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 김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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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읽은 책<대한민국의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사랑에 대한 해답과 같이 정의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들아, 아버지와 아들은 철길이다. 끝까지 하나가 될 수 없는 평행선이다. 그저 옆에서 너희들이 세상에 빛나길 기도한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애듯함도 없고, 세세한 관심은 없더라도, 늘 우직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존재감이 빛나는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아버지의 자식사랑에 대한 표현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령 “우리 아버지는 보통 아버지들과는 다르게 자상하시고 사랑스러우셔!”라며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는 이들조차도 이같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만큼은 같지 않을까? 개별적으로 느끼는 아버지의 사랑은 다르겠지만, 나 역시도 지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고, 나에게 대했던 모습들을 그려보면, 결국 어머니의 따스함보다는 존재의 무게감이 더욱 크다. 그렇다고 그런 사랑이 가볍다고 생각한적 또한 없다. 단지 그 차이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잣대로 비교함에서 생긴 것은 아닌가 싶다. 


 책<아버지의 편지>를 통해서 전해지는 아버지의 사랑 또한 그러하다. 결코 자식과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음에도 애써 감춤으로써 그 깊이를 더 한다. 당대에 이름이 알려진 학식이 있는 분들이 전하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보내는 아버지의 사랑은 어찌보면 애달프도록 숭고하게 느껴진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만큼은 어떠한 사회적 지위를 떠난 순수한 자식사랑 그 자체였다. 자신의 안위를 떠나 조석으로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걱정하고, 건강을 걱정하는 지금의 아버지와 별다름 없는 마음이다. 하지만, 늘 따뜻한 한마디보다는 걱정하는 마음을 질책을 통해서 전하고자 했다. 그런 마음을 책속에서는“너희가 능히 이 버릇을 통절하게 없애지 않아, 혹시라도 이러쿵저러쿵 하는 자가 있게 되면 맹세컨대 다시는 너희를 보지 않겠다. 천 번 만 번 경계하고 삼갈 것은 단지 이것뿐이다.”(p.50) 덧붙여 “놀라서 비통하여 죽고만 싶구나.”(p.49) 라고 하며 자식의 잘못에 대한 단호한 마음의 전달을 통해서 꾸짖으며 감춰진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대의 학식있는 분들의 자식의 입신을 깨우치기 위한 공통된 교훈은 바로 꾸준히 독서와 글쓰기 즉 늘 한결같은 배움를 통해서 자신을 갈고 닦으라는 주문이다. 유성룡은 “배움은 정밀하게 따지고 살펴 묻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너희가 일찍이 따져보지 않기 때문에 의문이 생기지 않고, 의문이 생기지 않으므로 물을 수가 없는 것이다.”(p.92) 라며 사색할 줄 아는 배움에 대한 말을 자식들에게 전했고, 박세당은 “글을 지을 때는 반드시 생경하고 궁벽한 변통을 없애야만 한다. 글을 평이하게 펼쳐서 온건하고 순수하게 하기를 힘써야 문체가 절로 좋아지는 법이다. 처음과 끝을 상세히 점검해서 글의 귀결이 입의 즉 주제의 맥락을 잃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라며 작문에 있어 주의할 점을 못 박아 자식들에게 주지 한다. 그 뿐만이랴, 가벼운 일신을 다루는 일에부터 사위와 관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처신에 대한 가르침들을 거침없이 자식들에게 전하고 있다. 어떤 편지에서는 정말 어머니의 시어머니의 잔소리처럼 들릴만큼 시시콜콜하게 당부를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두가 공감하며 가슴으로 새겨야 할 아버지들의 자식사랑의 표현들이 아니던가.
  
 우리가 지금 먼 옛날의 아버지들의 편지에 귀 기울려야하는 이유는 그 질책 섞인 말들속에서도 느낄 수 없는 아버지의 숭고한 사랑을 깨닫고 배우고자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외로운 사랑이란 생각도 든다. 그 사랑을 마구 들어내서 빛남이 아닌 늘 무게감에 감춰진 사랑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나의 아버지는 책속의 인물들처럼 단호하고 근엄하게 질책하거나 자상함을 보여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잘한 일에 대해서 짧은 칭찬 한마디와 함께 살며시 손에 쥐어주시는 500원짜리 동전 한 닢으로 깊은 사랑을 전하셨다. 지금은 왠지 손안의 500원짜리 동전을 볼 때마다 마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한 마리 학처럼 커다란 날개짓을 하며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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