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요리 맛있는 과학 - 과학 선생님과 함께 요리로 배우는 과학
최진 지음, 탁재원 그림 / 산책주니어(숨비소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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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과학의 원리를 복잡한 기계적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생활 곳곳에 과학의 원리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손쉽게 발견하게 된다. 그 중 우리가 매일같이 즐겨 먹고 마시는 요리 속에도 숨은 과학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더욱이 예전에 비해 식생활의 간소화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습관 탓에 어쩌면 그 영역은 확대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인해 우리 식탁을 인스턴트 음식들로 가득 채워진다는 점은 조금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숙제이기도 하다.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주로 경제성과 시간의 효율성을 이유로 들며 음식을 손수 만드는 것을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까지 여기게 된다. 물론 다양한 재료와 더불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요리들이 있는 반면, 집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재료들을 이용해 즐길 수 있는 요리도 역시 생각보다 많다. 
  

요리를 통해서 손수 만든 음식의 맛과 더불어 그 요리 속에 숨은 과학의 원리를 가정에서 아이들과 체험하듯 즐길 수 있는 작은 실험서와 같은 <신나는 요리 맛있는 과학>, 무엇보다 아이들이 과학을 머리 아프고 딱딱한 학문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얼마만큼의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신나는 요리 맛있는 과학> 은 비교적 가정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나 재활용음식들을 이용한 레시피와 몰랐던 음식의 유래, 그리고 그 음식 속에 숨어있는 과학적 원리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아이들의 흥미를 충분히 끌 수 있을뿐더러,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요리를 체험해본다면 그동안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로 잡아 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갖게 된다.

요즘 아이들은 그동안 지나치게 눈으로 보는 교육에만 익숙해져 자신의 손을 빌어 무언가 만드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아, 어른들도 갖는 직접 경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며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집에서 음식을 찾기 보다는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리곤 한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건강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연대의식과 가정학습의 중요성마저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오랜 자취생활로 제법 솜씨를 부려 요리한 음식이나, 유명한 맛 집들의 음식보다 늘 그리운 맛은 어머니의 손맛이다. 그 손맛에는 사랑이라는 과학의 원리로 해석할 수 없는 신비의 조미료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양한 요리를 통해서 풍부한 영양과 맛을 겸비한 음식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나는 요리 맛있는 과학>은 어쩌면 요리를 통한 가정학습이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 사랑의 원리를 일깨워 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봤다. 그럼 자연스럽게 책 제목도 바꿔야 할까요? <신나는 요리 맛있는 과학으로 꽃피는 가족사랑>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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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3판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3
E. H. 카 지음, 권오석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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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살아간다. 탄생이란 무엇인가? 로 시작해서, 일과 사랑, 가족, 인생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물론 한 국가라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오면서 그 사회의 역사에 대한 물음표 또한 던지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은 백과사전에 열거된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진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도 많다. 이는 모든 개인들이 다르게 갖고 있는 지문처럼 각기 다른 사회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하고 경험하며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전에 열거된 보편적인 정의를 무시하자는 생각은 아니다. 결국 각자의 사고는 그 보편적인 정의의 틀에서 파생된 단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각종 문헌과 유적 등의 증거물로 들어난 사실적인 것에 집착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그동안 내가 배운 역사들을 전하는 이들의 의견이나 주장 또한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증거 없이 과거의 일어난 일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을 때 이를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마도 증거 없는 용의자에게 범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주의에 입각한 역사는 어쩌면 역사를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폭을 크게 축소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과거의 어떠한 커다란 사실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그 사건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서 의미를 달리 부여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생전의 그의 정치적 업적은 서거이후에 이전과 크게 다른 역사적인 평가를 우리는 읽을 수 있었다. 따라서 역사적인 사실만으로 역사를 정의하기에 역사가 갖고 있는 큰 힘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고민을 위로해준 책이 바로 카(Carr)가 정의한 <역사란 무엇인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역사를 나름 정의하고 싶어 했던 카 역시 역사에 대한 분분한 의견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 그의 생각을 짓눌렀던 여러 의견들의 열거를 통해서 볼 수 있다. 또 그가 정의한 역사 또한 사전적인 정보의 틀이 아닌 앞으로 보다 진보해가는 과정에 작은 징검다리로 여겼으면 하는 바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가와 역사적인 사실이 갖는 의미,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회와 개인의 역할, 역사와 과학 그리고 도덕의 차이점에 도출해 낼 수 있었던 연관관계,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 대한 해석, 그리고 끊임없이 진보하는 역사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역설들의 이루는 중심적인 생각을 이 한 마디로 규정하여 내놓는다. “역사란 현재 사회와 과거 사회의 끊임없는 대화” 라고 말이다. 이 말을 깊게 들여다보면 앞서 여러 개의 가지로 나누어 역설했던 역사에 대한 참 의미를 이해해 갈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끊임없는 대화’ 란 진보하는 역사의 미래에 대한 표상을 담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한편으로는 내 자신의 역사에 대한 생각 또한 해 보았다. 모든 개인들이 비록 역사라는 굴러가는 커다란 수레바퀴의 작은 틈바구니에 자리 잡고 존재하고는 있지만, 거대한 사막도 모래 한 줌에서 시작되었듯, 자기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사랑하는 것에서 역사가 비로소 시작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고로 나는 자신의 역사를 겸허하게 바라보며 음미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역사란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나누어야 할 끊임없는 대화”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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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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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늘 지나던 길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며 우리는 살아간다. 비록 그 지나온 발자취가 모두 어떠한 기록으로 남아 있어서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흔적들은 각자의 뇌리에 기억으로 자리함으로써 개인의 역사적인 단편으로 남게 된다. 우리가 가끔은 지나온 자신의 삶의 궤적을 갖은 원망과 후회의 기억만을 떠올려 스스로 자책할 때도 많지만, 그건 단지 자신이 가꿔 온 삶의 단편에 연연하기 때문인 것 같다. 고향에 들러 어린 시절 뛰어 놀던 골목길을 지날 때면 다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는 그렇게 높아보였던 담벼락이 이렇게 낮았었나! 하고 말이다. 분명 몸의 성장으로 인한 눈높이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차이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도 그동안 달라진 건물의 구조와 환경 속에서 살아온 탓에 작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모습에 대한 자신의 느낌은 변했지만, 그 낮아 보이는 담벼락 아래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정안들은 여전히 변함없이 맘속에 기억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지나고 있는 길들과 그 길의 배경이 되는 모든 것들 또한 시간이 흘러 세월의 변화라는 옷을 갈아입기는 하겠지만, 그 길을 지나며 가졌던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남긴 자취는 그대로 오랜 세월의 옷으로 갈아입지 않는 역사로 남겠구나! 라며 일상의 의미를 더해보게 된다.

