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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인질이다 ㅣ 열다 페미니즘 총서 3
디 그레이엄.에드나 롤링스.로버타 릭스비 지음, 유혜담 옮김 / 열다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백래쉬가 판치는 지금 꼭 읽어야할 필독서
무엇이든 때가 있다는 말은 책에도 통용되는 것일까?
수년 전부터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지금 이 시점에서야 읽게 된 것은 아마도 나 스스로의 관점을 잃어가고 동시에 가부장제에 굴종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백래쉬가 판을 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 책은 정말 모든 여자가 읽어야할, 아니 성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 하겠다.
현대 사회는 참으로 웃긴 것이 사회 곳곳에 있는 모든 것이 여자는 2등 시민이라고 소리지르고 있는데 정작 "여자는 2등 시민이다" 라는 명제를 여자가 입에 올렸다가는 단숨에 페미니스트로 낙인 찍히고 더이상 입을 열 수도 없게 묵살당해 버리고 만다. 반면 같은 명제를 남자가 말한다면 그는 굉장히 깨어있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많은 여자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는 사실이 나의 가슴을 터질 듯이 답답하게 만든다.
이 책은 우리 인식과 사회 속에 정말 뿌리 깊게 내린 가부장제의 본질과, 왜 우리 여자들은 단결하지 못하고 결국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남자의 노예로 사는 것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아주 뼈저리고 명징한 통찰을 보여준다. 전반적인 여자의 심리를 스톡홀름 증후군의 이론으로 풀어낸 것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놀랍고 흥미로웠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저자가 현상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럼 하나하나 살펴볼까.
우선 나는 그동안 항상 왜 여자에 대한 위협은 성적 위협을 동반하는가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저자는 그것이 바로 현 남자 중심의 사회에서 여자를 공격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남자 중심의 사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징글징글하게 이어져온 역겨운 남자 중심 사회의 근간은 바로 여자와 남자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성별은 생식기의 차이로 나뉜다. 여근을 가진 사람은 여자, 즉 피지배 집단으로, 남근을 가진 사람은 남자, 즉 지배 집단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여자가 있을 때, 그에게 남근이 없다는 사실(사실 여근이 있는 것이다)은 그 사람이 아무리 개인적 능력이 뛰어나도 결국엔 피지배 집단의 일원일 뿐이며, 지배-피지배 집단을 나누는 기준이 남성기의 유무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여자에 대한 성적 공격을 서슴치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즉 남자들에게 여자를 성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여자가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난 열등한 지위를 아주 효과적으로 상기시키는 방법이며 동시에 우월감을 느끼는 방법인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또 있다. 현재 결혼을 앞둔 사람으로써 주변을 둘러보니 결혼에 목맨 여자들이 종종 보이는데 그들의 심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현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아무리 봐도 90퍼센트의 경우 여자에게 손해다. 아니, 결혼만 하면 딱히 손해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에 거의 90퍼센트의 확률로 딸려오는 출산의 경우 99퍼센트 여자에게 손해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자에게 결혼과 출산을 종용하고,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은 여자에게 겁을 주고 후려치고 그들을 무엇인가 결여된 인간으로 취급한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짜로 결혼이 필요한 것은 남자인데 말이다! 이것은 제3국에서 여자를 사와서 매매혼까지 하는 성별 비율이 어디가 더 높은가 보기만 해도 답이 나온다. 아니면 구글에 혼인여부에 따른 성별만족도를 검색해봐도 바로 나오는 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왜 결혼을 원하는가?? 나는 이것이 정말 궁금했다. 정말로.
책을 읽은 이제서야 나는 답할 수 있다. 결혼에 목맨 여자는 그만큼 스톡홀름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이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위협을 느끼고 있고, 그렇기에 자신에게 친절을 배풀어준 일부 남자들에 지푸라기 잡듯이 매달리는 것이다. 그들이 이 남성중심 사회에서 그들을 지켜줄 구원자가 되리라 인지왜곡을 일으키면서 말이다.
아 쓰고 싶은 말은 정말 너무나도 많다. 너무나도.
