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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들 - 인생의 진짜 목표를 찾고 사랑하는 법
하노 벡.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자가 말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요즘 책들이 " 행복"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도대체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경제학자도 이야기하는 것일까? 소소한 행복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나에게 경제학자의 행복이 궁금해졌다. 경제학자라고 하면 근거를 대고, 숫자로 나타내길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행복이라는 것이 근거가 있고,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행복의 근거는 무엇이고, 어떻게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경제학자는 행복에 미치는 요소를 조사하고, 그 가격을 정함으로써 행복의 가치를 정하려고 했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행복을 측정하려고 했으나,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행복은 그렇게 객관적으로 자료를 통해서 나타내는 것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더 많이 성장하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돈을 벌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경제지수가 낮은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 그렇다면 행복과 경제는 더 상관없는 것 같은데, 막상 그렇지도 않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고 한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사는 삶이 곧 행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쫓아서 간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행복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발견이다. 내 주변에서의 발견. 그것이 곧 행복이요. 행복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지?"라는 질문에는 이미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아'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말이다. 마지막 역자의 말처럼 "왜 이렇게 행복하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 안에서 행복은 이미 찾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너무나도 빨리 변하고, 바뀌고, 점점 더 힘든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작은 행복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더 이상 작은 행복이 아닐 수가 있다.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아무리 세상이 그렇더라도 내 안에서 발견하는 행복이 진짜 행복인 것이다. 1000만 원이 있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1만 원이 있더라도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것이 더 가치 있는 것처럼 행복은 아무리 경제학자들이 숫자로, 혹은 돈으로 표현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인 것 같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 행복을 단념하는 행위다. 비교는 불만을 낳고 불만은 불행을 낳는다.
행복은 운명이 아니다. 비록 많은 요소가 유전적으로 정해졌지만,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낙관성은 하급 할 수 있다. 낙관성이 행복한 삶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걸 의심할 사람은 없으리라.
삶의 만족도와 소득의 연관성에 관한 일이면, 우리의 성격도 한몫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신경증 요소가 많은 사람, 그러니까 겁이 많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내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돈이 필요치 않다. 비록 성격을 맘대로 고를 수는 없지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을 다스릴 수는 있다.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때때로 달라이 라마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마티유 리카르를 생각하라.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따라 걸을 때 리무진이 지나간다. 이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3년 뒤에는 저 사람도 걸아갈 거야." 이것은 비생산적 질투다. 아버지는 다르게 말할 수도 있었다. "3년 뒤에는 우리도 저런 자동차를 탈 거야." 이것은 다른 종류의 질투, 생산적 질투다. 이런 질투는 동기부여 효과를 낸다. 질투가 나고 그래서 그것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첫 번째 질투는 자기 파괴 효과를 내지만, 두 번째 질투는 그 반대 효과를 낸다. 질투가 우리의 행복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생을 좌우하는 두 가지 질투 중에 어느 질투가 지배적일까?
소득과 행복에 관해 이제 마지막 관점이 하나 남았다. 자유! 자유가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명제이고 실험으로도 검증되었다. 행복을 만끽할 시간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 달리 표현하면, 돈보다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행복에 도움이 되는 소비와 지출 방법을 배워야 한다. 돈을 쓰는 것도 기술이다. 우리가 지출하는 모든 돈이,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는 행복감을 주는 건 아니다. 포도주에 관해 전혀 모른다면 최고급 포도주라도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지출에 관해 전혀 모른다면, 당신이 지출한 수많은 돈 역시 당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후속 연구와 마찬가지로 워너는 이것을 토대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운명이 아무리 많은 걸림돌을 인생길에 놓더라도, 인간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들은 많은 것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회복탄력성 혹은 저항력이 있다고 한다. 회복탄력성은 원래 재료과학에서 쓰는 개념이다. 물질이 심하게 일그러지거나 늘어났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면 회복탄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 정신이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잘 이겨내는 사실은 대단히 놀랍다. 확실히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것 같다.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견딜 수 있고, 아주 많은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역시 회복탄력성이 있다. 이런 능력이 없었으면, 그리니까 회복탄력성이 없었으면, 지구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터다.
우리는 행복이 인생 여정에서 어떻게 발달하는지 아직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 그러나 더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 수 있다. 그것은 간단하다.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렇게 권한다. "더 행복하게 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시간관리를 잘하는 것이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에 할애할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좋았던 그때 그 시절'인 것이다. 왜 그럴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과거와 연결하기 때문에 과거를 아름답게 정의한다. 또한 청년들도 과거를 향수에 젖어 칭송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과거와의 재연결'은 더 행복하게 느끼기 위한 '자체 속임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제목이,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에 나오는 대사로, '바꿀 수 없는 것을 잊는 사람은 행복하다'이다. 의도적으로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부정적인 순간을 지워버림으로써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더 행복했다고 느낀다. 뇌는 우리가 더 잘 살도록, 더 행복하게 살도록 우리를 속인다.
불행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처리한다는 연구결과는 기억과 행복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었는지 보여준다. 행복한 사람은 과거의 행복 경험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갈등이 생기지 않는 수준에 만족한다. 그들은 오히려 과거의 추억을 방해할 수 있는 불편한 기억을 삭제한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말을 빌리면, 불편한 기억을 잊는 사람이 행복하다.
행복으로 가는 하나의 길은 없다. 행복을 만드는 특허 조제법은 없다. 행복의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은 없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분명히 사람 수보다 많고, 적어도 사람 수만큼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극소수만이 행복을 쉽게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