<나무야 나무야>는 세월의 변화라는 옷으로 두껍게 갈아입어 이제는 갖고 있던 속내가 감춰지거나, 소멸되어 가는 역사의 자취들을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던 필자의 옥중에서의 오랜 바람들에 대한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진 세월동안 역사의 아픔을 검은 활자를 통해서만 누려야 했던 서러움에 대한 해방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동의보감>으로 알고 있던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던 가마볼 얼음골에서 시작해 역사의 이모저모를 살피듯 국토를 가로지르며 전하는 가는 곳마다의 뿌리 깊은 사연들은 어제를 살아왔고, 오늘을 살고 있으며, 내일을 살아갈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되돌아오는 듯 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커다란 울림 속에는 어쩌면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으로 찌든 현대인들이 소홀히 생각하는 역사의식에 대한 채찍질도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동안 감옥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에게 하고픈 말들 또한 아낌없이 담고 있다.

“자유와 낭만은 ‘관계의 건설공간’이란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우리들이 맺는 인간관계의 넓이가 곧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의 크기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들의 일상(日常)에 내장되어 있는 ‘안이한 연루(連累)’를 결별하고 사회와 역사와 미래를 보듬는 너른 품을 키우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p. 93)

특히 이 구절은 필자와 더불어 어깨동무를 하듯 나무들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의 다정스러움이 주는 의미와 더불어 결국 ‘우리의 삶이란 결국 건강한 관계를 통해서 자유와 낭만까지도 만끽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깊게 깨닫게 해 준다.