이 책은 읽고 난 후에는 절대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성차별적인 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성별에 따른 형량차이, 성별에 따른 수사력 동원 차이, 성별에 따른 정말 수도 없는 그런 눈에 보이는 차이들은 끊임없이 외친다. 남자들에게, 여자들에게. 남자는 가해자가 되어도 좋다고, 여자를 가해하라고, 같은 남자는 건드리지 말고 여자를 공격하고 여자를 공포로 밀어넣어 그들이 피해자의 집단에 머무르게 하라고. 여자들의 본인의 위치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남자에게 순종하도록 그렇게 온 사회가 외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지만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생존 그 자체로 저항하고 있다.
가부장제에 순종적인 여자나 그렇지 않은 여자들 모두 사실 알고 보면 각자의 방식으로 제도의 불합리함과 역겨운 사회에 크고 작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난 페미니즘 운동은, 나가서 시위하고 단체행동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그저 본인의 직장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이 직장에서 버티고 서서, 이 다음에 이 자리에 올 수 도 있는, 자라나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선택할수 있는 선택지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굉장히 고무적으로 느껴진다.
할수있다!!! 우리 여자들이여, 여성 동지들이여,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의 희망이고, 발전이고, 미래다!!!
스톡홀름 증후군의 4대 선행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주관적 생존 위협: 인질이 주관적으로 생존 위협을 느끼며 인질범이 그 위협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고 믿는다. 2. 주관적 친절: 인질이 공포 상황 속에서 인질범이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주관적으로 인식한다. 3. 고립: 인질이 인질범이 아닌 타인의 시각으로부터 차단되어 고립된다. 4. 주관적 탈출 불가능성: 인질이 주관적으로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한다. - P92
생식 기관을 바탕으로 지배/피지배 집단을 분류하는 우리 사회의 관습은 여러 폐단을 낳는다. 과장된 방식을 동원하면서까지 강박적으로 타인에게 우리 성별을 광고하는 것, 남자가 여자와의 상호작용을 억지로 성애화하는 것, 사회적 풍습상 남자가 성관계를 ‘리드‘(즉 지배)해야 하는 것, 남자가 여자의 몸에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것이 모두 여기서 시작된다. 남자가 여자에게 가하는 성폭력과 ‘정상적인‘ 이성애 삽입 섹스는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 두 관습을 통해 남근이 여근 위로 올라서고, 이에 따라 남자가 여자 위로 올라선다. 그리고 가부장 관습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궤도 역할을 하는 게 개인의 성애화와 여남 상호작용의 성애화다. 특정인이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두드러져야 피지배/지배 집단 중 어디에 속하는지(즉 권력관계)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 남자가 여자에게 가하는 성폭력은 남근이 여근 위로 올라서게 하는 주된 수단이다. - P125
그리고 83명의 남성 집단을 대상으로 ‘여자의 종속성 인정도‘와 ‘레이디 퍼스트 수용도‘를 조사한 결과 두 척도 사이에 상당한 양의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의 상관관계가 성립한다는 건 여자의 종속성을 대놓고 강화하려 드는 남자는 높은 확률로 ‘레이디 퍼스트‘ 역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모순적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여자가 지나갈 때 문을 잡아주겠다고 나서는 바로 그 남자가 여자는 고위직에 올라서는 안 된다거나 여자는 남자보다 임금이 적은 게 당연하다고 주장할 때가 많다. - P189
<남성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여자는 남성 폭력에서 보호받기 위해 남자에게 기대게 된다. 남자가 자기를 보호하기만 하면, 다른 무슨 짓을 하건 그 남자는 친절한 남자가 된다. 폭력의 가능성은 계속 따라다니기 때문에 여자는 계속 옆에 있어 줄 친절한 남자를 찾는다. 많은 여자가, 어쩌면 여자 대부분이 보호가 - 그리고 가부장제 아래 남자만이 베풀어줄 수 있는 다른 여러 종류의 친절이 - 필요해서 결혼한다. 어던 의미에서 여자는 퍼트리샤 허스트처럼 우리를 지켜주는 경호원과 결혼한다고 할 수 있다. (...) 여자는 남자가 보호해준다는 데에 감격해서 애초에 보호가 필요한 이유가 남자의 폭력 때문이라는 점을 잊는다. 우리가 ‘친절‘한 남자와 짝을 짓게 될 때, 남자에 대한 의존도는 커지고 우리를 일대일로 착취할 수 있는 무대가 열리며 우리는 다른 여자와 더욱 차단되어 고립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실을 간과한 채 남자와의 관계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 P190
