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다르지 않다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5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주변사람들에 대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게 되는 것은 남의 말이나 평(評)이다. 자신이 정말 그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사회성의 법칙’에 이끌려 다수의 생각이 맞을거 라는 생각에 남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되고 스스로도 그 사람에 판단을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로 인해서 생기는 판단의 오류가 바로 편견이 될 수도 있다. 학창시절 우리는 우리나라의 5천년이 넘는 긴 역사를 책 한 두권의 짧은 요점으로 배우고 받아들인다. 비록 역사교육을 담당한 선생님들의 좀 더 상세한 설명이 덧붙여지긴 하겠지만, 결국 요약에 집중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 역사서 안에 그 사건과 인물에 대한 시대적인 판단까지도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역사적이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아무래도 TV에서 방영하는 사극이나 영화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다. 때론 시청률과 흥행을 고려한 흥미위주의 픽션으로 역사를 지나치게 훼손시켜 전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긴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거나,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물음표를 던져줌으로써 역사에 대한 시각과 판단의 기준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책<진리는 다르지 않다>도 우리에게 역사의 한 단면에 대한 혜안의 깊이를 더해주는 책이다.

<진리는 다르지 않다>에서 다룬 역사는 삼국시대의 종교의 대중화를 이끌고, 국난의 현장에서 몸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선 불교, 초월의 사상으로 늘 핍박받는 민중들에게 위안의 메시지를 전한 도교, 근대로의 불을 밝혀준 천주교과 기독교, 개화기 구국의 길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횃불을 서슴없이 쥐고 앞장섰던 민족종교의 중심에서 때로는 민중과 나라를 위한 진정한 진리의 불꽃을 밝힌 종교가들에 대한 역사이다.
책에 열거된 종교가들은 우리가 역사교육 등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낯익은 이름들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잘 알고 있는 행적과 더불어 좀 더 깊은 이면의 시각으로도 조명을 해 보고 있다. 왜냐하면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역사속의 인물에 대한 판단은 시대의 다름에 따라 또 다르게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한양 천도를 둘러싼 이성계, 정도전, 무학, 이방원의 갈등관계속에서 음모를 위한 이미지조작등이 있었음은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커다란 궁금증을 자아내고, 인물에 대한 판단을 쉽사리 하기가 어렵다. 이책이 그러한 판단에 큰 잣대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심층적인 접근을 한 것 만은 사실이다. 결국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다르지 않다>를 읽다보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이 적어도 그 종교의 시작과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들이기에 그들의 행적과 그에 담긴 일화들을 보는 것만으로 지난 우리의 역사속에 함께 했던 각종교들의 태동과 더불어 변화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
저자 이이화님의 약력이 보여주듯 마지막장 ‘구국의 길에 횃불을 밝힌 민족종교’ 편은 근대사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좀 더 상세히 설명이 가미되어 있어, 다소 관심이 미흡했던 민족종교의 살아있는 이면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진리는 다르지 않다>라는 좀 색다른 책의 제목을 접하고, 이 책을 통해서 ‘종교 지도자들이 구도한 삶의 발자취를 통해서 진정 전하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자문을 던지며 궁금했는데, 이런 나의 질문에 ‘종교가 대중들에게 진정 갖는 의미’ 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감흥을 던져준 분의 이야기에서 오래도록 책장이 머물렀다. 무교회주의와 민족신앙의 얼을 밝힌 김교신과 종파와 교파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종교계의 현실에 비수를 던진 함석헌이야 말로 진정한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가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중 함석헌의 “종교는 하나다” “이단이란 없다. 누구를 이단이라고 하는 맘이 바로 이단이며 유일의 이단일 것이다” 선언과 함께 싣고 있는 ‘대선언’이라는 詩이다.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비웃는다 겁낼 줄 아느냐 못될까 걱정이로다.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보다 더 위대하다. 참을 위해 교회에 죽으리라. 교회당 탑 밑에 내 뼈다귀는 혹 있으리라. 그러나 내 영은 결단코 거기 갇힐 수 없느니라” (p.184)