꼭 기록된 역사의 흔적들을 돌아보는 것을 통해서 어떠한 역사의 의미와 그 구성원으로서 갖게 되는 소명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장 가깝고도 쉬운 자신의 지난 발자취들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얻을 수 있었던 교훈들을 다시금 곱씹어 보는 것만으로도 <나무야 나무야>를 통해 전하는 이 커다란 울림을 제대로 받아들인 셈이 될지도 모른다. 또한 그러한 시간들은 자신을 ‘관계의 건설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게 만들고, 타인과 더 큰 세상의 역사에 대한 혜안을 갖게 만들며, 결국은 풍요로운 자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벅찬 기대감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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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책읽기 두번째 이야기 - 읽고 정리하고 실천하기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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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독서관련 발표회장에 참석했을 때 독서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묻는 질문이 청중들에게까지 던져졌다. 그 질문에 대해서 그동안 나름 독서습관화에 몰입하고 있던 나의 정의는 이랬고, 답변의 기회가 주어져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정의했다. “독서란 마음의 이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라고 말이다. 내 정의에 대한 이유는 이랬다. 우리는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사회의 경험은 시작되며, 그 경험들이 지나온 자취들은 소위 졸업 후 본격적인 사회진출을 위한 이력서에 남기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려서부터 읽었던 책을 통한 간접 경험들은 느낌과 감동을 통해서 마음속에 간직되고, 그러한 생각의 흔적은 마음의 이력으로 남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어린 시절 책읽기가 제대로 된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아 마음의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가지 못했던 지난날의 반성과 새로운 자아의 발견을 위해 나는 지난 2년간 아마도 30여 년 동안의 미숙함을 덜어내려는 듯 독서에 몰입을 했다. 막연한 생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독서를 통한 생산성은 계산에 넣지 않은 채 말이다. 그동안 읽은 책 중에는 물론 효과적인 독서를 위한 책들도 몇 권 들어있어, 독서를 통한 나의 작은 변화에 물고를 트는 조언자가 되어주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방안에 TV가 치워지고, 대중교통 이용을 의무화하기 위해 타고 다니던 자가용까지 처분하고, 술도 아닌데 숙성시키려는 듯 오래도록 처박아 두고는 때를 기다렸던 일기장에도 일상들과 느낌을 채워갔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런 나의 독서 열의를 주변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은 생각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때나 생일파티 때는 읽으면서 큰 감동을 주거나,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왠지 처음엔 어색해 보일 수도 있지만, 평소에 책을 읽지 않던 사람이라도 책 선물에 대해서는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다른 선물보다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는 것 같았다.

이렇게 독서를 통한 생활의 작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책꽂이에 책이 늘어갈수록 때로는 책을 통해서 가장 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계속되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 또한 그저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나름의 독서에 대한 허무감에 빠지고, 그러다보니 책을 한동안은 눈에서 멀리하게 되고, 그로인한 상실감은 더 마음의 부담으로까지 이어지는 듯한 감을 느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모든 일에서 겪게 되는 성장통 이겠거니 하며 털어버리려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지만, 뭔가 특별한 돌파구는 필요한 듯싶었다. 이러한 독서로 인한 불안감에서 오는 성장통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책속에 있음을 나는 발견한다. 바로 독서를 시작하며 계산에 넣지 않았던 생산성에 주목을 하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 읽고 나면 그 흔적이 남았을 때 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책을 읽었다면 어떠한 사상이나 이론에 대해서 나름의 주관을 갖게 되었을 때, 이러한 주관을 자신의 일이든 생각에 투영시켜 보다 자아를 폭넓게 가꾸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다 깊고 넓어진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역시 독서를 통한 생산성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산적 책읽기 두 번째 이야기>을 통해서 전하는 저자가 경험한 독서에 대한 담론은 앞서 말한 미처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작된 독서로 인한 성장통을 털어버리고 보다 넓은 책안의 세상으로 이끌어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마중물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이번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특히 자신의 독서에 마스코트처럼 붙어있던 맹목적을 벗어 던지고, 세상에 넘쳐나는 책들 중에서 자신에 꼭 맞는 책을 고르는 안목과 더불어 보다 효과적인 독서방법을 통해 보다 독서가 우리의 인생에서 갖는 진정한 의미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는 좌표를 그려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오래 기억하고 정리하는 방법’, ‘실천하고 응용하는 방법’, ‘살아있는 지식을 위하여’ 라는 큰 제목 아래 말 그대로 독서의 가나다에서부터 직접 작가가 되어 볼 수 있는 과정까지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독서를 하면서 극복하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고민했던 것들에 대한 해결책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지식을 얻어 마음가짐을 바로 잡고, 크게는 세상을 바로 잡아가는 올바른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마인드를 담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즐겼던 이들에게 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심미안을 마련해 준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는 앞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에 주눅들 필요 없이 나름대로의 독서를 통해서 자신만의 안목을 키울 수 있겠다는 생산적 책읽기가 주는 자신감으로도 나의 독서는 또 한 걸음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쪼록 저자의 바람대로 앞으로 많은 이들이 올바르게 지식을 다루고, 생산적 책읽기를 통해서 대한민국 안에서 책을 읽고 세상을 알고 사람과 소통하며 갈등을 생산적으로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B(book)-Generation이 깊게 뿌리내려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 모습이 바로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열매이자 선물이며, 희망의 열쇠가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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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CEO - 세계 최고 헤드헌팅기업 CEO가 말하는 그들의 모든것
케빈 켈리 지음, 이건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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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출퇴근으로 한두 시간이상을 길에서 소모하는 직장인들에게, 특히 차와 사람들로 혼잡한 출퇴근시간 자가용뿐만 아니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까지도 여유로운 미소를 선물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도로 위 전광판에 적힌 녹색의 “소통원활”이라는 글씨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나 조금은 늦은 시간인 아니라면 평소 러시아워시간에 어쩔 수 없이 볼 수밖에 없는 전광판에 글씨들은 황색의 “지체”나 적색의 “정체”다. 이렇듯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경험하는 순조롭지 못한 일상의 단면은 누구를 나무랄 수 없기에 그저 체념 속에 묻어두기로 한다. 그러나 출퇴근시간에 겪는 고충을 넘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과 가정 등 자신과 연관된 인간관계에서 도로 전광판의 “지체” 또는 “정체”와 같은 상황을 맞이할 때는 도로위의 초조함에 비할 수 없는 힘겨운 자괴감 내지는 우울증에 까지도 자신을 몰아갈지도 모른다.