<구애행동> 여자는 대부분 남자가 소위 구애 단계에서 자신에게 가장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고 따듯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자에게 결혼은 본격적으로 남자를 위해 업무를 개시하는 신호탄이다. 이제 남자 옷을 빨고, 밥을 해주고, 집을 치워야 한다. 반면 남자가 여자에게 보이던 애정 어린 관심은 결혼만 하고 나면 한순간에 사그라든다. 이제 ‘잡은 고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짧게 이어지는 구애 중 남자가 보이는 진정한 친절에 여자는 일생의 가사 노동을 바친다. - P193
남자가 이성애자라고 할 때, 그 말은 남자가 이성하고만(혹은 이성 위에서만, 이성에다만) 섹스를 한다는(박는다는) 뜻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이성애자 남자는 사랑으로 분류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다른 남자에게만 쏟는다. 남자가 존경하고, 존중하며, 공경하고, 흠모하며, 경애하고, 모방하고자 하고, 우상화하고, 깊은 애착을 품고, 가르침을 주거나 배울 마음이 솟아나는 대상, 그리고 본인에게 존중과 경의, 인정과 흠모, 숭배와 애정을 바치기를 갈구하는 대상은 다른 남자일 때가 압도적으로 많다. 남자가 여자와 맺는 관계에서 존중으로 통용되는 감정은 실제로는 친절과 관용, 온정을 베풀어주는 것에 가까우며, 경애로 통용되는 감정은 예술작품처럼 얌전히 모셔두겠다는 것에 가깝다. 남자가 여자에게 바라는 건 헌신과 노동, 섹스 뿐이다. 이성애 남성 문화는 호모 에로틱하다. 즉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문화다. - P194
노예 소유주가 친절을 베풀면 수하의 노예들은 노예제의 멍에가 견딜만하겠지만, 노예 제도의 극악무도함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남자는 언제나 태도가 돌변해 친절과 사랑을 끊을 수 있다. 따라서 친절과 사랑이 언제든 끊길 수 있다는 위협이 여자를 통제하는 도구로 작용해, 여자가 계속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하게 하고 남자의 친절함이 중단되지 않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남자가 여자에게 보일 수 있는 진정한 친절이 있다면 그건 남성 지배에 맞서는 우리의 투쟁에 참여하고 지지를 보내는 것뿐이다. - P201
이성애적 사랑은 강압적인 환경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여자에게 퇴행적인 성격을 지닌다. 여자는 동등한 관계에서 남자를 사랑할 자유가 없기에 아동이 모부와 관계를 맺듯 남성 파트너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니 사회가 여자를 애 취급하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여자가 남성 파트너와 맺는 관계는 ‘모부화‘된 아동이 모부와 맺는 관계와 유사할 때도 있다. 모부화된 아동이란 가정 내에서 모부의 역할까지 맡는 ‘애어른‘을 말한다. 여남 관계에서 여자는 모부의 역할을 맡지만 실제 통제권은 남자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 P242
여자는 절박하다. 남자의 친절을 붙들어 매야만 한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고자‘한다. 어떨 때 남자가 행복한지, 슬픈지, 화를 내는지, 우울한지, 만족스러워하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남자의 언어적, 비언어적 행태에 깃든 뉘앙스 하나하나를 해독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자면 여자는 남자보다 대화 상대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루빈의 논문은 여자는 상대를 쳐다보면서 "우리가 적절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남성 파트너에게서 신호를 감지한다"고 추측한다. - P263
이렇게 온갖 노동으로 남자의 삶을 쾌적하게 해줄 뿐 아니라, 모든 여자는 남자의 ‘기‘도 세워줘야 한다. 즉 남자에게 감정노동도 해야 한다. 여자가 남자를 근본적으로 우월한 존재,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강력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걸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게 바로 ‘기 세우기 stroking‘다. 그래야 남자는 우리를 경쟁자로 느끼지 않는다. 남자가 우리와 경쟁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폭력적인 방식을 동원해 본인의 지배력을 확인하려 들 수 있다. 여자는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보다 능력이 뛰어날 때조차 본인을 낮추고, 남자를 띄워주고, 본인의 성취를 입도 뻥긋하지 않으면서 남자의 기를 세워준다. 위기를 느끼는 남자야말로 여자에겐 위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P266
