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김신회님의 글이 좋다. 약간은 찌질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는 것이 참 좋다. 책 제목도 참 마음에 든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책 표지처럼 뒹굴거리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는데, 늘 나는 속이 쓰리고 가슴이 아프다. 책 표지도 너무 마음에 든다. 느긋하게 햇살이 내리쬐는 날 고양이와 함께 뒹굴거리고 있는 모습이 왠지 이해가 간다. 이 책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표지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도 엄격하다. 나 또한 그렇다.

괜찮은데, 본인만 안 괜찮다.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는데, 내가 내 자신에게 뭐라고 한다. 이러고 있으면 안 돼! 이렇게 살면 안 돼!라며 스스로를 볶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냥 좀 찌질하게 살면 안돼? 아니 찌질한것도 아니지... 그냥 이렇게 좀 살면 안 돼?라고 내가 나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나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잖아. 그런데 그렇게 살고 싶어?" 그러면 나는 또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어떤 모습이건 두 모습 다 나의 모습이다. 찌질하게 누워있는 모습도 나이고, 활기차게 활동하는 모습도 나이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도 그 사람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괜찮다.. 괜찮아. 남들 열심히 뛸 때 나 혼자 찌질하게 방구석에 누워있어도 괜찮다. 대신 매일매일 이러고만 산다면 문제가 되지만, 나라는 사람은 매일 이러고 있어!라고 해도 못 있을 사람이기에 괜찮다. 오늘 하루 이러고 있어도 괜찮고, 이번 주도 괜찮고, 이번 달도 괜찮다. 언제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 대신 이것도 내 숨이 헐떡거릴 때까지 뛰어 본 사람이라면 괜찮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해 본 사람만이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도 그런 사람만이 느껴볼 수 있는 거라 생각된다.

작가도 보노보노 시리즈로 엄청난 인기와 바쁨을 실감하고 잠시 팔목 증후군 때문에 쉬어 본 것이다. 한번 열심히 뛰어봤기 때문에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거라 생각된다. 내가 나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건, 내가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될 때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한 우리들에게 삶이란 늘 전력질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떤 모습이건 괜찮다... 괜찮아...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해 줘야 할 말인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산다. 쉬는 날에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고, 진짜 휴식이 뭔지도 알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밖에 없는데 정작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는 사람은 없다. 다들 힘들어하고 자주 외로워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시간에 더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피로와 불안으로 가득 찬 일상을 보내면서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었으니까.

'나는 네가 이해가 안 가'라는 말은 어찌 보면 지극히 맞는 말이다. 서로는 다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우리는 누가 나를 답답하게 할 때, 누군가가 미울 때 그 말을 쓴다. '나는 네가 이해가 안 가'라는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딸기를 욱여넣으며 생각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걸 먹으며 사는 게 왜 그렇게 힘들까. 그건 돈이 없어서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나에게 허락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좀 너그러워져볼까. 다른 사람이 그렇게 안 해주면 나부터 좀 그래볼까.

만화 <보노보노>를 만든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의 내한 강연이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숨 걸고 하지 마세요. 무슨 일을 하든 죽을 듯이, 아등바등 대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이 반짝! 했다는 편집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말이 너무 좋은 거예요. 맞아, 무슨 일을 하든 목숨 걸고 할 필요는 없는 거구나 싶어서요. 그래서 이제는 일할 때도 그 말이 생각나요. 실수하거나 계획했던 업무 일정이 밀어져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죽는 것도 아닌데 뭐.' 따지고 보면 사람 목숨이 달린 일도 아닌데 뭐 그렇게 흥분하고 안달복달해왔나 싶어요. 그 생각을 하면서 일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평소에 뭘 좋아하세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평범한 질문인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작은 거, 사소한 걸 좋아해요. 대단한 거에는 별로 끌리지 않아요." 구체적이지도, 적절하지도 않은 대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사소한 일에 감동하고 별것 아닌 일이 고맙다. 왜냐하면 그 별거 아닌 일이 사실은 별거라는 걸 알아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힘든 일이 있으면 입맛이 없거나 잠을 못 자는 게 다였는데 언제인가부터는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없던 위염이 생기거나, 장이 트러블을 일으키거나, 피부가 뒤집어지거나 갑자기 가려움증이 생각도 하고... 마치 몸이 이곳저곳에서 소규모 시위를 벌이는 것 같다. 허가해 준 적도 없는데 불쑥불쑥 열리는 시위. 그동안은 마음만 말을 안 듣더니 이제는 몸까지 말을 안 듣는구나.

어느새 마음만 불편했던 때가 그리워진다. 마음이 힘들 때는 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툭하면 몸부터 고장 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위해 갖추어야 할 자세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다그치거나, 약한 척하지 말라고 이를 악무는 것보다 내 몸이 벌이는 시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일 테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조차도 짬을 재서 쉬고, 일부러라도 머리와 마음에 틈을 만드는 일을 조금씩 깨우쳐가고 있다.

사과의 타이밍은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이 정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용서하겠다. 다 잊어버리겠다는 결심은 사과받을 사람만의 권리다. 사과하는 사람은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고 이후의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만 나처럼 너무 늦게 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사과받을 사람이 품고 있는 타이밍의 마지노선조차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나보다 더 화를 내고 크게 욕해주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풀어진다. 나를 골탕 먹인 사람을 '이상한 인간'이라고 부르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돌 아이'로 매도하는 주변 사람들 덕분에 넘어지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분노나 서운함보다 힘이 센 것은 누군가가 나의 감정에 동참해주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렇게 내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한 발자국 더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사람이 한없이 복잡해 보여도 이렇게나 단순하다.

"네가 잘하는 거 해. 잘할 거 같은 거 말고 잘하는 거 해. 잘하는 게 있는 것도 어려운 거다? 잘하는 거 잘 되는 것도 어려운 거고."
내가 잘하는 것? 사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는 건데. 뚝심 있게 이 길이 내 길이라고 내가 써야 하는 건 이런 이야기라도 확신하지 못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데, 언니나 신조 감독을 보면 자기가 뭘 잘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아직도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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