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 김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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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읽은 책<대한민국의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사랑에 대한 해답과 같이 정의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들아, 아버지와 아들은 철길이다. 끝까지 하나가 될 수 없는 평행선이다. 그저 옆에서 너희들이 세상에 빛나길 기도한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애듯함도 없고, 세세한 관심은 없더라도, 늘 우직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존재감이 빛나는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아버지의 자식사랑에 대한 표현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령 “우리 아버지는 보통 아버지들과는 다르게 자상하시고 사랑스러우셔!”라며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는 이들조차도 이같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만큼은 같지 않을까? 개별적으로 느끼는 아버지의 사랑은 다르겠지만, 나 역시도 지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고, 나에게 대했던 모습들을 그려보면, 결국 어머니의 따스함보다는 존재의 무게감이 더욱 크다. 그렇다고 그런 사랑이 가볍다고 생각한적 또한 없다. 단지 그 차이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잣대로 비교함에서 생긴 것은 아닌가 싶다. 


 책<아버지의 편지>를 통해서 전해지는 아버지의 사랑 또한 그러하다. 결코 자식과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음에도 애써 감춤으로써 그 깊이를 더 한다. 당대에 이름이 알려진 학식이 있는 분들이 전하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보내는 아버지의 사랑은 어찌보면 애달프도록 숭고하게 느껴진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만큼은 어떠한 사회적 지위를 떠난 순수한 자식사랑 그 자체였다. 자신의 안위를 떠나 조석으로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걱정하고, 건강을 걱정하는 지금의 아버지와 별다름 없는 마음이다. 하지만, 늘 따뜻한 한마디보다는 걱정하는 마음을 질책을 통해서 전하고자 했다. 그런 마음을 책속에서는“너희가 능히 이 버릇을 통절하게 없애지 않아, 혹시라도 이러쿵저러쿵 하는 자가 있게 되면 맹세컨대 다시는 너희를 보지 않겠다. 천 번 만 번 경계하고 삼갈 것은 단지 이것뿐이다.”(p.50) 덧붙여 “놀라서 비통하여 죽고만 싶구나.”(p.49) 라고 하며 자식의 잘못에 대한 단호한 마음의 전달을 통해서 꾸짖으며 감춰진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대의 학식있는 분들의 자식의 입신을 깨우치기 위한 공통된 교훈은 바로 꾸준히 독서와 글쓰기 즉 늘 한결같은 배움를 통해서 자신을 갈고 닦으라는 주문이다. 유성룡은 “배움은 정밀하게 따지고 살펴 묻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너희가 일찍이 따져보지 않기 때문에 의문이 생기지 않고, 의문이 생기지 않으므로 물을 수가 없는 것이다.”(p.92) 라며 사색할 줄 아는 배움에 대한 말을 자식들에게 전했고, 박세당은 “글을 지을 때는 반드시 생경하고 궁벽한 변통을 없애야만 한다. 글을 평이하게 펼쳐서 온건하고 순수하게 하기를 힘써야 문체가 절로 좋아지는 법이다. 처음과 끝을 상세히 점검해서 글의 귀결이 입의 즉 주제의 맥락을 잃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라며 작문에 있어 주의할 점을 못 박아 자식들에게 주지 한다. 그 뿐만이랴, 가벼운 일신을 다루는 일에부터 사위와 관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처신에 대한 가르침들을 거침없이 자식들에게 전하고 있다. 어떤 편지에서는 정말 어머니의 시어머니의 잔소리처럼 들릴만큼 시시콜콜하게 당부를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두가 공감하며 가슴으로 새겨야 할 아버지들의 자식사랑의 표현들이 아니던가.
