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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평점 :
전복적이면서도 가볍고 과감하면서도 재미있는 소설.
아니 무엇보다 너무 재밌다. 재밌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제목에서 짐작가다 시피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가부장제를 살짝 비틀어 父가 있어야 할 자리에 女, 즉 딸을 집어 넣어 전개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사실, 주인공 이슬아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문득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만약 아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 형태였다면 ? 재미있지 않다. 아니, 우린 너무 아들만을 숭배하고 쩔쩔매는 가족 형태를 익숙히 봐 왔다. 그것은 차기 가부장을 떠받드는 형태로 가부장제 그자체이며 예로부터 끊임없이 무한히 숨막히게 반복되고 있는 그것이다. 만약 母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 형태였다면? 이건 좀 재미있어 보인다. 가족 내 위계서열 2위 내지는 3위(아들이 있을 경우 아들에게 2위 자리를 내어주므로)인 어머니가 위계의 정점에 서 있는 형태 또한 사회질서의 전복으로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딸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면 딸은 가족의 위계서열에서 대개 가장 최하위에 위치해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딸을 권력의 최정점에 놓아두고 전개되는 이 소설이 그저 가족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과감하고 전복적이며 독자들은 자꾸만 통쾌함을 느끼며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딸이자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녀장 이슬아는 자신의 모부 복희와 웅이를 직원으로 고용한다. 직장모드 일 때 그들은 서로 존대한다. 아주 낯설고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은 父인 웅이가 슬아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사용하는 부분이다.
그는 딸을 존경한다.
딸을 존경하는 아빠. 30년이 넘는 평생 가부장제에 뇌가 절여진 나에게 아주 낯선 문장이다. '아내를 존경하는 남편' 보다 더 과감하고 낯설고 조금은 불경한 느낌도 주는 문장이다. 하지만 더욱이 그래서 한편으론 가슴이 트이는 기분이다. 나도 존경받을 수 있다는, 그동안 나 스스로조차 자신에게 제대로 된 존중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듯한 충격을 준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이 새로운 가족 형태는 오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어 자꾸만 어딘가에 실존 할 것만 같다. 거짓인 걸 알면서도, 사실을 쓴 것만 같다. 꼭 마술적 리얼리즘 같다. 또 한편으론 가부장제와 가녀장의 차이점을 직시하게 한다. 가부장제에는 뚜렷한 위계질서와 그를 유지하기 위한 억압과 피지배가 존재하지만 가녀장은 아니다. 쓰는 언어의 형태부터가 다르다. 가녀장제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대한다. 물론 그 사이에 위계는 존재하지만 그것은 상호 존중과 배려로 유지된다. 가녀장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호존중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 더 나아가 자연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들은 식당 종업원을 존중하며 육식을 지양한다.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복회는 음식을 만드는 데만은 천재다. 슬아는 복희의 재능을 사서 누린다. 복희는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 - P40
한 고생이 끝나면 다음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 어떻게 자라야겠다고 다짐할 새도 없이 자라버리는 시간이었다. 고단한 생로병사 속에서 태어나고 만난 당신들. 내 엄마를 낳은 당신들. 해가 지면 져녁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당신들. 계속해서 서로를 살리는 당신들. 말로 다 할 수 없는 생명력이 그들에게서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흘러왔다. 알 수 없는 이 흐름을 나는 그저 사랑의 무한반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이 나의 수호신들 중 하나였음을 이제는 알겠다. 기쁨 곁에 따르는 공포와, 절망 옆에 깃드는 희망 사이에서 계속되는 사랑을 존자씨와 병찬씨를 통해 본다 - P108
자신에 관한 긴 글을 듣자 오랜 서러움이 조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겼다. 슬아의 해설과 함께 어떤 시간이 보기 좋게 떠나갔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 P109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만오천 원을 천오백 원으로... ..." 공식적으로 띨띨이가 된 슬아가 회한 속에서 스티커를 붙이며 변명한다. "같은 책을 계속해서 편집하다보면 뭐가 뭔지 모르게 돼... ...눈이 낡아서... ..." - P169
웅이가 잠자코 들으며 못을 박는다. 그는 문득 호시절을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딸에겐 젊음과 능력이 따르고 자신에겐 체력과 연륜이 따르는 이 시절. 별다른 슬픔 없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이 시절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영원할 리 없다. 딸과 함께 흘러온 삼십 년이 웅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찰나 같은 과거와 도통 모르겠는 미래를 생각하다가 웅이가 입을 연다.
"남자를 만날 거면, "
나사를 조이며 덧붙인다.
"너를 존경할 줄 아는 애를 만나." - P279
그렇게 말해놓고 웅이는 생각에 잠긴다. 방금 자신이 한 말을 자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웅이가 알기로 여자를 존경할 줄 아는 남자는 잘 없다. 웅이 자신을 포함해서 그렇다. 웅이는 불현듯 지난 동창회를 떠올린다. 사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다 맞춰준다는 말 같은 게 아니었다. 슬아가 대꾸한다.
"보통은 나보고 존경하라고 하던데, 남자를요." "너는 누구든 잘 존경하잖아."
웅이는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다. 실은 내가 너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 P279
밤이 깊어간다. 서로가 서로의 수호신임을 알지 못하는 채로 그들은 종교의 근처를 배회한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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