어떻게 보면 여자가 여자됨에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비하당하는 집단(여자)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해서 자존감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남자가 되고 싶은 욕망의 형태로 나타나는 양가감정은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느끼는 혐오를 드러낸다. 우리 억압의 근원이(우리의 여자됨이 아니라) 남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여자의 여자됨에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 양가감정을 느낄 것이다. 여자가 여성성에 표출하는 양가감정은 비록 지금은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지만,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방식이 될 잠재력을 품고 있다. 여자가 우리의 ‘여자됨‘은 받아들이면서도 ‘여성성‘에는 저항할 때 우리는 여성 종속이라는 문화적 규범을 뒤흔들게 된다. - P271
사람들이 이타성과 자기희생의 중요성을 논할 때는 근본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다 ... 이해관계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권력을 적게 쥔 쪽에게 이타성을 발휘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타성과 자기희생은 ‘여성적 덕목‘으로 여겨진다. ‘여성성‘은 남성 지배 아래 여자가 복종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광경으로 만드는 개념이다. 이렇게 ‘여성적 덕목‘은 제도적 권력을 많이 가진 쪽이 적게 쥔 쪽의 자원을 강탈해, 지배와 종속 관계가 유지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 P306
이렇게 여성성을 재평가하다 보면 여성적이지 않은(‘남성적‘이거나 비전통적인) 여자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정신 건강 전문가들은 왜 남성적인 여자가 여성적인 여자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판단해왔을까?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는 남성적인 여자 쪽이 더 정신적으로 건강한 데다 같은 남성적 특징을 남자가 내비쳤을 때는 건강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어째서 어떤 특징은 한 성별에게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특징이 되고, 다른 성별에게는 병적인 특징이 되는 것일까? - P311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 개념은 왜 여자 대부분이 남자와의 관계에서 그렇게나 많이 희생하는지를 설명해준다는 면에서 이전에 여자의 남자 사랑을 해석한 방식을 넘어선다. 또한 왜 폭력이 불 보듯 뻔한데 사랑이 자라나는지도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 이론은 가부장제 사회의 여남 관계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지를 볼 수 있게 해주면서도, (가해자를 사랑하다니 ‘병들었다‘느니 한심하단 식으로) 피해를 여자 탓으로 돌리는 함정에는 빠지지 않을 수 있는 틀이다. - P326
가부장제는 여자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도록 남성 폭력이나 경제적 제약 등 장애물을 세워 여자가 의존적이라는 환상을 유지한다. 여자가 원래 의존적으로 태어났다면 우리가 남자에게서 떠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온갖 장애물들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믿어서는 안 되는 부분은 또 있다. 우리는 남자가 선의를 발휘해 ‘우리에게 권리를 부여해줄‘거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여자가 자랑스럽게 내 남편은 이런 일(예를 들어 직장 출근)도 하게 해준다고 말하는 건 남편이 본인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다. - P355
우리는 우리 권리는 우리 권리이며 이미 우리 소유인 것을 남자가 생색내며 부여해줄 수는 없다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남자가 여자의 권리와 관련된 부당한 법률을 만들 때 시민 불복종 운동을 불사하며 저항하는 것도 한 가지 선택지다. - P356
여자가 남자에게 책임을 물을 때마다 우리는 ‘바깥‘의 현실을 소환한다. 남자라는 집단과 여자라는 집단의 지배 관계, 그 강력하지만 인공적인 구조 ‘바깥‘에 우뚝 선 현실 말이다. 여자가 남자의 행동에 책임을 물을 때마다 우리는 현실을 규정할 힘이 있는 양 구는 가부장제에 거역한다. 온 우주를 증인으로 세운 다음 이렇게 발언한다. "힘은 힘이지 진실이 아니다. 너도 나처럼 사람이다. 나보다 더한 존재도, 덜한 존재도 아니다. 아무리 너라도 인간으로서의 과업을 회피할 수는 없다. 네게 그 진실일 상기시킨단 이유로 날 처벌하고, 죽인다고 하더라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 P357
자아를 만들고 되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를 배워야 할 것이고 우리의 욕구와 열망을 내세워야 할 테다. 이는 단순히 남자에게 행동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우리 행동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다. 피해자가 된 건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 우리의 억압 상태에 대해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할지는 우리의 책임이다. 결국 우리는 일생을 바칠 가치관, 필요하다면 목숨까지도 바칠 가치관을 결정해야 하며, 그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기로 선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분노의 힘이라는 영구한 주제가 어떤 의미인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358