  
 우리가 지금 먼 옛날의 아버지들의 편지에 귀 기울려야하는 이유는 그 질책 섞인 말들속에서도 느낄 수 없는 아버지의 숭고한 사랑을 깨닫고 배우고자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외로운 사랑이란 생각도 든다. 그 사랑을 마구 들어내서 빛남이 아닌 늘 무게감에 감춰진 사랑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나의 아버지는 책속의 인물들처럼 단호하고 근엄하게 질책하거나 자상함을 보여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잘한 일에 대해서 짧은 칭찬 한마디와 함께 살며시 손에 쥐어주시는 500원짜리 동전 한 닢으로 깊은 사랑을 전하셨다. 지금은 왠지 손안의 500원짜리 동전을 볼 때마다 마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한 마리 학처럼 커다란 날개짓을 하며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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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미래학자 10인이 말하는 미래혁명 - 행복한 미래 불행한 미래
신지은.박정훈 외 지음 / 일송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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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기상과 함께 다소 잠이 덜 깬 상태임에도 어김없이 컴퓨터의 전원을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인터넷 중독? 아니다. 아마도 컴퓨터의 셋업과 동시에 온라인 게임에 로그인을 했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이제 인터넷을 통한 세상보기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시절임에도 왠지 까마득한 옛기억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마치 지금의 우리들은 마치 호흡을 통해 공기속의 산소를 몸속으로 받아들이듯 그렇게 인터넷과 다양한 매스미디어 기기들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다. 불과 10년 전에 미래학자들이나 첨단산업을 연구하던 기업들이 그려 놓았던 미래속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혁명이란 꼬리표를 붙인다는 것은 인류의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예혁명과 프랑스혁명을 통한 인권의 변화와 산업혁명을 통한 지금에 이르는 물질문화의 발달, 그다음으로 꼽는 다면 아마도 지금의 컴퓨터와 IT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지구촌을 좀 더 가깝게 하나로 묶어가고 있는 사이버혁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아마도 사이버혁명을 단지 시작했을 뿐이라고 생각 된다. 현재 지구촌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은 사이버혁명 또한 아직 시작단계로 점철되는 것은 바로 세계적인 미래학자 10인이 말하는 책<미래혁명>속에는 이보다 큰 혁명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혁명>통해서 미래학자들이 그려내는 지구촌 인류의 미래상. 책표지 위의 “행복한 미래 Vs 불행한 미래”라는 상반된 단어의 대립처럼 인간을 그야말로 유토피아적인 물질적, 정신적 풍요로움 속에 빠뜨릴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인간의 지나친 탐욕이 낳는 갈등들로 인하여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인류의 파멸로 몰아갈 수 있음에 대한 주지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에릭 드렉슬러가 전하는 나노기술의 창조성과 제롬 글렌이 전하는 사이버 나우가 가져다주는 일상생활의 커다란 변화에서 인텔리전트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10명의 미래학자가 전하는 미래상에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정말 꿈같은 세상을 눈앞에 그려 보여주고 있어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고조시켜준다. 더욱이 고도로 발달된 최첨단의 나노기술과 각종 생명공학의 발전은 인간을 이제 각종 복제와 인공장기 이식을 통한 수명연장을 넘어 영생의 신적인 존재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다소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책에서도 언급하듯 인류의 기존문화는 그야말로 송두리째 변할 것 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평균수명 100살만 넘어도 결혼을 보통 두서너번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인간의 영생은 어떠한 세대간의 벽을 무너뜨림은 물론이거니와, 그때 인간이 그려볼 수 있는 또 다른 미래는 무엇이 될까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미래를 논하는 10명의 미래학자중에는 미래학만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자신의 특별한 전공을 통한 다른 분야를 아울러 미래상을 전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학자와 그가 펼쳐놓은 미래상이 있다. 바로 에릭 드렉슬러의 ‘창조의 시대를 이끄는 나노기술’과 짐 데이토의 ‘문화와 꿈을 생산하는 시대 드림소사이어티’였다. 