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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했어요 - 거짓일지라도 나에게는 꼭 필요했던 말
박광수 지음 / 메이븐 / 2018년 10월
평점 :
나는 박광수 님의 만화를 신문에서 보고 자란 세대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분의 이름만 들어도 정말 반갑고 그분의 만화나 글이 기대가 된다. 이분의 만화는 몇 컷 되지 않지만 그 짧은 컷 속에서 늘 따뜻함을 주었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할까?라며 감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하는 깊이도 훨씬 깊은 사람인 것 같았다. 어릴 적 그의 만화를 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그는 나에게 완벽한 글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참 잘했어요'라는 책에 자신은 문제아였고 미운 오리 새끼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재주와 꿈도 없었다는 그는 오리 새끼였다. 나이 들어 말썽을 피우면서는 미운 오리 새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리곤 그는 20대 후반 만화가로 백조가 되었다. 정말 그의 만화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책에서 보면 그때 그는 참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부와 명성을 얻어서 정말로 잘 지내는 줄만 알았던 그가 다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나 보다. 갑작스러운 성장에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았고, 또 부인과의 이별도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지만, 그는 또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것이다.
그래도 그의 글은 여전히 따뜻하다. 인간적으로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글에는 여전히 따뜻함이 묻어난다. 사람들은 그를 또 물 밑으로 끌어당기나 보다. 모든 상황들이 그렇게 만들어져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미운 오리 새끼라도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백조가 한번 돼보았던 자신의 모습보다, 새처럼 날지도 못하고 아름답게 노래하지 못하고 시끄럽게 꽥꽥 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다고 글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좋다. 그는 자기 자신을 못생기고 뚱뚱한 남자라고 하지만, 글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푸근하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 것 같다. 작가님이 이런 글들을 더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다. 세상의 미운 오리 새끼들에게 더 많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글로서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응원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최선을 다하는 순간을 가장 근거리에서 지켜보는 일이다. 그 일은 자랑스러울 수도 있지만 때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응원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 역시 누군가를 응원한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응원하며 늘 해주셨던 말을 떠올린다. 오늘도 파이팅!
내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던 시간에도, 아버지는 내 기사들로 스크랩북을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사람 그래서 모든 것이 서툴렀던 사람. 어쩌면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당신의 손을 잡아드린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장 과정이 6주뿐이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모소 대나무는 순을 땅 밖으로 내기 전에 먼저 뿌리를 땅속으로 깊숙이 뻗어 자신을 튼튼히 하는 일에 4년이 넘는 긴 시간을 할애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긴 시간 동안 더 튼튼하고 더 굳건하게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순이 돋으면 길게 뻗은 그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한꺼번에 빨아올려서 순식간에 자신을 키우는 겁니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나무는 세상을 살아가며 세차게 내리는 비와 바람과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하늘로 높게 뻗어있는 대나무를 보며 경탄해야 하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빠르게 성장해서가 아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긴 시간 동안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무언가에게 미쳐 살아도 괜찮다.
우리에게 <왈가닥 루시>라는 시트콤으로 잘 알려진 미국 배우 루실 보이 한말이 있다. "나중에 인생을 돌아볼 때, '젠장, 해보기나 할걸.'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세상에 내가 그런 짓도 했다니.'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인생의 답안지를 대하는 태도
<중간 생략> 지금 내 삶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밀려 쓴 인생 답안지를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은 인생이 나에게 던져주는 숙제를 비록 또 틀릴지라도 열심히 고민하고 내가 선택한 답을 성실히 적어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고 비록 밀려 써버린 내 인생 답안지이지만, 그때처럼 운 좋게 점수가 더 잘 나오길 빌어본다. 아직도 난 인생에서 뭐가 맞고 뭐가 틀린 지 잘 모르지만 말이다.
올라가는 길에서는 보지 못한 행복, 내려가면서 보았네
<중간 생략> 그날은 어느 노시인의 시 한 줄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가만 생각해보니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완전히 좋은 일도 없지만 완전히 나쁜 일도 없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재미있고 조금 살맛 난다.
'더 좋은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나쁘거나 이상한 행동은 아니다. 셋ㅇ 모든 사람이 자신과 인생을 함께할 좋은 사람을 찾는다. 단지 내가 그들에게 아쉬운 건 좋은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만큼, 과연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묻고 싶다.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내 기준으로 좋은 사람은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당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렇게 찾아도 없다던 그 좋은 사람이 꼭 당신 앞에 나타나줄 거라고 믿는다.
살면서 그때와 비슷한 일들을 경험한다. 당시 이성을 잃은 친구의 모습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은 쉽게 잊고 자신이 받은 상처만을 기억한다. 상처받았을 때 내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오늘처럼 상처를 준 일은 없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반성은 쓰지만 인생에서 언제나 큰 약이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산을 올랐는데, 그 와중에 한 명의 컨디션이 나빠 정산에 함께 오르기 힘들다면 당연히 나머지 두 명이라도 정상을 밟고 와야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거기까지 그 고생을 하며 갔는데 정상을 100미터 남기고 돌아와? 그렇게 마음속으로 그를 힐난하며, 그의 말은 전부 멋지게 보이기 위한 포장이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자의 핑계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 그가 한 의미심장한 말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상에 있는 순간은 짧지만, 내려와서 같이 살아야 할 시간은 굉장히 길어요." 맞다. 우리는 찰나의 짧은 영광을 위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잃고 사는 바보 같은 삶을 살아왔다. 긴 시간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비로소 조금씩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