아마도 모든 종교지도자들의 생각이 이 詩구절과 같았더라면 좀 더 각종교의 부흥과 더불어 대중들에게 추앙받고 스스로도 제대로 된 진리를 위한 구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책에서 강증산이 주장한 이 세계의 시대를 선천(先天)-말세-후천(後天)으로 분리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이제는 지난 과거를 말세로 구분하고 영원한 선경(仙境)의 후천(後天)을 향한 민중과 호흡하는 종교만이 세상과 어우러져 훌륭한 뒷사람의 길잡이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윤영무 지음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의 경제공황사태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10년전 IMF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폭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10년이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의 사회와 가정의 변화는 대한민국의 남자들의 강한 자존심을 자포자기로 내몰았다. 10년 전부터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가면서 회사는 오륙도, 사오정, 38선등의 신조어들로 의기소침해친 남자들의 등을 떠민다. 이렇게 가정으로 회귀한 가장들과 사회에 연착중인 청년들을 아내와 자식들의 따뜻한 격려 맞이해 줬으면 좋으련만, 격려대신 매일같이 그렇지 않아도 차갑게 느껴지는 밥공기에 잔소리로 모래알을 섞고, 앉아 있는 자리를 온통 가시밭으로 만든다. 결국 가정에서도 경제적인 이유를 붙여 이혼으로 시작된 가정파탄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또 다시 내몬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갈 곳이 없다. 이제 갈 수 있는 곳은 어느덧 어머니배속과 같은 편안함을 줄 것이란 착각 섞인 기대가 서려있는 한강주변 다리들의 난간위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남자로 살고 있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씁쓸함과 허무함은 공포감이 되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누가 왜 이렇게 대한민국의 남자들을 괴롭히는 것인가...? 결국 갈 곳은 한강다리 밖에 없다는 것인가...? 결국 이에 대한 뚜렷한 해답 또한 IMF보다 처절한 경제사정에 맞물려 희망의 빛은 사그라져만 가고 있다. 이렇게 고요한 어둠을 향해 사그라져만 가는 빛에 다시금 희망의 작은 불씨와 더불어 충만한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것이 바로 책<대한민국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무엇보다 읽으면서 이 책은 대한민국의 남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대한민국의 남자들과 함께 이마를 맞대고 호흡하면 살아가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이 읽고 남편과 아버지에게 사랑이 담긴 격려의 한마디를 전함으로써 더 큰 희망의 용기와 자신감를 심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1부 ‘대한민국의 남자로 살아가기’ 에서는 비록 전체는 아닐지라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동감하며, 고민하는 현실의 회사와 가정에서 겪는 일상의 고통들을 나열해 놓고 있다. 늘 자신의 비참함을 들어내지 않으려 가슴으로 울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남자, 아내의 의미없는 ‘공기’와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린 남자, 어느 덧 가부장적 의식의 최종적인 피해자로 남게 된 남자, 눈물을 흘릴 수 없어 술로 울어야 하는 남자, 이 모든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단 하루만이라도 대접받고 싶은 지극히 소박한 바램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가는 우리사회와 회사의 일원이며, 가정의 가장들이고, 아들들이다. 위에 열거한 남자들은 다름 아닌 내 자신의 그림자로 다가왔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해법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을 등진 회사와 아내와 자식들에게 반감으로 대처한다면 끝없는 파국만이 기다리겠지만, 다시금 자신을 추스려 작을 지혜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이들 모두에게 당당한 남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희망을 향한 지혜를 담은 지침서가 2부에 덧붙여져 있다.
 2부 ‘남자들, 새로운 삶의 문을 두드리다’ 에서는 1부의 사회와 가정에서 받는 괴로움과 고통의 굴레에서 당당히 일어서 새로운 삶의 불을 밝히기 위한 희망의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 일상으로부터의 외도로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자신감,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긴 깊은 父情의 전달, 자신만의 취미활동을 통한 즐거운 인생의 활로,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 얻을 수 있는 무한의 상상력이 줄 수 있는 원대한 희망바이러스, 아내 즉 반려자를 통해서 갖고 있는 에너지를 배가 시켜가는 법등... 결국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무엇으로 살아야할지에 대한 이정표를 그려준다. 그 중 두 아들에게 전하는 편지에서 한 구절이 공감하며 적어본다.