이들이 주제로 삼아 설명한 나노기술과 드림소사이어티는 그야말로 지금도 어느새 우리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노기술은 그야말로 생산이 아닌 창조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장 원초적이라 할 수 있지만 점점 전쟁으로까지 치닫는 부족한 자원으로 촉발되는 인류의 의식주에 대한 평등적인 해결과 동시에 끊임없이 안고 있는 지구의 환경문제까지 해갈시켜줌으로서 문명의 발달로 인한 자연재앙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어, 그야말로 앞으로 인류가 지구를 더 오랫동안 임대해서 살아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나노기술의 독특한 창조성 때문에 이미 선진국들은 앞다투어 나노기술과 소재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역시 나노열풍이 한바탕 불고 지나간 이후 꾸준히 중소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서는 이런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한번 끊어지면 회생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신경세포를 머리카락 10만분의 1크기의 탄소나노튜브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점점 더 ‘나노’라는 이름이 덧붙여진 신기술과 상품들이 우리의 주변을 채워가고 있다. 이는 어쩌면 나노기술의 창조성의 확장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은‘문화와 꿈을 생산하는 시대 드림소사이어티’다. 이또한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래혁명의 한축이 될수 있는 것중의 하나이다. 최근 책과 TV속의 광고 등을 통해서‘스토리텔링’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감성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 그것이 스토리텔링이 갖고 있는 창조적인 가능성의 힘이다. 산업혁명이후 꾸준한 물질문명과 산업의 성장을 현재의 풍요에 이르렀다. 더욱이 앞으로의 미래에는 좀 더 성장세를 상승시켜 그 풍요는 지구촌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일단 사람들은 배가 따뜻해져야 다른 곳에 눈을 돌린다고 한다. 하지만, 자칫 지나치게 풍요로운 물질적인 만족을 찾다보면 정신적으로 빈곤해져 물질적인 풍요만으로는 삶의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사람들의 감정이 극도로 메말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스스로 극복하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그래서 조금은 메마른 감정을 일깨워주는 일과 상품을 찾게 된다. 말 한마디로 한 사회의 문화를 만들고 개인들에게 꿈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 스토리텔링을 통한 미래의 드림소사이어티인 것이다. 책에서 드림소사이어티를 역설한 짐 데이토는 그 큰 예로 한류문화를 꼽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서 한국의 미래 드림소사이어티의 선두역할을 예측하기도 했다. 

 짐 데이토의 인터뷰 마지막에 “좋은 미래학자는 그런 주변부의 사람들이니 그들의 말을 곱씹어야 해. 당신이 어떤 미래학자의 강연을 듣는데, 막 공감이 가면서 박수를 치고 싶어진다면 그는 결코 좋은 미래학자가 아니야”(p.178) 라는 말을 전하며, 기자는 이말을 이렇게 정리했다. “대중(大衆)이 공감하는 내용이라면 그것은 이미 현재진행형이지 미래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p.178) 그렇다면, 10명의 미래학자들이 전하는 <미래혁명>속에 있는 미래는 현재진행형과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미래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미래에 내가 제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미래는 결국 즐기는 자의 몫이다.”라는 것이다. 미래혁명 한가운데 자신을 한번쯤 내 던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미래가 현재에 있음에도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아직도 그는 과거에 살고 있거나, 과거의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먹어감을 한탄하며 점점 가속도를 내며 변화하는 세상을 그저 먼발치서 바라다보기만 한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획일적인 미래에 머물고 말 것이며, 자신의 나이를 떠나서 급변하는 세상에 단 한 발짝씩이라도 그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가려는 부단히 노력할 때, 펼쳐진 미래를 함께 공유하며 제대로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그런 가운데 뜻하지 않은 발견과 발명에 이은 발전으로 우리의 미래는 더욱더 풍요롭게 채워져 갈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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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공황전야 (확장판) - 한국경제의 파국을 대비하라
