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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피싱
나오미 크리처 지음, 신해경 옮김 / 허블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체셔캣
왜 고양이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나도 고양이를 좋아한다.)
AI가 그려내는 온갖 각박하고 심란한 미래예측의 소용돌이 속에서 안전한 벙커를 발견하고 그 안에 잠긴 느낌이 든다. 미래가 그려내는 그림이 꼭 음울하고 처절하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은 책이다.
잘 쓴 SF 소설을 읽다보면, 많은 경우, 아니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공상과학의 모습을 하고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사회는 주로 소수자들의 사회다. SF는 과학의 모습을 하고 소수자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전체 줄거리보다도 장면장면의 묘사에 더 사로잡힐 때가 있는데 이번 책도 약간 그랬다. 작중 스테프의 엄마는 스토커 남편을 피해 끊임없이 이사를 다닌다. 그 장면이 어쩐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자꾸만 책장을 넘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떠나고 싶다. 떠돌고 싶다. 늦은 밤 기차를 타고 달리며 창밖에 펼쳐진 야경을 바라보고 싶다. 상념에 잠기고 싶다. 모르는 도시를 향해 떠나고 싶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상념과 여행에 대한 갈망은 내 생활이 안정적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의 한 구절을 떠올려본다. 자유를 찾아 떠난 말이 그 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안장을 채워달라 마굿간으로 돌아왔다는 얘기. 내 독서 취향은 돌고돌아 베르터에게로 돌아오는 것일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린다. 자유를 견디지 못했던 말. 사실 자유는 그것을 갈망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리는 허상일 것이다. 미지에 대한 갈망. 그것이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곧 익숙해지고 또다른 미지에 고개를 돌린다. 끊임없이. 계속.
그렇다. 스테프의 떠돌이 생활이 더욱 낭만적으로 보였던 이유는 결국 스테프가 정착할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안정할 수 있는 따스한 그런 곳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그의 떠돌이 생활이 낭만으로 남을 수 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 네가 스스로 십 대라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로 십 대일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그건 맞아." 파이어스타가 말한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지금껏 했던 얘기가 전부 거짓이라면, 쟤가 죽는다고 네가 신경을 쓸까? 그럼 죽은 사람은 네 친구가 아닌 거잖아. 네 친구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야. 네가 모르는 낯선 사람이 돼 버리는 건데, 네가 모르는 사람들은 매일 죽고 있어." - P292
문자메시지들만 생각하지 않으면 여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아무도 찾을 수 없다. 지도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에서도 빠져나와 정지해 있는 것 같다. 이사할 때마다 엄마가 찾던 것도 이런 느낌이었겠지. 새로운 곳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어떤 장소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느낌이 사라졌을 때 엄마도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아니면 이사하려고 길을 나설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한다. 더 이상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다. - P323
이런 사례가 셀 수 없이 많아. 의무론자들, 아, 뭐냐면, 종교적 계율이나 <마오 주석 어록>같은 엄격한 윤리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은 말해. 아무튼 그런 사람들도 대체로 정말로 싫은 건 어떻게 해서든 에두르는 방법들을 찾아낸단 말야. 결국 인간 대부분에게 윤리적 행위란, 다른 사람에게 애착을 느끼고 그들을 향한 보살핌과 관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AI를 만들려고 했어.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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