  “아들아, 아버지와 아들은 철길이다.
끝까지 하나가 될 수 없는 평행선이다.
그저 옆에서 너희들이 세상에 빛나길 기도한다.” (p.131)

지나친 기대나 관심이 아버지와 자식 둘을 망가뜨린다. 그저 평행한 철길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기도하는 것으로도 아버지와 자식은 빛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2부에서 다룬 저자의 생각들 중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이혼에 대해서 다소 절대적인 반대의사를 표한 점에 대해서 비록 이혼이란 것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도덕적 물의를 가져오는 부분도 있지만, 예전에 비해 개인주의 성향으로 치닫는 현실의 상황과 가치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혼을 막는 것만으로는 최선의 치료법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누구에게도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기는 힘든 시대다. 이제는 이혼도 때에 따라서는 남녀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폭은 확장을 시켜야한다고 생각한다. 꼭 내 품안에서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묵은 생각이며 이기주의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한민국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며, 결국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그 중의 한사람인 내 자신이 힘든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름의 행복을 찾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이유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던져봤다. 그러던 중 내가 찾은 답은 이것이었다. 가끔 인터넷에 개인적이든 공적이든 글을 올리고, 누군가 내가 쓴 글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서 자신이 받은 느낌을 댓글로 또 전한다. 이때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단지 그것을 읽고 공감 할 한사람을 위한 일로써 충분하다 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남자들 또한 자신의 지친 일상의 흔적들을 여기저기에 남김은,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해 줄 단 한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위해서 한 몸 바쳐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이유는 필요없을거라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 남자들이여! 파이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계의 심리학 - 마음을 읽어내는 관계의 기술
이철우 지음 / 경향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매일 아침 대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어제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어제 늦도록 술을 먹고 자서 눈동자 주위에 실핏줄이 여전히 남아있고, 막판에 허전함을 라면 한 그릇까지 추가해서 달랬다면, 저게 정말 내 얼굴이 맞나 싶을 정도로 후회막급의 심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건 단지 하루 폭식하고 폭음으로 잠시 달라진 모습이다. 폭식, 폭음이 없었던 날에도 우리의 모습은 조금씩 변한다. 사람 몸의 세포는 3년을 주기로 생성과 사멸을 반복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3년 만에 만난 친구는 생물학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전혀 딴 친구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어떤 사진작가는 식물과 꽃의 사진을 365일동안 관찰하여 매일매일 미세하게 변화한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고 한다. 하루사이의 미세함까지 찾아보려는 프로정신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나 라는 사람은 지난 세월 수없이 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비춰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저 크게 무리없다고 생각만해도 다행스러운데, 혹시 내가 미쳐 생각하지도, 느끼지 못하는 단점이 행동이든 말을 통해서 남들의 뒷담화꺼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아무리 완벽은 추구했다해도 뒤안에 남기 마련이다. 자의든 타의든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거미줄처럼 관계에 관계를 더해가고, 연결되어 한 평생 살아간다. 그래서 대인관계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만 갖고 있어도 ‘그래도 한 평생 행복하게 살았구나!’ 하고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관계의 심리학>은 자신이 주위와 연결되어 있는 관계에 대한 자성과 반성을 통해서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테스트를 통한 자각하고, 내일의 작은 변화를 모색해 봄으로써, 행복한 내일의 태양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요즘의 심리학 책의 주류는 과학적인 입증을 통해서 가설의 정의화를 설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관계의 심리학>에서도 Chapter마다 한 개의 테마를 중심으로 대부분 실험을 통해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심리를 통계학적으로 전달하며, 보편적인 정보로 독자들이 쉽게 호흡할 수 있도록 이끈다. 더욱이 Chapter끝에서는 간단한 테마에 관련해서 스스로 자신의 심리를 진단해 볼 수 있는 테스트가 마련되어 있어, 자가진단을 통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의 심리상태를 점쳐보고, 극복내지는 개선 노력의 실마리를 던져 준다. 테마는 인상, 시선으로부터 시작해서 수용과 가치관까지 심리학의 전반적인 이론보다 우리가 일상중에 접하는 인간관계에 있어 소홀하기 쉽고, 잘하고 있는 것은 잘하고 있는대로, 고쳐나간다면 좀 더 원할한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원할한 인간관계를 위한 심리학의 접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접목들을 읽어 가다 보니 나 역시 내생각과는 달리 모라토리엄형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내가 얼마만큼 자기중심주의가 강한지, 대인지향성은 높은지, 21세기의 페스트라는 우울증에 원인이 되는 고독감의 지수는 어느 정도나 되는지 스스로 결과를 통해서 반문하고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책에 담긴 엘리노어 루즈벨트가 전하는 짧은 명언은 자각한 문제점에 대한 극복과 개선에 힘을 실어준다. ‘수용’편에서 엘리노어에 대한 일화에 담긴 얘기가 어쩌면 관계의 심리학을 읽고 나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맘속으로 새겨야 할 부분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으로 담고 살았다는 3가지 교훈!

