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클루지
개리 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갤리온 / 2019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스스로를 인도하는 종


자신의 존재를 타자화하여 바라봄으로써 스스로를 인도하는 종.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타 種과 구별짓는, 두드러지게 하는 특징이 아닐까 싶다. 이 책 '클루지'의 소제목을 지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클루지 : 인간사용 설명서' 라고.


책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진화는 특별한 목정성을 띈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과 적응에 의한 결과이다. 이러한 진화가 항상 최적효율을 낸다면 좋겠지만 그저 적당히 좋은(good enough) 상태에서 머무는 경우도 많은데 인간의 정신 또한 예외가 아니다.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이 해결책이 적당한 수준에서 효력을 발휘하면 이것은 그 다음 진화의 토대로 굳어진다. 이 때문에 인간의 신체는 눈의 맹점이나 맹장의 존재 등 불필요한 진화의 흔적을 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 또한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잘 제어하지 못하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눈 앞에 보이는 감자튀김에 손을 뻗는 이유는 조상 전래의 강력한 반사신경과,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탑재된 세련된(그러나 미약한) 숙고체계 사이의 갈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 정신의 이런 특이점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더 잘 알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인도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주 유익한 책이다. 미약한 의지력과 정신력은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자책하는 것과, 이것이 모든 인간종이 지닌 보편적인 종적 특징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일단 후자일 때 내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게 참이기도 하고.ㅎㅎ. 


나는 이 책을 '역행자'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책 '역행자'에서 저자는 타인의 비논리적인 반응을 볼 때마다 '저건 클루지야' 라고 생각했다는데, 나도 책을 덮고 나니 모종의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클루지란 단어가 떠올라 정말 웃음이 난다. 이 책은, 뜻대로 되지 않는 스스로를 어떻게든 끌고 가보려고 노력했던 이들이라면 정말 공감할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말을 듣지 않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함께 가기 위해 우리는 정말 여러 시도를 해보았을 것이다. 공부할 땐 핸드폰 가방에 넣어버리기, 먹을 것 눈앞에서 치워버리기, 상사가 헛소리 할때마다 손바닥에 참을 인자 세번 새기기 등...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것들은 조상전래의 반사체계의 작동을 멈추고 숙고체계로 뇌를 조종하기 위한 (우리 스스로는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는) 인간 정신 사용 방법이었다는 걸, 책에서는 자세히, 그리고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잘 인도해가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정신의 부족함에 대해, 우리의 미완적이고 반사적인 뇌의 작용에 대해 이렇게 분석적으로 서술한 책을 읽는 순간이, 한번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잘 만든 공식은 간결하며 상황을 명료하게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클루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꿰뚫는 원 이론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으며 사실상 그런 자기계발서들은 클루지의 조각을 떼어네어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끔 각색한 변주곡 쯤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절대 지금 읽기 시작한 책의 곳곳에서 클루지가 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어쨌든 읽는 동안 유익했고, 주석까지 찾아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처럼 자연은 쉽게 클루지를 만들곤 한다. 자연은 그것의 산물이 완벽한지 또는 세련됐는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작동하는 것은 확산되고 작동하지 않는 것은 소멸할 뿐이다.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유전자는 증식하는 경향이 있고, 도전을 이겨내지 못하는 생물을 낳는 유전자는 사라져버리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은유다. 이 게임의 이름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적절함(adequacy)이다. - P32

정신의 오염이란 이처럼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처신하고 있다는 우리의 주관적 인상은 객관적 현실과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사고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인간의 신념은 기억에 의해 매개되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어렴풋이 의식하는 사소한 것들의 영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 P122

기억은 일차적으로 우리 자신의 경험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조직된다. 하지만 이런 불균형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는 거의 취해지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전반적으로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믿게 되고, 독선적인 확신 속에 불끈 화를 내기까지 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집안일을 함께 하기이든 학술논문의 공동 집필이든 거의 모든 협동 작업에서 주관적으로 지각된 각 개인의 공헌의 합은 실제로 수행된 작업의 총량을 초과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한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한 일은 잘 기억한다. 때문에 누구나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만약 우리의 자료표본이 제한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면 우리 모두는 훨씬 더 관대해질 것이다. - P127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떻게 사람들이 직접적인 증거가 없음이 분명한데도 종교적인 믿음을 고수할까?"라는 의문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이것을 설명하려면 진화를 통해서 우리 인간은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도록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동기에 의한 추론과 확증편향이 없다면 세상은 전혀 딴판일 것이다. - P162

사람들은 때때로 마치 두 개의 자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한다.
하나는 청결한 허파와 장수를 바라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 담배를 숭배한다.
하나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나오는 극기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기를 계발하려고 열심이지만, 다른 하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옛날 영화를 보려고 한다.
이 둘은 서로 통제권을 쥐려고 끊임없이 다툰다.
-토마스 쉘링Thomas Schelling - P233

인간의 마음이 클루지인 까닭은 우리 안에 두 개의 체계가 있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이 두 체계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 때문이다.

(...)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지니고 있는 것은 두 체계의 어중간한 결합이다. 그래서 조상 전래의 반사 체계는 유기체의 전체적 목표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호응하며, 맥락 기억처럼 낡고 부적당한 부분들로 이루어진 숙고 체계는 무진 애를 써야만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 P310

내가 보기에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아니라,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도대체 왜 인간이 행복에 관심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다. - P412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쾌락 중추는 인간 종의 생존을 촉진하도록 완벽하게 조율된 몇몇 기제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손쉽게 (그리고 유쾌하게!) 속아 넘어가는 조야한 기제들을 잡다하게 모아 놓은 것이다. 쾌락은 진화생물학자들이 ‘번식 적응도‘라고 부르는 것과 느슨하게만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고마운 일이다. -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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