서지우 지음 / 지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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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질병과 고질적인 암과 같은 병도 하루아침에 생겨나서 우리의 몸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1달, 1년, 길게는 5~10년 동안 진행된 몸안의 악순환이 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경제 원리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마치 어느 한 큰 기업이나 금융기업의 도산으로 촉발된 것같이 보이는 현재의 세계의 경제공황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재되었던 경제전반에 뿌리 깊게 퍼져서 진행된 악순환의 종기들이 조금씩 곪아 있다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터지기 시작한 경제위기상황에서도 단순하고도 피상적인 정보를 접하는 일반인들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잘 되겠지!’ ‘정부가 알아서 잘 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자신의 호주머니 속 동전까지 압박해 오는 상황에 대해서 너무도 둔감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부류에는 당연히 나의 모습 또한 존재하고 있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럼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자신의 대처능력을 슬기롭게 키워가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은 생각보다 쉽다. 그것은 지난 자신의 경제지식에 대한 문외함을 떠나서 지금부터라도 현 경제상황에 대한 관심 갖고 나름의 예측을 통해서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서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그 수위를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봐야하는 것이다.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데, 그러한 방법을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라도 다시금 반문한다면 그 해법을 책<공황전야>에서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현재 세계 각국은 꺼지지 않은 채 시시각각 번져가고 있는 경제공황위기속에서 미국,일본과 같은 경제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지원책과 자구책등으로 조금씩 그 파장을 줄여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대책들은 연일 국내외 경제뉴스채널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공황전야>는 책 제목처럼 계속되는 각국정부의 지원과 자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내재되어 내일이라도 곧 터질지 모르는 또 다른 경제공황의 위험요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의 형식을 빌어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는 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지금의 경제공황위기가 촉발하기 시작한 1년 전의 상황에서 지금의 노력과 더불어 앞으로 2009년 상반기에 더 크게 야기될 수 있는 또 다른 경제 위기에 대한 조명을 담은 경제보고서라고 말할 수 있다. <공황전야>은 복잡한 경제를 다루었음에도 그야말로 일반인들이 현 위기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지난 10년전 국민들의 공포에 떨게했던 ‘IMF사태’의 원인분석으로부터 10년간의 경제성장과정과 이 과정 중에 키워온 또 다른 문제점등과 특히, 현재의 위기 상황에 직면한 우리나라 경제가 안고 있는 시급한 문제점과 대책까지 쉬운 예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경제공황위기의 시발점이 되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은 어떠한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파장의 크기와 앞으로 해결을 위해 남겨진 과제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감나무 아래에 누워서 떨어질지 모를 감을 기다리는 우매함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상황에 대한 피상적인생각만큼은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관심은 이러한 위기속에 과연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의 위기상태이며, 과연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경제강대국과 더불어 더 이상의 큰 피해를 줄여가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자구적인 대책으로 현 위기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방법으로 종합적인 대내외적 분석을 통해 최선의 선택 방안 11가지를 제시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 기준 금리를 최소 7.5% 이상 인상할 것.
 2. 예금자 보호한도를 1억 이상으로 대폭 상향 할 것.
 3. 은행 지급준비율은 대신 유연하게 할 것.
 4. 주택 건설사 파산은 화의로 처리할 것.
 5. 10대 그룹내 파산은 채권 연장 조치로 파산 시한을 연장시킬 것.
 6. 긴급히 유류세를 올려 휘발유 가격을 2,000원대로 올릴 것.
 7. 모든 감세 정책을 중단하고 상황에 맞추어 국채 바이백(환매)를 적으로 운용할 것.
 8. 기존 부동산 PF에 대한 건전성 심사와 이를 통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PF를 즉각 해지/해체 할 것.
 9. 기존 미분양 아파트에 대하여는 30% 가격대에서 매입하되 기존 주택보증보험이나, 주택공사만을 이용한 환매조건부 매입이 아닌, 은행과 자산관리공사와 함께 자산 유동화 방식으로 해결할 것.
10. 부동산 PF 해결과 미분양 해결과정에서 엄청난 대손충당금과 BIS 비율 하락이 불가피하므로 정부는 이에 대하여 공적자금 투입을 준비할 것.
