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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산 것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 - 내 인생의 판을 바꿀 질문
김창옥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월
평점 :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김창옥 님의 강연을 찾아 듣는다. 이분의 강의를 듣고 위로받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댓글로라도 응원해 드리고 싶었는데, 이분의 강연 동영상 밑에는 댓글을 쓸 수 없게 되어있어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책을 읽어보니 알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쾌활하고 밝은 면이 많은 강사님인 것 같은데, 내면의 모습은 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어릴 적 부모님께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것도 영향이 있다고 강사님은 솔직한 모습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런 강사님의 모습이 '이상해~'라고 여기기 보다 '아.. 나도 그런데..'라는 생각을 많이 할 것 같다. 그리고 솔직함에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을 정도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자신의 상처를 꺼낸다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보면서 '내 것과 같네.' '나보다 큰 상처를 가지고 있네.'하고 그 부분에 있어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겉으로 봤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강사. 강의로 가장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한 사람일 것 같은데, 이런 아픔이 있었구나. 이런 힘듦이 있구나를 알면서 그 점에서 사람들은 더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너무나 완벽했다면 몇 번 듣고 말았을 것 같다. 나와 똑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 희망을 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김창옥 강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혜민스님이 생각이 났다. 혜민스님도 글로서 치유를 해 주시는 분이시다. 다만 혜민스님의 글을 짧고 그 안에 여운을 담고 있는 반면 강사님은 친절한 성품 그대로 길게 설명하듯 적어주신 느낌이다. 그리고 예민한 성격과 뛰어난 관찰력 덕분에 주변에 작은 것도 그냥 놓치지 않고,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깨달음이란 내가 책을 아주 많이 읽거나 도를 닦을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생기는 것 같다.
시간이 없어 강사님의 강의를 못 들어본 분이라면 대신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대신 너무 빨리 읽지 말고 숲길을 걷듯, 천천히 혼자서 깊게 생각하며 읽기 정말 좋은 책인 것 같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 삶에서 부딪히고 찢어지고 부서지고,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그 이유를 밖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내 걸음걸이를 한 번은 점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복해서 넘어지는 내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이 동네에서 넘어지니까 이 동네를 떠날 거야.' '자꾸 이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니까 이 직정을 떠날 거야.' 그래서 계속 옮기고, 옮기고, 옮깁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내게 이사한 일이 벌어진다면 나 자신 안에 갇혀 있던 나를 밖으로 꺼내 내 걸음걸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삶에서 계속 넘어진다면 나의 걸음걸이를 체크해 보세요. 내 환경이 울퉁불퉁 거칠어서, 내 주변에 저런 인간들뿐이라서, 내가 워낙 운이 없는 사람이라서 넘어지는 것이라고 핑계를 대다 보면 우리는 점점 좁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걸려 넘어질 물건은 수없이 많습니다. 언제까지 그것들을 탓하며 살 수 없습니다. 실패가 반복된다면 내 삶의 걸음걸이가 어떤지를 돌아보세요. 만약 문제가 있다면 지금, 돈을 쓰고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그리고 그에 앞서 의지를 단단히 하십시오.
'명품 백을 너무 가지고 싶어. 내게 무슨 감정적 결핍이 있는 걸까? 사실 마음이 평안해지면 이런 거 다 쓸데없는 건데...' 굳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고 싶으면 가방 몇 개 사보십시오. 무리를 해서라도 사보세요. 그리고 그 끝에 가 보세요. 끝에 가서 스스로를 바라봐야죠. 너무 중간에서만 보거나, 아예 시작점에 서서 보지 말고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젊은 날에 엄청난 구도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철이 드는 게 맞는 거고, 마찬가지로 너무 젊은 나이에 철들려고 애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은 일종의 기도이자 주문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자기 이름을 새로 짓고 싶을 때, 무언가 소망을 담아 짓습니다. 소망을 담아 이름을 짓고 그것을 계속 불러준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당신의 소망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저는 '빈티지'를 이렇게 정의 내렸습니다. 시간을 이긴 물건. 시간을 이겨낼 물건. 사람에 비유하면 생의 고통을 지나온 사람, 인간관계로 말하면 시간이 지나도 퇴색하거나 빚이 바라는 게 아니라 더 깊어지는 사이.
한 번은 제 강연에 삼수한 대학생이 왔는데 자신이 예전과 다르다면서 과거의 자신을 되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스물둘, 생각이 깊은 청년이었습니다. 삼수를 하는 동안 내면이 성숙한 것이지요. 그 기간 동안의 상처와 깨달음, 현역들은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한 번에 들어간 사람과 한 번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해본 사람은 다릅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때'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부모가 혹은 주변 사람이 어떻게 반응해 주었느냐에 따라 내 자존감의 기본기가 닦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넌 존재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면 아이는 '나는 소중한 사람'으로 자신을 내면화할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넌 충분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면 아이는 '나는 무능한 사람,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내면화할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 누구나 꿈꾸는 삶일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길이자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점은 누구나 동의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찾아보세요.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은 아닙니다. 나이를 먹어도 아이로 남아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알고 선택해본 경험이 쌓이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냅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여유롭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사십 대 이상의 어른들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죠. 사느라 바빴고, 가난했고, 아는 것이 적었기 때문에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지요. 자신에게 맞는 게 무엇인지 자꾸 시도해보고 실패도 해봐야 다시 도전도 할 텐데 삶이 버거워 그렇게 못 해본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 뭘 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삶에 우울증이 찾아옵니다. 마음의 병을 이기려면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업종만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분명한 가치를 찾아가세요.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 나의 폭죽은 무엇인지. 예를 들어 나는 이 일을 할 때 무엇 때문에 행복한지 생각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