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솔로사회 - 2035년 인구 절반이 솔로가 된다
아라카와 가즈히사 지음, 조승미 옮김 / 마일스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책 제목부터가 나를 이끌었다. 2035년 그러니까 17년 후, 인구 절반이 솔로가 된다는 일본의 작가의 주장을 기본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일본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된지 한참 되었다. 그런 이유 중 하나가 결혼을 하지 않으니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점점 없어지고 노인들만 남는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매우 정확한 눈으로 사회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결혼하지 않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평가하는지에 대한 주장부터 한다. 우리도 일본사회랑 비슷하기 때문에 작가에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결혼하면 행복하고, 하지 않으면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안 했다는 것으로 뭔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리석은 판단이다. 결혼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해하며 살아가는데, 왜 결혼이라는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는지... 점점 이혼율도 늘어가고 있다. 재혼율도 늘어가고 있지만, 재혼하는 사람들이 초혼하는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보다는 양쪽 다 재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전에는 사회 자체에서 남성들에게 결혼을 하라고 밀어줬던 케이스였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취업을 한 남성이라면 급여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크게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된 생활을 누리려고 회사에서도 결혼을 미는 형태였지만, 이제는 일본도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들어서면서 어느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다.

참 재미있는 게 여성이 사회생활을 오래 하고, 급여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남성은 급여가 낮고 학력이 낮을수록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는다. 이런 비율로 비혼자가 많기 때문에 결혼의 매치가 안 된다는 것도 정말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일이다.

일본이 2035년 인구의 절반이 초솔로사회라고 하면 적어도 2055년에는 대한민국에도 이런 시대가 올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의 시대는 반이 솔로 사회를 맞게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도 본인의 선택인 만큼 그 안에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그대로 아이는 한 번쯤 낳아볼만해라고 말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그때쯤 이 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것도 궁금하다.

<다시 보고 싶은 글>
인간은 집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협력하지만, 그 집단을 유지하는 데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는 철저히 공격성을 보이는 것만 같다. 제멋대로 행동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비난하고, 조그만 실수에도 사람을 공격한다. 집단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은 이에게 제재를 가한다. 심지어 도움을 구하는 약자도 내팽개친다. 이 모든 것이 '사회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종신고용, 연공서열과 같은 제도 속에서는 인생 설계가 단순했다. 지속적이고 안정된 경제적 기반이 있을 때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인생 계획을 세우는 게 쉽다. 생애 미혼율의 급상승은 경제적 기반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사라진 시점부터 시작됐다. 이는 자신의 앞날이 불투명하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는 결혼할 수 없다거나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대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즉 회사 시스템이 남성의 결혼을 밀어주는 방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남성이 결혼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현재 60대 이상 기혼 남성들은 본인들만 모르고 있을 뿐, 이러한 시대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반대로 보면, 이 사실은 남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결혼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애초에 주위에서 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남성은 결혼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미혼자는 여유고 포도는 결혼이라는 소리다. 사람은 자신의 상태가 바라던 바와 다를 때 마음속에서 느끼는 불협화음을 피하고 싶어서 자신의 상태에 맞춰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바꾸려 한다. 이런 인지부조화 이론을 들어 미혼자의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신 포도에 비유한 것이 꼭 틀리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기혼 남성이 결혼이 좋다고 하는 주장 또한 신 포도나 마찬가지다.

나는 한 인간의 가치가 고작 결혼으로 그러니까 결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강박관념처럼 결혼 규범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결혼을 못하는 거라 생각하고 자신감마저 잃는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간단히 정리하면 남성은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결혼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결혼에 관해서 여성은 경제적 안정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남성도 결혼으로 인해 자신을 위해 쓸 돈을 포기하게 되는 것을 극도로 꺼릴 것이다. 어쨌든 결혼에 대한 의식을 보면 남성도 여성도 어차피 돈과 관련되어 있다. 여자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돈이고, 남자가 결혼하기 싫어하는 이유도 돈이다. 이 문제는 남녀가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이므로 앞으로 비혼화가 진행될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연수입별 남녀 생애 미혼율 자료를 보면 성별 차가 분명하다. 연 수입이 낮은 남성일수록 생애 미혼율이 높고, 반대로 연 수입이 높은 여성일수록 독신일 가능성이 높다.