11. 은행의 건전성이 확보가 지금상태에서 최우선 과제이므로 은행의 건전성이 확보된 다음, 재정정책을 사용할 것.(현 상황에서 재정정책의 사용은 재앙적 결과만 초래하게 될것임.) (p. 359~360)

 위의 방안이 정확한 해법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방안 중 금리인상과 유류세 인상으로 인한 휘발유가격의 인상은 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어려운 주머니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 방안은 보다 거시적인 측면의 대책이고 방안인 것이다. 자칫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모두가 조금씩의 감내 노력을 거부하다가 금융위기와 부동산의 버블붕괴로 인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그대로 답습할 수도 있으며, 아마 그 기간 역시도 10년이라고 장담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의 첫 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故 찰스 킨들버거)
이는 대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그대로 대중들에게 떠넘기려는 생각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경제위기 상황에도 대중들이 그 상황에 대해서 얼마만큼 제대로 인지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그 여파의 크기는 더 커질 수도,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처럼 들린다. 지금의 경제위기에 편승한 외환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국내 대기업들과 부자들이 달러 사재기라고 한다. 한 나라의 경제가 붕괴되고, 전 국민이 파탄에 빠질 수도 있는 위기상황에서도 가진 자들은 그저 자신의 부에 대한 집착과 탐욕에 빠져 있어, 상처 난 마음을 더욱 아프게만 한다. 결국 국민들 스스로 이 어려움을 해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하는 것이다. 앞에서 위기는 또 다른 희망이라고도 했다. 적어도 모두가 책<공황전야>를 통해서 정부의 달콤한 말로 포장되어 가려진 국내외적인 경제상황위기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보다 지혜로운 안목을 갖추어 현재의 혹독한 경제위기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경제국민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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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마이 라이프 - 버릴수록 인생은 즐거워진다!
피터 월시 지음, 김예리나 옮김 / 파워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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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경기 활황에 편승해서 투기로 인하여 과도하게 금전적 가치가 상승되어 있는 것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지금의 불황과 경제공항의 위기 속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파트값과 주식이다. 한동안 수도권 재개발 붐과 신도시 개발 등으로 드높은 분양가에도 선듯 계약을 하고 대출금을 끌어들여 아파트를 장만하고, 중국, 인도 등 신흥개발국의 기업증시에 투자하는 해외투자펀드가입은 직장인들 사이로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미국 등 경제를 주도한 국가를 위시로 한 글로벌경제의 위기감에 그야말로 거대한 거품처럼 부풀려만 갔던 꿈과 아파트값과 주가는 거센 칼날아래 반 토막이 나고 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늘 그런 거품의 피해자의 대부분은 선량한 서민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경제사정과 더불어 정신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거품이 있는가 하면, 거품의 거침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성공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것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생활의 거품일 것이다. 생활의 거품은 바로 눈앞에서 시작 된다. 