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협약은 구소련을 견제하고자 하는 정치권 전략이기도 했지만 전 지구를 단일 시장으로 묶어 미국 금융자본의 이익률을 제고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경제적 세계전략 중 하나였다. 중국은 국가 간 분업체계에 적합한 저임금 노동력과, 거대한 시장을 가지고 있어 미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음 제공해 줄 것으로 판단되었다. 닉슨은 "우리는 중국이 국제사회 밖에서 공상을 키우고, 미움을 품고,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도록 영원히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 작 은 지구 위에 10억 명이나 되는 잠재적 유용한 사람들이 분노의 고립상태 속에서 살아갈 공간은 없다"고 외치며 중국을 그들의 체제 내로 끌어들였다. 키신저 협약에 가장 빨리 반응한 것은 누구보다도 중국시장이 필요했던 일본이었다. 1972년 일본은 중일수교를 체결했다. 미중수교보다 7년이나 빨랐다. - P51
한중수교는 중일수교가 이루어진 지 약 20년이나 지나서 이루어졌다. 분단체제가 만든 반공주의가 키신저 시스템에 늦게 탑승하게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동아시아에서 키신저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샌프란시스코체제와 더불어 전후체제의 두 축이 완성되었다. - P51
키신저 시스템은 미국에게는 경제 위기에 처한 샌프란시스코체제 의 보완재였고, 중국에게는 문화대혁명 이후 난관에 봉착한 자립경제의 위기를 헤쳐 나갈 출구 중 하나였다. 일본과 한국에게는 거대한 중국시장과 저렴한 노동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북한에게는 한국, 일본과 상대적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위기의 시대가 되었다. - P52
칭크는 그렇게 탄생했다. 짱깨주의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칭키즘(Chinkism)‘에 가깝다. 자본의 문제를 중국의 문제로 돌리고, 인종주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짱깨주의와 칭키즘은 차이가 있다. 짱깨주의는 ‘칭키즘‘에는 없는 신식민주의적 식민성이 들어 있다. 짱깨주의에는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과 상관없는 종주국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복종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짱깨주의를 ‘반중감정‘이나 ‘혐중정서‘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대항담론조차 형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식민의 언어 사용이다. 반중감정은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에 대한 일반적인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으로 여느 국가에서 볼 수 있다. 막연한 경계심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막연한 심리상태를 뜻한다. 혐중정서는 극대화된 반중감정의 일종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짱깨주의는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뿐만 아니라 신식민주의적 유사인종주의가 들어 있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이다. - P102
자본 앞에 국가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국의 론스타‘라고 부르지 않았다. 론스타가 미국회사라는 것을 알려면 인터넷에서도 검색을 몇 번 거쳐야 한다. 자본은 국적이 없는데 중국 자본에는 꼭 국가 이름을 붙인다. 그러려면 중국 정부는 중국의 자본을 완벽하게 통제한 다는 가설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피케티는 반성해야 한다. 그는 중국의 사적 자본이 70%에 달하고 그들은 이미 중국 정부의 통제선을 넘고 있으며, 앞으로 통제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한겨레》도 유달리 중국 자본에만 국적을 붙인다. 부채의 덫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할 때 《한겨레》는 중국이 사적 자본을 완전하게 통제하는 국가라는 가정을 동원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평소에 중국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에 완전히 장악당한 국가처럼 보도한다. - P200
신식민주의 권력이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하는 한반도에서 과도한 유럽식 보편인권을 적용하여 중국을 바라보는 것은 진보적 결과를 이끌어 낼 가능성이 결코 높지 않다. 김누리 교수가 중국의 북한병합설에 동조하는 한 그가 한국의 중국 담론에서 할 수 있는 진보적 역할은 거의 없다. 한반도를 병합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와 할 수 있는 일은 싸우는 것이 전부이다. 신식민주의체제를 넘어서는 평화체제를 논할 수도 없다. 영토와 주권까지 병합하려는 중국보다 신식민주의를 운영하는 미국이 더 나은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동아시아는 중국의 조공책봉체제가 작동하는 시대가 아니라 미국의 신식민주의체제가 작동하는 시대이다. 우리는 지금 너도 나도 죽은 제갈공명과 싸우는 데 진심이다. 중국의 북한병합설도 그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상상된 중국‘과 싸우느라 신식민주의체제에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 P213
