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
뤼후이 지음, 김소희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에세이집이라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다 읽고 난 느낌은 이 책의 표지처럼 따뜻한 파스텔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하면 이런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을지...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은데... 감정이 이렇게 따뜻하지 못한 것 같다. 언어의 온도를 읽은 느낌과 비슷했다.

세상이 혹독해 보여도, 운명이 날 휘두르는 것만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 운명의 선물이 조금 늦어지거나 느려지거나 굽이져오는 것일 뿐 우리를 등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일 뿐, 세상이 우리를 몰래 사랑하고 있다는 번역자의 말을 읽고 세상을 참 긍정적으로 예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세상은 아직 살만하지. 죽은 이가 그리워하는 내일이 있는 우리에게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 그렇게 느끼면서 살고 싶다.

중국도 우리와 환경이 많이 다르지 않다. 어쩌면 더 많은 인구 때문에 경쟁력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의 취업은 쉽지 않고 그래도 창업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청년들과 별다름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따뜻한 글을 쓸 수 있는 건 마음이 따뜻해서 일 것이고, 가능하면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대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잔잔하게 위로받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책. 파스텔 톤의 옷을 입고 기분전환하고 싶을 때 추천해 본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사랑은 의무나 임무 같은 것이 아니다. 마음과 마음이 부딪치는 것이고 서로에게 녹아드는 것이다. 정해진 방식도 지켜야 할 규칙도 없다.

긍정적인 에너지란 우리 손에 놓인 막대 사탕 같은 것이다. 추위와 배고픔은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용기와 희망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나에게는 풍족한 물건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필요한 물건일 수 있다. 내가 하하 웃고 있을 때 누군가는 끝없는 나락 속에서 고통과 막막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에는 영혼을 두드리는 짧은 이야기가 지푸라기가 되고 등대가 되고, 사탕이 된다. 너무 작아 보잘것없어 보여도, 어쩌면 위력 없는 위로일지라도, 때론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생은 수학 문제가 아니다. 무작정 공식을 가져다 대입할 수 없다. 시험에 빗대자면 인생은 작문 시험일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과 감각이 있으니 자유롭게 초안을 잡고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하면 된다. 점수가 어떠하든 적어도 다른 사람의 답을 베끼는 일은 없어야 스스로 떳떳하지 않을까.


반드시 완벽한 결과가 보장돼야만 해보겠다는 걸까? 최고가 못 되면 나 자신한테 미안해질까 봐? 많은 사람들이 '최고가 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수많은 선택을 포기한다. 난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난의 가장 큰 고통은 'Yes' 혹은 'No'를 선택할 권한 자체가 없다는 데 있다. 눈앞에 직면하게 되는 건 언제나 'No'라는 길뿐이니까.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협박을 한다거나 지나치게 구는 경우가 아니라면 크게 미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대해 스스로 매기는 값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상대가 부른 값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때, 우리는 기꺼이 더 주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을 주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면 격려의 의미?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저 그 순간, 진심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의 표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좋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들이 없어도 해는 뜨고 달은 지고,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지만 그들이 있기에 세상을 한층 더 감싸 안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들이 있기에 모든 것이 이토록 사랑스러워진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고, 그게 아니라면 돌아서서 가는 거야. 그 비참한 모습을 보고만 있거나 폐를 끼쳐서는 안 돼." 삶도 죽음도 천명에 달렸다. 내 능력에 한계가 있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아주는 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건 무관심이 아니라 독립된 세계에 대한 이해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을 탓한다. 자신은 '좋은 사람'만 만나길 바라면서 정작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는 생각하지 ㅇ낳는다. 설령 나에게는 철저하게 '나쁜 사람'일지라도 법을 어긴 게 아닌 이상 그는 그저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다. 그도 나처럼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는 인정받는 사람이니까. 조금 더 현실적으로는, 일단 상대방과 함께 일을 하기로 했다면 상대방의 장점을 크게 봐야 한다. 칭찬하고, 발맞추고, 포옹하며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서로가 '윈윈'할 수 있다.

나는 자기 일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들을 존경한다. 평범한 인상에 왠지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집어올린 수박이나 우글거리는 벌레, 간단한 마사지 동작 하나에서도 깊이 숨어있던 예리함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그 예리함이 막연하고 둔탁한 이 세상을 찬란한 빛으로 쪼개는 것이다.

그들이 있어 우리는 직업이라는 단어의 참뜻을 알 수 있다. '직'은 매일 출퇴근하고 월급을 받는 일이다. 그러나 '업'은 일종의 무형 에너지다. 노력하는 사람 앞에 서면 존경심이 고개를 들게 만드는 에너지. 우리는 직으로 삶을 꾸려가고 업으로 세상에 선다. 취직은 생존을 위한 것, 업은 종사는 삶을 위한 것이다. 직을 차차 업으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고, 또는 자신만의 업을 찾은 뒤 다시금 직으로 꾸려 갈 수 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갈 때 우리 삶은 평안해지고 이 혼란한 세상에 흔들림 없이 우뚝 설 수 있다.

'센스 있게 행동한다'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철이 들다'일 것이다. 상대방을 살펴 심중을 헤아리고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억지 부리지 않고 요구하는 것. 이건 용의주도하거나 능글맞은 행동이 아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마음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태도다.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건 어렵다. 그러나 센스 있는 사람이 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운명은 결코 저 높은 곳에서 우리를 휘두르는 지배자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순간 소리 없이 우리 곁을 지켜주고, 언제든 손을 내미는 수호천사가 되어 준다. 운명의 선물이 조금 늦어지거나 느려지거나 굽이져 올 수도 있다. 그 또한 예쁜 리본을 묶으려 애쓰고 있는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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