“나는 매력적이지 않다”
“나에 대한 누구의 애정도 지속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들조차도 나를 실망시킬 수 있다”

(p.244)

이 3가지의 교훈은 아마도 책으로 자각한 자신의 잘못된 관계로 몰고 갈 수 있는 성격이며, 심리상태로부터 자치 방치하고 회피하고 싶은 생각들을 날려줄 만한 교훈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자그마한 변화를 추구하고 싶다면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진정 지금의 자신을 사랑하고, 앞으로의 자신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호 할 수도 있게 만드는 것이다.

수년 수십년의 세월의 때라 묻어서 형성된 자신의 관계, 부족함을 자각해도 한순간에 바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부족하고 잘못된 점에 대한 인정을 시작으로, 주위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전보다 깊이 돌아봄으로서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야 할 긴 인생의 숙제인 것이다. 앞으로 매일 저녁 일과에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면서 자신의 맘속에 디지털 카메라도 셀카를 찍어보듯 미세하게 변화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화상을 연사로 기록해보라. 아마도 1년 후 10년 후, 이전의 디지털 카메라에 셀카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자신의 얼굴과 마음속에서 사람들의 관계(=人情)를 먹고 자란 행복의 꽃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생 - 전생 체험은 깨달음을 위한 것일 뿐
박윤미 외 지음 / 양우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도 직장안밖에서 직장상사든, 거래처 사람들과 어떤 의견마찰이나 충돌로  적지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면 자연스레 "전생에 무슨 원수간이었기에 이러나?" 하면서 넋두리를 하게 된다. 전생을 운운할때 대개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로 자신을 짓누를때가 많다. 우리는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인연이 있다는 것 또한 지난 생에서 수십 수백번의 전생동안 만들어 놓은 관계의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부부의 연을 그 깊이가 어떤 인연보다 깊다고 한다. 뿐만이랴, 부모 자식간의 인연 역시 전생의 큰 보은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전생의 좋은 인연이든 악연이든 알게 된다면 앞으로 그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해 질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일반적인 사람들은 전생에 대해 막연히 관계의 고리쯤으로 단정지으며 살아간다. 결국 전생을 체험해보지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생각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전생>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느끼는 전생 이야기를 통해서 경험하지 못한는 자들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새기고 살아가야 할 삶의 교훈 한 자락을 건네준다.

책<전생>이 전하는 한 자락의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지 못함은 네가지의 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때문이라신다. 그 중 학력,재산,권력등의 세상속 허망함으로 자신을 매고 있다는 아상(我相). 자신을 마음의 거울에 드리워 허망함을 버리는 것이 아상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한다. 이는 어찌보면 '인생무상'을 역설하는 것인지도, 결국 허망함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인듯 싶다.
인과(因果), 지금의 고(苦)와 락(樂), 이미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것임에 되풀이 될 악업의 씨앗을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이는 현세에 우리가 왜 태어나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삶의 의미와도 같다. 이런 인과의 과정속에서 내가 받은 은혜에 보은하고, 저질러 놓았던 악행을 추스림으로써 보은은 쌓아가돼 악행으로 인한 악업의 씨앗을 계속 뿌리지 말아야한다는 마치 삶의 의무감처럼 들린다.
