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건 의무경찰으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대학 동기생과 시작된 펜팔이 100여통을 넘어섰을 때, 유명시인은 아니지만 詩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시집을 내시고 지역시인으로 활동하셨던 그 동기생 어머니가 내비치신 한마디. “그 친구 소설을 써도 될 것 같다.”라며 친구를 통해 들은 한 말씀.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편지와 일기에 적는 글솜씨로 소설이 가능할까‘ 스스로 자신의 상상력을 무시해버렸던 기억. 짧은 단편소설도 있지만 결국 소설을 생각할 때 먼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지부진한 문학적 지식으로 그저 그럴싸한 줄거리를 늘어놓는 재주부림도 소설이라 인정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예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보냈던 편지나 글짓기에 내가 쓴 글들은 어쩌면 소설의 단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지금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를 풀어 놓은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읽고 나서는 말이다.

 <밀란 쿤데라 커튼>은 우리가 비록 오래된 작품들이지만,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라면 조금은 생소한 작품들을 통해서 소설속에 담겨진 작가들의 내면과 그 시대적 사상의 배경을 해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한 예술로서의 소설에 대한 밀란 쿤데라만의 소설과 예술에 대한 정의들을 담고 있다. 단편적인 제목아래 짧게 나뉘어 구성되어 있어 처음에는 글의 단편성에 연관성을 찾기 힘들지만, 좀 더 천천히 읽어내려가다보니 글 간의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책의 제목 “커튼”의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가 설명되는 소설들과 작가들은 비록 세계의 예술과 문학을 주도하던 시대의 유럽의 작품들과 작가들이고, 예술은 무한한 반복의 기록이 아닌 자신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역사가 반복되듯이 그 예술과 문학 그중에서 소설이 지녀야 하는 통찰력을 겸비한 생각의 나열은 지금의 독자에게도 소설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더불어 이해시켜 준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판결’에서 프루스트는 소설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광학 기구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기 자신 안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가 책이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인정하는 일은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p. 132) 그리고, ‘생각하는 소설’에서는 “인간적 진리의 상대성이라는 관점을 가진 소설 예술이라면 작가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사색을 오직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하지 않을까?”(p.98) 라고 질문을 던지며, “소설속의 사색은 과학적 사색이나 철학적 사색과는 무관하다. 즉 모든 선입관의 체계로부터 철저하게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소설의 사색은 판단을 내리지 않고 진리를 부르짖지 않는다.”(p.100) 라고 답하고 있다. 이것은 자의적인 해석일지는 몰라도 아마도 저자가 소설이 예술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막 태어나면서부터 접하게 되는 가면이기도하고 다쳐진 커튼과 같은 선(先)해석이 가해진 상태를 벗어나는 데서만 가능하다는 역설로 다가온다. 결국 낡아 빠지고 진부한 유행을 쫓는 생각을 담은 산문으로서의 소설은 그 자신에게 단지 짧은 유명세를 남길 뿐 독자에게도 특별한 사색을 통한 진실에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서두에 나의 지난 편지들도 단편적인 소설이 아닐까 라고 했다. 이는 책에서 전하듯 인간은 망각과 기억의 협력적인 작용을 통해서 과거와 단절되며, 기록된 확실한 역사의 좁은 이면에 존재하는 대략적이고, 꾸며 대고, 변형과 단순 과장되거나 잘못 이해된 무한공간에 대한 발견들이 곧 소설이 되고 예술이 된다는 생각에 기인해서이다. 지금 나의 문학적 소양으로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소설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아닌 단지 과거, 현재, 미래의 나와의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소설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접하게 될 소설들에 대해 이루고 있는 구성에서부터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진 사상들까지 좀 더 속으로 통찰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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