가장 먼저 자신이 거주하는 집안에서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쓰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생활용품에서 먹다 남아 냉장고의 냉동실에 해를 묵혀가고 있는 음식물들, 이러한 거품들은 나의 일상을 소리없이 몸집과 물욕만 비대하게 할뿐만 아니라, 그로인한 경제적 소모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예전 방송을 통해서 집안에 휴지통이 없는 가정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보통은 휴지통이 없으면 오히려 집안이 매일매일 나오는 생활쓰레기들로 더 지저분해질거라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집안은 ‘심플라이프’ 그 자체였다. 휴지통이 없기에 대부분 일회용용기의 사용을 기피하고, 늘 장바구니로 음식재료를 구입해서 사용하고, 알맞은 양을 조리해서 먹고, 사용한 종이나 휴지도 최대한 재활용한다. 그 모습에 어떻게 저렇게 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렇게도 가능 하구나 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던 기억. 더욱이 오늘 <클린 마이 라이프>를 접하면서 결코 그때의 가정이 특별하다기 보다 내가, 아니 사람들이 참 불필요함을 스스로 많이 지니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클린 마이 라이프>는 저자 피터 월시가 이전에 저술한 <뒤죽박죽 내 인생 정리의 기술>의 또 다른 편인 것 같다. 책의 내용중에 이전의 책에 대해서 언급된 부분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책의 내용은 먼저 자각으로부터 시작되어 실천에 이르는 정신적인 무장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모든 변화의 시작 또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남의 시선이나 말에 이끌린 생각은 자각과는 거리가 멀다. 그건 나에 대한 일부만을 보고 생각한 정말 의견일 뿐이다. 누구보다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은 이 세상 단 한 사람 자신이다. 자신의 생각의 움직임으로 변화의 시작과 끝이 가능하게 된다. 책에서는 필요이상으로 비대해진 생활에 대한 비판을 강도 높게 한다. 하지만 비대해진 몸의 비계를 제거하는 방법론적인 접근이 아닌 지금의 자신을 만든 생활의 근원적인 습관에서 그 답을 찾아간다. 일단의 불필요한 생활용품의 정리(버림)와 무엇보다 정신적인 건강과도 연계된 몸의 건강을 개선하고 유지해 나가기 위한 음식에 관련 한 잘못된 생각과 습관들을 고쳐가게끔 마음을 인도한다. 얼마전 읽었던 음식과 관련된 서적에서도 지적했던 부분이 가족병력은 단지 유전적인 측면만이 아닌 가족들의 식습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근 10년 20년 같은 식탁에서 비슷한 음식물을 섭취한 가족들이 비슷한 몸을 만들어 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래서 그만큼 가정의 식습관은 한사람만이 아닌 가족들의 건강도 담보로 한다는 것이다. 요즘의 우리식탁에 올라오는 음식들 중 인스턴트식품처럼 가공되거나, 간접 가공된 식품들이 얼마만큼이나 차지하고 있을까 생각 했을 때 결국 남의 나라이야기가 결코 아님을 깨닫게 된다.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가는 방법도 제시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TV와 인터넷 사용시간이다. 무심코 TV와 모니터 앞에서 즐기는 시간이 1년 중 2달이상이라면 과히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야 요즘은 정보 활용과 업무에 관련지어져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매김 함은 어쩔 수 없다지만, TV시청시간만큼만 최소화해도 남들보다 1년이면 1달을 보너스로 더 사는 셈이다. 그런 계산이면 10년이면 1년을 더 사는 셈이다. 단지 사는 것만이 아닌 그 시간동안 자기계발 노력까지 더해진다면, 분명 그 사람과는 인생의 질적인 차이가 확연히 나타날 것이라 강조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세세한 철저한 정리기법을 제시하기에 지나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공감속에 아직 남아있는 기존 생활습관을 지키고자하는 반감일 뿐이다. 적어도 1달, 1년 정도의 시간을 거쳐 바람직한 습관들을 자신의 몸이 체득하면, 지금의 가졌던 반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물건과 시간 관리를 통해서 얻을 수 것보다 음식과 식습관을 통한 건강유지에 초점을 두어 설명하고 있음을 앞에서도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이 한마디에 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집보다 청소하기 훨씬 힘든 대상이다.”(p.275)
그렇다. 눈앞에 보이는 물건과 시간은 맘만 먹으면 정리하고 조절할 수 있지만, 망가진 몸이 제 모습을 찾기는 더욱 힘든 과정이 필요하고, 영영 돌이킬 수 없을 수도 있다.