인식(認識), 자신을 속박하는 것에서 벗어나보려 하나 각자의 생각의 틀때문에 결국 주체를 고립시키고 매이게 한다는 조금 어려운 가르침인데, 결국은 자비와 사랑보다는 진정한 무심으로 돌아갔을때, 나의 인식을 깨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럴싸한 생각과 행동의 틀이 전부인냥 자기 생각대로 살지말고, 지혜롭게 차별을 포용할줄도 알아야한다는 가르침으로 들린다.
인욕(忍辱), 인욕은 아마도 인과에 연결되는 가르침이다. 전생에서 비롯된 악연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한 행동강령이라고나 할까? 노여움,살생,탐욕등으로부터 자유워짐로써 악연의 불씨를 만들지말라는 그런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허망(虛忘), 인간들의 괴로움의 원천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됨이다. 그 집착을 놓아야만 백년의 괴로운 나날보다 값진 하루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이또한 괴로운 윤회의 틀속에 자유롭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해원(解寃), 해원을 통한 가르침은 그런것이다. 마치 벽에 공을 던지면 튀어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니, 좋은 마음이건 나쁜 마음이건 받아들여 좀 더 헤아릴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으라는 것이다. 이 또한 되풀이 될 악연의 고리를 만들지 않게 하고, 이미 만들어진 고리도 고쳐 맬 수 있게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습(習), 말그대로 자신의 본 모습을 그려가는 것이 습관인데, 몸과 영혼에 깃들어 있는 인식의 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좀 더 자신을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정법(正法), 결국 진리만이 괴로움을 타파할 수 있는 참된 도리라는 것! 자칫 우리가 진리라 생각할 수 있는 종교도 결국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진리란 참된 인생의 수행을 통해서 미묘한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고, 결국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이 앞에 내가 서술한 것처럼 어떤 개별적으로 이론적인 설명을 늘어놓은 것만은 아니다. 두 저자가 실제 생활속 체험을 바탕으로 단지 불교의 가르침중에 일맥상통하는 부분과 매치시켜 놓은것 뿐이다. 두 저자의 체험담은 정말 생생하게 전해진다. 하지만, 비체험자로써는 그저 설득력있는 가르침의 밑그림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우리가 막연히 인간관계에서 전생을 떠올리기때문에, 전생 체험에 귀기울고, 이 이야기들을 교훈삼아, 자신의 수없이 많은 전생으로 비롯된 인연을 잘 이어가고, 악연을 끊어버릴 수 있는 마음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깊이 새겨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책<전생>은 아마도 나의 지난 과거에서 또 다른 삶의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었던것처럼 지금 나의 책상앞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동안 나의 삶속에서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악연들은 인연으로 다시 태어날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 사랑학
구사카 기민도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서늘해진 날씨탓에 아침이나 저녁에 샤워를 할때면, 곧바로 따뜻한 물이 나오면 좋으련만, 따뜻한 물을 기다리며, 앞의 찬물은 무심코 흘려버린다. 그것은 지금 내가 피부를 통해서 느끼고 싶은 것은 물의 시원함이 아닌 데워진 물의 따스함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동안에 나의 몸을 시원하게 식혀준 찬물은 지금은 천덕구러기가 되어 무심천으로 흘려보내지만, 내년 여름의 반가움과 고마움으로 대할 것이다. 문득 경제사랑학을 읽고 나서 이러한 생각을 해본것은 이렇게 현재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나쳐버리는 나의 경제감각을 일깨워줄 것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속에 숨은그림처럼 산재되어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늘 출퇴근길의 지하철안의 풍경과 오가며 수없이 지나치는 다양한 업소들이 걸어놓은 번잡스럽기까지한 간판들의 문구들, 그리고 회사안 사람들의 움직임, 취미생활과 가정 또한 나의 경제감각을 키울 수 있는 재료들이다. 