분노는 ‘그건 싫다‘라고 말하는 일이자 선을 긋는 일이고 ‘그건 용납할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우리가 만약 싫다고 말할 수 없다면, 우리의 좋다는 대답도 정직할 리 없다. 가부장제에서 여자들은 우리의 욕구, 바람, 영역을 주장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타인과 연결되는 게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한계를 존중하는 것도 타인과 연결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본다. - P363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Muriel Rukeyser)는 「케테 콜비츠 Kathe Kollwitz」라는 시에서 한 여자가 자기 삶에 관해 진실을 말한다면 세계에 금이 쩍 갈것이라고 쓴 바 있다. 실제로 여성 운동에서 우리는 그런 광경을 번번이 목격해왔다. 여자가 남성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터부시된다. 그러나 여자가 공개석상에서 용기를 내어 강간, 성추행, 직장 내 성차별, 아내 구타, 아동 신체 학대, 친족 성폭력 같은 주제에 관해 목소리를 냈을 때는 형사 사법 체계와 정신의학 체계에 극적인 변화가 찾아았다. 물론 여자는 대부분 그런 변화가 남자의 권력 남용으로부터 여자를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느낀다. 이런 변화가 악용되어 여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있다. 그럼에도 여자가 침묵을 지켰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변화다. 가부장제의 백래시(반발)는 기정사실이라고 봐야 하며, 백래시가 인다면 우리 운동이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 P372
바로 언어를 우리 것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먼저 일기를 쓰거나 나에게 일어난 불쾌한 사건을 적어 내려가 보라. (물론 이 내용이 타인의 손에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전화 통화가 가능하다면 (열린 마음으로 들어 줄) 다른 여자와 일상적으로 전화 통화를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페미니즘 잡지 구독도 좋다. 특히 ‘독자 편지‘ 난이 활발한 잡지를 읽는 건 다른 여자와 대화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여성 지지 모임 및 의식 고양 모임에 참여하면 여자들이 (보통 구체적이지도 않고 정리된 상태도 아닌) 우려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게 도와준다. 이런 모임에서 우리는 문제를 붙들고 현상이 어느 정도 이해될 때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그 현상을 말로 명쾌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 경험을 서로와 나눌 권리와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 P373
우리에겐 줄 게 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서술했듯 우리 편을 챙길 방법은 꽤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부장제와 싸우면 잘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당연히 그럴 힘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전 세계의 많은 여자는 습관처럼 큰 그림을 보면서도 작은 조각을 매만지며 일한다. 이런 습관을 보존하고 되살려 의식적으로 행하고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주변 여자들이 무력감을 느끼지 않고, 여자됨에 긍지를 느끼머, 아주 잘먹고 잘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P396
빠삭해지기 자체는 항상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둔 채 가부장제 편에 선 자들을 감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1) 먼저 가부장제는 거짓말(여자가 태생적으로 열등하다는 거짓말)을 토대로 하는 만큼, 가부장제의 논리는 보통 진리를 뒤집은 것이고 우리는 가부장적 메시지를 다시 뒤집음으로써 진리를 구할 수 있다. (2) 가부장제편에 선 자들이 화를 낸다면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쟁점을 제대로 짚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진리와 너무 가까워졌을 때 그들은 화를 낸다.)
가부장제의 흔한 전략 중 하나는 목소리를 내는 여자를 남성혐오자, 레즈비언, 혹은 페미니스트라고 불러 입을 다물도록 하는 게 있다. 세 가지 명칭은 가부장적 사고 안에서는 서로 상호 호환된다고 할 수 있다. 셋 다 남자 뒤치다꺼리하며 삶을 허비하기를 원하지 않는 여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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