이런 논지들의 주장은 한 가지 예측일 뿐이고 중국이 세계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한 가지 가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불분명한 미래의 일이라는 점이다. 설령 중국몽이 팽창주의 성격을 지닌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구현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 지금 중국의 외교적 지향을 평가하려면 중화도 아니고 패권도 아닌 전혀 다른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이 중화패권이라는 조악한 개념을 사용하여 중국의 행보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중국을 북한을 대체하는 또 하나의 악의 축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전쟁에 동원하려는 공포 마케팅이다. 중국몽은 그런 공포를 자극하는 좋은 소재이다. - P230
실익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냉전체제로의 회귀가 국익이라는 경제적 이해관계로 따질 수 없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주권과 생존권, 그리고 삶의 질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해 한국의 보수언론이 미국 편에 서라고 주창한 시기에 SCMP는 "한국에서 미국과의 안보 관계를 재평가하고 한국이 군대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구가 촉발"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의 관점이 아니라 한국의 관점에 서서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바라보면 ‘미국 편에 서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언제든지 돌아설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대비해야 한다. 우리의 생존권보다 중요한 것은 없고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의 주권이다. 문정인 세종문제연구소 소장은 "미국도 중국도, 그 어느 쪽도 당장은 우리 입장을 보면서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데, 한국 보수언론들이 미국 편을 들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말한다. - P244
미국 환경단체 ‘198가지 방법‘이 지적한 대로 전 지구의 환경문제에 중국을 악마화시켜 대처하는 일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데는 아무 도음이 되지 않는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중국을 악마로 만들어 놓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무산시키고 문제를 험오로 대체하여 문제를 덮는다. 자본의 문제를 외부화하는 최상의 프레임이다. - P265
한국 언론은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을 가릴 것이 없이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난 관점으로 보도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마크 셀던이 "새로운 지역적, 지구적 관점과 아래로부터의 관점을 바탕으로 현대의 갈등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겠다며 만든 《아시아-태평양 저널: 재팬 포커스(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나 그가 추천하는 《아시아타임즈》,《글로벌포스트》뿐만 아니라 지넷(Z-net), 트루스아웃(Truthout), 커먼드림스(Common Dreams), 카운터펀치(Counterpunch), 트루스딕(Truthdig), 워인콘텍스트(War in Context), 위키리크스(Wikileaks), 허핑턴포스트(The Huffington Post)와 같은 대안언론을 인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 P327
대안언론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입장과 관점에서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다. 24시간 영어로 방송하는 CCTV뿐만 아니라 CGTN, 알자지라, 러시아투데이, 텔레수르 들은 거의 참고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의 CIA와 연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소리(VOA, Voice of America), 자유라디오아시아(RFA, Radio Free Asia) 같은 매체를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많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나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처럼 서구적 프레임에 선 단체의 입장도 여과 없이 보도한다. 한국 언론보도는 김성해 교수가 주장하듯 ‘정보 주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행정부, 군부, 싱크탱크, 학자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한국의 공론에 참여하고, 그들의 권위는 한국 언론이 높여 준다. 중국만 한정해서 살퍼보더라도 한국의 언론은 미국의 ‘중국 때리기‘ 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 P327
그러나 《환추스바오》의 이런 성향을 고려하더라도 한국 언론은 《환추스바오》의 목소리를 편집해서 활용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언론에 인용되는 《환추스바오》의 목소리는 지나칠 만큼 늘 분노해 있고, 누군가를 공격하며, 거칠게 말하며, 틀에 박힌 언어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날마다 《환추스바오》를 구독해 보면 《환추스바오》는 우리가 가진 이미지와 다른 보도들이 많이 있고, 늘 공격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코로나19 때도 한국 언론이 《환추스바오》에 비난을 퍼부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환추스바오》는 "한국 힘 내"라는 응원 메시지를 신문에 실었다. - P338