 버리자! 지금 버리지 못하면 영원히 집안 한 구석과 마음 한 구석에 쓰레기만도 못한 물건들과 습관들로 마치 주인 노릇하는 노예로 살지도 모른다. 심플한 생활속에서 보다 향기나는 하루로 한 번뿐인 인생을 채워나가자! 효율성의 극대화는 많은 것을 가지고만 되는 것이 아닌 있는 것을 가지고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바로 인생의 성공과 행복에 다가서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버리는 것이 아깝고, 흥이 나지 않는다면, 집안과 마음속의 불필요한 거품들이 내 통장 안에 잔고가 되어 늘어나서, 경제적인 자신감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더해준다고 생각해 보자. 자신의 건강하고 심플한 삶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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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건 의무경찰으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대학 동기생과 시작된 펜팔이 100여통을 넘어섰을 때, 유명시인은 아니지만 詩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시집을 내시고 지역시인으로 활동하셨던 그 동기생 어머니가 내비치신 한마디. “그 친구 소설을 써도 될 것 같다.”라며 친구를 통해 들은 한 말씀.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편지와 일기에 적는 글솜씨로 소설이 가능할까‘ 스스로 자신의 상상력을 무시해버렸던 기억. 짧은 단편소설도 있지만 결국 소설을 생각할 때 먼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지부진한 문학적 지식으로 그저 그럴싸한 줄거리를 늘어놓는 재주부림도 소설이라 인정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예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보냈던 편지나 글짓기에 내가 쓴 글들은 어쩌면 소설의 단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지금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를 풀어 놓은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읽고 나서는 말이다.

 <밀란 쿤데라 커튼>은 우리가 비록 오래된 작품들이지만,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라면 조금은 생소한 작품들을 통해서 소설속에 담겨진 작가들의 내면과 그 시대적 사상의 배경을 해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한 예술로서의 소설에 대한 밀란 쿤데라만의 소설과 예술에 대한 정의들을 담고 있다. 단편적인 제목아래 짧게 나뉘어 구성되어 있어 처음에는 글의 단편성에 연관성을 찾기 힘들지만, 좀 더 천천히 읽어내려가다보니 글 간의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책의 제목 “커튼”의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가 설명되는 소설들과 작가들은 비록 세계의 예술과 문학을 주도하던 시대의 유럽의 작품들과 작가들이고, 예술은 무한한 반복의 기록이 아닌 자신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역사가 반복되듯이 그 예술과 문학 그중에서 소설이 지녀야 하는 통찰력을 겸비한 생각의 나열은 지금의 독자에게도 소설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더불어 이해시켜 준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판결’에서 프루스트는 소설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광학 기구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기 자신 안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가 책이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인정하는 일은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p. 132) 그리고, ‘생각하는 소설’에서는 “인간적 진리의 상대성이라는 관점을 가진 소설 예술이라면 작가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사색을 오직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하지 않을까?”(p.98) 라고 질문을 던지며, “소설속의 사색은 과학적 사색이나 철학적 사색과는 무관하다. 즉 모든 선입관의 체계로부터 철저하게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소설의 사색은 판단을 내리지 않고 진리를 부르짖지 않는다.”(p.100) 라고 답하고 있다. 이것은 자의적인 해석일지는 몰라도 아마도 저자가 소설이 예술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막 태어나면서부터 접하게 되는 가면이기도하고 다쳐진 커튼과 같은 선(先)해석이 가해진 상태를 벗어나는 데서만 가능하다는 역설로 다가온다. 결국 낡아 빠지고 진부한 유행을 쫓는 생각을 담은 산문으로서의 소설은 그 자신에게 단지 짧은 유명세를 남길 뿐 독자에게도 특별한 사색을 통한 진실에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서두에 나의 지난 편지들도 단편적인 소설이 아닐까 라고 했다. 이는 책에서 전하듯 인간은 망각과 기억의 협력적인 작용을 통해서 과거와 단절되며, 기록된 확실한 역사의 좁은 이면에 존재하는 대략적이고, 꾸며 대고, 변형과 단순 과장되거나 잘못 이해된 무한공간에 대한 발견들이 곧 소설이 되고 예술이 된다는 생각에 기인해서이다. 지금 나의 문학적 소양으로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소설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아닌 단지 과거, 현재, 미래의 나와의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소설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접하게 될 소설들에 대해 이루고 있는 구성에서부터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진 사상들까지 좀 더 속으로 통찰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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