결혼 안 한 사람은 승진 못 시키겠다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아이를 낳아서 키워본 적이 없는 미혼자는 부하를 못 키운다는 논리가 들어 있다. 과연 아이를 기르는 것과 성인인 부하는 육성하는 것이 정말 같은 문제일까.

젊은이들의 소비 흐름이 물건의 소유를 중시하는 소유가치에서 경험을 중시하는 체험가치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뀐 것인데, 이런 현상은 최근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내가 '체험가치로서의 소비'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2000년에 출판된 미국의 경영학자 번트 H. 슈미트의 책 <체험 마케팅>을 읽었을 때다. 슈미트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연결할 수 있고 경험가치를 제공해 주는 제품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비 방식은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다음 단계의 방향이 주로 솔로 생활자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과거에 물건 자체가 목적이었던 소유로서의 소비와 달리 소비 방식은 자기표현, 커뮤니케이션, 체험의 수단으로 이행했고 이제 소비행동은 정신적 안정이나 충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소비의 목적은 더 이상 소유가치도 체험 가치도 아니고, 소비를 통ㅇ해 얻을 수 있는 정신 가치로 그 중심이 바뀌고 있다.

에모이(감성적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젊은이들만 쓰는 말이 아니다. 이 단어는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이미 10년 전에 나와서 통용되는 말이 됐다. '에모(emo)'는 영어로 감정(emotion)의 약자고, '이'는 형용사 어미를 나타내는 일본어다. '에모이'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중간 생략) 기본적으로 '에모이'는 마음을 흔드는,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는'이란 뜻이다. '잘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왠지 좋다'라는 말로 논리는 넘어선 정감을 말한다.

솔로 남녀는 이런 가족이 없다. 기혼남녀가 느끼는 '가족이 있는 일상의 행복'이란 건 애초부터 없다. 그렇다고 가족이 없어서 속상해하거나 힘들어한다는 뜻은 아니다. 뿌리 깊은 사회의 결혼 규범이나 가족만이 최고하고 보는 신앙과도 같은 선입견에 의해 솔로 남녀는 결혼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자신에게 인지적 부조화를 느낀다. 그래서 '미혼으로 가족을 안 만드는 사람은 불행하다'라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미혼으로 가족이 없지만 충분히 행복하다'라고 느끼고 싶어 한다. 이런 생각이 승인 욕구나 성취욕구를 충족하려는 소비행위로 연결된다.

과거에는 물건의 품질을 향상시켜 그것만 증명하면 팔렸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물건을 만들거나 파는 사람은 아무래도 완성품을 제공하겠다는 마음이 우선한다. 그런데 물건의 소유가치를 그렇게 중시하지 않게 되고 또 시장에 비슷한 물건이 넘쳐나면서 아무리 생산자가 열심히 만들어도, 소비자가 물건 자체의 가치, 즉 품질만 보고 물건을 선택하지 않게 됐다. 따라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미완성 제품'이다. 미완성인 상태로 제품을 제공하고 고객에게 완성시키는 과정을 맡기는 것이다. 제조 과정 단계 도중에 놓인 상품을 판매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또 상품 개발 단계에서 고객의 의견을 더 들으라는 소리도 아니다. 생산자가 상품 자체는 확실히 완성하되, 그 전달 방식과 판매 방식을 바꾸란 뜻이다.

소비자에게 제품이란 어디까지나 미래에 얻을 기쁨을 획득할 도구다. 생산자는 소비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지 미래의 출발점을 제시해주면 된다. 상품이 소비자의 미래 행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미완성이란 것은 이런 뜻이다. 또 소비자가 어떻게 생동할지는 소비자 자신의 문제로 보면 된다. 소비자가 움직이면 움직인 것만큼 거기에 성취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번 성취감을 맛본 사람은 계속 프로젝트에 참가할 것이다. 한번 느낀 성취감은 또 다른 성취감으로 이어진다. 성취감을 맛봄으로써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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