고 했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자원봉사도 나갔고, 해외여행도 다녔다. 남극을 다녀오면서 정말로 신이 존재할 것 같은 그런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남들보다 몇 배 이상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던 그녀가 결국 암이라는 큰 병까지 얻게 된다. 이제 막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되었는데... 병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병 앞에서 담담해 지려고 노력했다. 아프면 아픈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자신을 표현하며 살았다. 그렇게 솔직한 감정이 이 책에는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믿지 않는 신들을 원망하는 글이 아니라, 그래도 병을 통해서 내가 얻었던 것이 훨씬 더 많았음을 그녀는 고백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과 남편에게 유언을 남기듯 이 책을 썼다. 있지도 않은 두 번째 부인에 대한 질투도 하고, 누군가 자신의 자리에 와서 자신이 꾸며놓은 아파트에 들어와 사랑하는 남편과 딸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할 거라는 생각에 화도 났지만, 정말 괜찮은 사람이 와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녀의 글을 보면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마지막 그녀가 죽고 이 책의 마무리는 그녀의 남편의 손에 의해서 마무리가 되었다. 5년간 병간호하느라 마음고생도 엄청 심했을 그였다. 그의 솔직한 속마음도 볼 수 있었다. 5년 동안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현실.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게 된 아픔보다는 앞으로 딸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먼저 걱정하게 되었다는 솔직한 그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렇게 솔직하게 써줘서 고마웠다. 옆에 있었으면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며 위로해 주고 싶을 정도다.
하나님은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이렇게 나보다 더 훨씬 힘든 상황을 살았던 사람들을 보여주시는 것 같다. 이 책도 그렇다. 내 마음이 힘들어할 때 많은 위로가 돼주었다. 나는 힘들다는 소리도 못하게, 그 소리가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래.. 나는 그녀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잖아. 그 점에 대해서 감사해야지...라며 나를 일으키게 한 책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예쁜 딸들아, 인생이 어째서 불공평한가에 대한 답은 나도 몰라. 아마 이번 생에는 알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고통과 괴로움, 슬픔과 비통함을 느끼면서 충분히 울고 상처를 받는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얻는 게 있을 거야. 불속을 통과하는 것은 괴롭지만 막상 끝까지 통과하고 나면 온전하고 강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어. 내가 장담해. 고통을 겪고 나면 진리와 아름다움, 지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될 거야. 고통이든 기쁨이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는 것도, 슬픔 없는 기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 인생에는 고통 없는 안도감, 잔인함 없는 연민, 두려움 없는 용기, 절망 없는 희망, 고생 없는 지혜, 결핍 없는 감사는 있을 수 없어. 인생에는 이런 역설이 넘쳐난단다. 온갖 역설 속에서도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야.
나는 비록 앞을 보진 못했지만, 이 불행한 현실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어. 나는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 한층 야심 있는 사람으로 자랐어. 덕분에 기지 있고 똑똑한 사람이 됐지. 장애 덕분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방법, 자신에게 솔직하고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진솔하게 대하는 방법도 배웠지. 진정한 힘과 정신적인 회복력을 갖추게 된 거야.
너희는 이제 엄마 없이 자라게 될 거야. 마음 같아선 너희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엄마로서 한편으로는 너희가 고통을 겪더라도 잘 버티고 살아내어 교훈을 얻기를 바래. 너희가 고통을 통해 더욱 강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 너희가 엄마의 강한 면을 물려받았다는 거 알지? 고통을 통해 타인에게 동정심을 가질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어.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기를, 인생을 즐기고 인생의 온갖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하기를,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기를,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인생의 불안정함과 소중함에 감사하기를. 이게 너희에게 주는 숙제야, 예쁜 내 딸들아. 고통스러운 비극을 아름다움과 사랑, 강함, 용기, 지혜의 원천으로 삼으렴.