네비게이션이 보편화된 요즘 우리는 단지 편리함에 몸을 맡긴 탓에 이제는 알던 길마저도 네비게이션의 안내 멘트 없이 지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더욱이 뜻하지 않은 출퇴근시간의 지체와 정체 상황에서도 네비게이션의 방향 지시에 몸을 맡긴 채 발만 동동 구르기를 반복할 뿐이다. 나름 느긋한 마음을 먹고는 ‘못 견딘 것도 없지!’ 라며 나름 자위 하듯 인내심 발휘로 어깨를 들썩일 수도 있겠지만, 출발하며 교통정보를 전하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거나, 네비게이션이 꼭꼭 숨겨 두기만하고 알려주지 않던 샛길을 미리 알아두었더라면 길 위에서 불필요한 시간 허비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은 왜 못했던 걸까? 이렇게 느긋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일상의 습관에도 만족하는 것은 편리함에 집착한 나머지 상황에 대처하는 생각과 행동의 유연성마저도 남이나 기계의 편리함에 내맡긴 탓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를 가리켜 상하관계라 일컫는다. 요즘은 사장이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CEO' 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위 주식회사의 주인은 누구일까? 예전의 생각대로라면 당연히 사장이 주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 아래 직원들은 단지 고용된 일꾼으로 여긴다. 과연 그럴까? 물론 회사설립 멤버로서 회사를 이끌어 온 CEO라면 회사 지분을 꽤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주주로서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겠지만, 요즘 대기업 CEO들의 대부분은 직원과 별반 다름없이 이사회 또는 주주총회를 통해서 선발된 우수한 사원에 불과한 셈이기도 하다. 물론 CEO는 오랜 사회경력과 능력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아 고용된 최고의 인력이다. 따라서 막대한 책임과 권력 또한 갖게 된다. 이에 최근에는 유수의 대기업들은 최상의 조건 등을 제시하며 헤드헌트 회사를 통해 유능한 CEO를 끌어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유능한 CEO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도 막대한 조직을 이끌 수 있다는 얘기인가? 대답은 물론 아니다. CEO는 단지 배의 선장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나 배는 선장의 한 마디에 거친 바다위의 항해를 순조롭고 효과적으로 마칠 수 있게도 하고, 배의 방향을 산으로 돌릴 수도 있다.

<벌거벗은 CEO>에서 우리는 그동안 세계화로 보다 험난해진 기업 간의 경쟁이라는 바다 위 거친 폭풍과 파도를 이겨내고 순조롭게 항해를 이어갈 수 있는 CEO들의 자질과 그들의 생활 속 이면들을 만나게 된다. 언 듯 보기에 거액의 연봉과 함께 주어지는 강력한 권력의 소유로 화려한 듯한 CEO라는 지위, <벌거벗은 CEO>에서는 어쩌면 그 마치 화려한 백조의 숨 가쁜 물밑 발길질과 같이 끊임없는 변화에 순응해 조직을 이끌기 위해 감내해 가며, 키워야할 성공의 마인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성공의 마인드를 키우는 방법은 여타의 경영지침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과 별반 다를 것을 없다. 가장 중요한 발견은 바로 “소통”이다.

수많은 길이 연결된 도로위의 차들의 원활한 소통만큼 수많은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돼 고객으로까지 이어지는 모든 상품들은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질 때 보다 큰 가치를 발하게 된다. 그 시작점에서 임시 집사로서의 성실한 CEO의 모습은 원활한 소통의 물고를 트는 셈이기도 하다. 따라서 CEO를 준비하고, 취임을 거쳐 리더십과 전략 수립, 실행과정에서의 시도와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모든 도전, 은퇴 후의 삶까지 이어진 관계의 실타래를 순조롭게 풀어가는 위한 소통의 노력이 가장 선행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벌거벗은 CEO>에서는 CEO의 덕목들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나열하고 있지만, 이들은 또한 반대로 해석할 때 CEO들과 반목하지 않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변인의 자세를 말한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CEO와 미래의 CEO를 꿈꾸는 이들, 그리고 그들과 손잡고 일할 모든 이들의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 줄 변화를 이끄는 길잡이가 되어 줄 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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