신기하리만치 한국 진보진영에서 중국공산당을 바라보는 눈은 냉전시대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비판의 틀도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대의제가 곧 민주주의라는 형식적 민주주의 논리에 빠져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란 자본주의와 민주의 타협이다. 대의제가 민주주의를 표방한다고 해서 곧바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제도 속에는 늘 자본의 논리와 지배 엘리트들의 권력이 작동한다. 자본가나 지배 엘리트의 권력이 대의제를 장악할 때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마이클 샌델이 쓴 책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는 엘리트와 엘리트주의가 장악한 대의제가 어떻게 비민주주의적으로 바뀌는가를 말하고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자본의 대변인이 어떻게 대의제 민주주의를 붕괴시켜 나가는지를 보여 준다. - P423
중국의 일당제가 비민주주의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유럽중심주의적 판단이다. 물론 일당제가 더 나은 민주주의라는 것은 아니다. 둘 다 결과적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진보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지금 일당제 내에서도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 논의의 핵심은 결과적 민주주의에 있다. 결과적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를 낳을 수 있다면 일당제든 다당제든 상관없다. 지식계 내부에서는 어떤 정당 형태가 중국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가장 유리할지 논쟁이 한창이다. - P424
《시사인》의 김동인 기자는 2019년 2월 초 <대림동 고시원에서 보낸 ‘서른 번의 밤‘>이라는 르포 기사를 썼다. 학술적으로는 조선족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짱깨주의 문제를 지적해 온 논문이 몇 편 있지만 기자가 기사로 우리 안의 짱깨주의와 싸움을 벌인 것은 처음 보았다. 이 기사는 한국의 진보가 중국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전형이었다. - P429
《지디넷코리아(ZDNet korea》는 미국의 IT 전문 인터넷 신문인 지디넷(ZDNet)의 한국지사이다. 이 매체는 다른 신문과 매우 다른 중국 보도 방식을 가졌다. 우선 《뉴욕타임스》나 SCMP식의 해설 기사가 거의 없다. 단순한 사실 보도를 중심으로 기사를 내보낸다. 해외 언론을 거의 베껴 보도하는 이른바 ‘복붙‘ 기사도 많지 않다. 스스로 어젠다를 찾고 취재하여 기사를 쓴다. 지금 한국의 언론 지형에서 볼 때 위와 같은 기사 작성의 기본 원칙만 지키더라도 상당히 좋은 기사가 나올 것이다. - P432
현재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는 대략 네 가지 층위의 민주로 구성되는 다면적 민주이다. 다면적 민주의 제1층위는 보편적 가치 층위이다. 국가와 인종을 넘어서 구현되어야 할 인간의 보편가치 영역이다. 두 번째는 주권의 층위이다. 국민국가 시대의 보편인권은 대개 국가 단위로 구현된다. 국가는 주권이라는 권력을 행사하며 보편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국가 간의 폭력이나 구조적인 적폐를 청산해야 할 임무를 가진다. 세 번째 층위는 국가 간 체제의 층위이다. 대개 세계는 각각 다른 수준의 국가 권력과 다양한 주권의 형태를 가진 국가들이 양국 또는 지역으로 체제를 결성하여 국가 간 체제를 구성한다. - P462
UN과 같은 국제 규범 기구일 수도 있고, 식민지 시기 인도-영국처럼 지배 -피지배 관계일 수도 있고, 미일 동맹이나 한미동맹처럼 수직적 동맹체제일 수도 있고, 아세안이나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처럼 다자협력체이거나 EU처럼 다자주의적 관계일 수도 있다. 네 번째는 글로벌 체제 층위이다.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자본주의체제의 영역이다. 부등가 교환 체계하의 노동 문제, 자본과 국가의 관계 문제, 글로벌 분업체계하의 환경문제 들이 이 영역의 문제에 속한다. - P462
자유주의 보편가치가 전유되면 모든 가치가 등질화된다. 보편가치 우선주의의 전유가 일어나면 일상의 가치와 주권의 문제, 국가 간 체제 의 문제, 글로벌 보편가치의 문제가 평면으로 나열되어 등질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키신저 시스템에서 한국은 내부의 정치 민주화에 너무 빨리 축배를 든 채 보편가치의 극대화에 치중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손흥민이 넣은 한 골이 한미군사훈련과 등질화된다. 조국 자녀의 표창장 문제가 이재용 삼성회장의 뇌물보다 더 큰 죄가 될 수도 있다. 등질화된 자유주의 보편가치가 중국에 적용될 때 발생하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유럽중심주의 경향을 띤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는 로베르토 웅거가 개념화한 ‘제도적 물신숭배‘이다. ‘대의민주제, 시장경제, 자유로운 시민사회‘와 같은 틀을 구축하면 민주가 완성된다고 보는 제도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탈식민주의 싸움은 미뇰로의 주장대로 ‘보편성의 신화‘를 깨부수는 데서 시작 해야 한다. - P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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