물론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거야. 하지만 조숙했던 소녀 시절에 침대에서 홀로 흐느끼면서 깨달은 게 있어.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짧은 삶이든 긴 삶이든 인간으로서 처할 수 있는 온갖 삶의 조건을 최대한 이해하는 게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라는 거야. 우린 매 순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가지. 우리의 영혼은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배우면서 성장하고 변화하고, 삶이 무엇인지 점점 알아가. 나는 이걸 영혼의 발전이라고 불러. 내가 고통과 괴로움에 관해 '공평'한 수준 이상의 몫을 감당했다는 것, 어려서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말년에는 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나름 멋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 너희가 알아줬으면 해. 이 고통과 괴로움이 나를 규정했고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켰어.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몇 년 동안,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사람과 연민을 깨달았어. 인간의 배려심이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를 몸소 경험하면서 뼛속까지 겸손해졌고,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지. 죽음의 공포가 나를 짓이기려 할 때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냈어. 내가 시력장애와 암 투병을 통해 얻은 교훈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 너희도 이 글을 읽으면서 비극을 통해 어떻게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고통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가치는 몇 년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인생의 교훈을 얼마나 잘 받아들였는지, 인생의 다양하고 복잡한 경험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정제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죽음이 임박하면서 인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갑작스레 확인했지만, 그로 인해 좋은 점도 있었다. 관계의 진전 속도가 빨라져서 오후에 한 번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지인이 친구가 되었다. 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좋은 사람과 친해지는 것 말고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아무 기대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두렵지 않았어.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것 말고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나 할까. 내일이든 다음 달이든 내년이든, 미래에 대해서는 일체 생각을 안 했어." 어머니는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헛된 희망을 떠올리지 않았고 그 덕분에 무기력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생각을 멈추고 본능에 따라 매 순간을 살아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생존 모드였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나는 오래전 신들에게 묻곤 하던 온갖 질문을 하지 않게 됐다. 어쩌면 나의 우주는 내 아쉬움과는 달리 아름답고 완벽하고 멋지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두 번째와 세 번째 가설처럼 훨씬 더 비극적인 운명으로 전개됐을 수도 있었다. "병" "좌절" "불행" 그리고 "어린 나이에 사망." 이것이 손금을 봐준 여자가 내 우주에 대해 한 말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운 좋은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우리는 주어진 조건을 갖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한다. 그게 바로 우리의 선택이라고 그 여자가 말했다. 나는 내가 참담한 조건으로 태어난 이유를 알고, 나를 위해 준비된 우주의 계획이 뭔지 깨닫고,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아내는 데 집착한 나머지 자유로운 선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다.
전이암이 몸에 품은 채 2년 동안 굳건하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중요한 진실이 있다. 암이나 암 치료로 인한 육체적 고통 혹은 장애를 제외하면 내 꿈을 가로막는 것은 암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휴가를 가지 못하게, 새 집을 사지 못하게, 원하는 일을 못 하게 막는 것은 암이 아니다. 암에 대한 두려움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굴복해버린 정신이다. 정신의 마비는 사실상 수정할 수 있는 꿈, 심지어 암 진단이 후 생겨난 새로운 꿈까지 뭉뚱그려 죄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본능의 지배를 받는 물고기와 인간을 구분하는 또 다른 특징은 우리가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자적 의지와 자결 능력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요소이자,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이다. 옴짝달싹하기 힘들고 제어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운명을 선택한다. 만약 누군가 내게 선택지가 없다고 아무 생각 없이 본능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다면, 그것은 인간으로서 나의 미덕과 개인적 선택권을 빼앗는 행위다.
이 책을 읽게 될 분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 삶의 여정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일상의 고통에 매몰되지 말고 느긋하게 삶을 즐기세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고 확률 따윈 무시하세요. 아들 딸 남편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세요. 살아가세요. 친구들. 그저 살아가세요. 여행을 하세요. 여권에 스탬프를 모으세요.
우리는 거대하고 장엄한 풍경의 그림자가 아니라 일견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실은 좁디좁은 한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삶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를 작고 무기력한 존재로 만드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무기력함 속에도 인생의 진실이 있다. 그리고 그 진실 속에 인생이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암 환자로서의 삶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내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든 결코 혼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혼자가 아닐 것임을 깨닫길 바란다. 나의 풍요로우면서도 뒤틀리고 다난했던 인생을 읽고 여러분이 울고 웃으며 기쁨과 슬픔을 느끼기를 그리고 힘을 내어 지혜와 진리를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