<경제사랑학>은 종래의 딱딱한 이론적인 경제학 내용을 다룬것이 아닌, 서두에 던진 경제감각을 키울 수 있는 일상의 재료들을 통한 현재의 경제동향과 앞으로의 달라질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아가는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서 손쉽게 뒤쳐진 자신의 실질 경제감을 배가시켜준다.
그럼 <경제사랑학>이 전하는 생활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감각 기법들을 살펴보자.
첫번째는 우리가 늘상 거니는 거리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거리에서의 핵심포인트는 아무래도 간판광고가 아닌가 싶다. 하루가 다르게 거리의 간판들도 옷을 갈아입는다. 이는 유행하는 상품에 따라서 업종또한 변화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거리에 나가면 한눈에 늘어난 간판들은 아마도 일본식 주점이 아닐까 싶다. 여러 일본문화와 더불어 외식문화가 우리의 생활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다음은 지하철 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손안에 들고 가방안에 들려있는 PMP며 MP3 PLAYER와 같은 휴대용 디지털기기들이다.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의 실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물품들이다. 책에서는 새로운 간판을 통한 틈새전략도 전한다. 애완용 사료가 아닌 애완용 음료수의 개발로 한 여성이 몇개월만에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것이다. 이런예로 트렌스지방 논란이 있었던 팝콘의 건강상품화 또한 색다른 틈새전략으로 성공한 케이스란다. 거리의 유행물결속에서 연관성 있는 틈새를 찾아본다는 점이 역시 이론이 넘지 못하는 한계와 아이디어 창출이라는 점에 새롭다.
두번째는 우리가 일하는 회사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닌 발전성 있는 회사 구조와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업계와 업계사이의 경계에 있는 주변인의 역할, 매너리즘에 빠진 베테랑에 대한 비판과 자칫 반역자로 여겨질 수 있는 도전정신이 강한 사원대한 생각, 동업타사의 위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메리트, 남자의 허세로 인해 대중화를 기대할 수 있는 유력산업의 발굴등이 요지이다.
세번째는 신문, 잡지를 통해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볼수록 새로운 경제용어들의 넘쳐남에 등안시 하게 되는 경제신문, 잡지 기사에 조금씩 길들이는 방법들이 나열되어 있다. 가령 경제지는 대강 여러번 훑어보라는 점. 비록 짧은 시간의 접촉이지만 반복하면 친근감으로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나 아는 사람을 통한 관련지식의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정보를 넓혀갈 수 있고, WHY?라는 질문을 통해서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끝에서는 경제지 중독증에 대한 당부와 더불어 휴식을 통해 오른쪽 뇌의 잠재적으로 축적된 정보를 양성화시키는 것의 중요성도 달았다.
네번째다섯번째는 취미와 가정생활를 통한 경제감각을 키우는 방법인데, 아마도 저자가 <경제사랑학>으로 책명을 택한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니였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취미활동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유연한 발상능력을 키워주며, 직장내 계급을 타파하는 순수한 인간관계를 쌓아 갈 수 있으며, 유희감을 통해 다음 업무에 대한 생동감과 자신감을 찾을 수 있으며, 살아있는 경제관련 지식과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정생활패턴을 통해서 짐작해내고 배울 수 있는 경제가 관련된 것들도 무수히 많았다. 주부들의 소비심리라든가, 대형쓰레기 양의 변화, 패밀리레스토랑의 증가와 메뉴의 변화를 통해서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기를 예측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늘 이론을 통해서 분석하며, 배우려 생각했던 어렵게 느꼈던 경제가 거리를 거닐면서 직장동료들과의 이야기속에서, 취미와 가정생활속에서 손쉽게 배울 수 있고, 감각을 넓혀나갈 수 있가는 것이 새로운 이 책<경제사랑학>이다. 저자가 일본인인 만큼 내용의 대부분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에 관점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문화 또한 일본과 비슷하게 발전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과거 부동산폭락과 긴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성장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이면을 통한 공부는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는 따뜻한 물을 기다리며 무심코 흘려버렸던 찬물의 의미를 생각하듯 가까이에 펼쳐져 있는 경제의 장들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면 경제공부가 따로 필요없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