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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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없는 일상은 삶을 편협하게 만든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평소에 곧잘 품곤 하는 의문점이 얼마나 소중한가 깨닫는다. 일상을 고찰없이 살아가면 흥미를 느끼는 책의 폭이 좁아진다. 평소에 의문점을 많이 가졌던 분야의 책을 읽을 수록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고 반박하면서 그렇게 책 속으로 더욱 빠져들고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인간 뇌의 '가소성'이라는 특징 덕분에 우리의 뇌는 외부자극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현재 인터넷은 이런 뇌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곧잘 읽었던 장편소설이 버거워지고, 한가지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자꾸만 sns상의 단편적인 뉴스에 관심이 가고 휩쓸리는 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이 유비쿼터스가 되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뇌가 이렇게 급격하고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이 종착지를 모르는 거대한 파도에 부표마냥 휩쓸리고 있다는 점이랄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계속 카카오톡의 메신저를 확인하고 불쑥불쑥 이메일의 답장을 떠올린다. 이전에는 간단해 보였던 이 글쓰기 화면창에 숨겨져 있던, 인지하지 못했던 수많은 distraction의 향연이 이제는 보인다. 작업표시줄을 가득 메운 아이콘부터, 메뉴창, 빼곡히 들어 차있는 북마크 주소, 그 위에 옹골차게 올라앉은 크롬 확장 메뉴에까지 시선이 닿자 갑자기 버겁다. 아이콘들이 마구 소리치는 것 같다. 내가 글쓰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조용하고도 맹렬하게 악을 쓰는 것 같다.


이제는 알겠다. 생각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왜 종이에 손이 갔는지를. 아무것도 없는 누런 종이는 나를 사색의 길로 이끈다. 비록 생각의 속도를 손이 따라가진 못하지만, 꾸역꾸역 그 길을 걷다 보면 끝에는 고요가 나타난다. 나를 차분함과 성찰의 길로 이끄는 무엇들. 그것은 인터넷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그것들이다.


나는 다가오는 미래를 무조건적으로 암울하게 보는 쪽에는 별로 공감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제외하고 말이다), 책에서 말하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결국 우리 사회가 무조건적인 선동이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봉착하고 말 것이라는 의견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미 우리의 역사는 선동의 역사가 아니던가, 하는 생각을 하는 쪽이다. 책의 중반부쯤 나온 구절, 많은 대중이 생각을 하고 책을 읽던 시대는 예외적인 현상이었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많은 대중이 책을 읽고 고찰했다는 그 시절마저도 막상 파헤쳐보면 은밀한 선동과 세뇌의 흔적들을 적지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다가오는 미래도, 무엇이 더 안좋게 변한다기 보다는, 그냥 가치판단이 제외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무엇이 더 바람직 하고 그렇지 않은가를 따지는 것은 정말이지 무용한 질문 아닐까.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세계는 계속해서 변모할 뿐이다. 개개인에게 맡겨진 것은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그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원래 대중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생각한다고 착각할 뿐이다. 아마...나 자신도 그럴 것이다. 나 자신 또한, 한줌 시야에 보이는 대중들을 우매하다 여기고 있지만, 나보다 식견이 더 넓은 그 누군가가 나를 바라볼 때면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커다란 안타까움과 가여움을 느낄것이다. 









글로 써진 단어는 "기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상기시키기 위한 재료이며, 제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진정한 지혜가 아니라 껍데기일 뿐"이라고도 말했다. 또 지식을 위해 읽기에 의존하는 이들은 "많이 아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무것도 모른다"라고도 말했다. 그들은 "지혜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 대한 허영으로 가득 차게 된다"라고도 했다. - P99

인쇄된 책을 읽는 행위는 독자들이 저자의 글에서 지식을 얻기 때문만이 아니라 책 속의 글들이 독자의 사고 영역에서 동요를 일으키기 때문에 유익하다. 오랜시간, 집중해서 읽는 독서가 열어준 조용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연관성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유추와 논리를 끌어내고 고유한 생각을 키운다. 깊이 읽을 수록 더 깊이 생각한다. - P114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고요함의 의미와 사고"의 일부였던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이는 계속 감소하는 소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중략)
우리의 독서 습관에 있어 최근의 변화들은 "대중적인 독서의 시대"는 우리 지적 역사에 있어 짧은 "예외"였음을 암시한다고 썼다. "독서는 예전처럼 사회적 기반의 소유물, 즉 독서 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소수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라는 것이다.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질문은 독서계층이 "점차 드물어지는 문화적 자산의 형태와 관련해 힘과 특권을 지니게 될지 또는 점차 비밀스러운 취미를 행하는 특이한 이들로 보여질지"의 여부다. - P182

Ari Schulman은 2009년 <New Atlantis>에 기고한 ‘Why Minds Are Not like Computers‘라는 글에서 "모든 증거에 따르면 사고는 컴퓨터같이 깔끔하게 분류되는 체례라기 보다는 그 구조와 인과관계가 얽혀 있는 체계임을 알 수 있다. 사고의 변화는 뇌의 변화를 부르고, 이는 그 반대 형태로 일어나기도 한다"라고 했다. - P286

새로운 장기 기억을 저장할 때 우리는 정신적인 힘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 기억을 확장할 때마다 지적 능력은 향상된다. 인터넷은 개인적인 기억에 편리하고 매력적인 보조물을 제공하지만 인터넷을 개인적인 기억의 대안물로 사용하면서 내부적인 강화 과정을 건너뛴다면 우리는 그 풍부함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 P310

웹은 이와는 다르다. 이는 고차원적 추론 능력에 써야 할 자원을 다른 곳에 사용하게 할 뿐 아니라 장기기억의 강화와 스키마의 발전을 방해하며 작업기억에 더 많은 하중을 가한다. 강력할 뿐 아니라 매우 특화된 도구인 계산기는 기억을 보조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망각의 기술이다. - P311

이를 ‘오귀인, misattribution‘현상이라고 설명하는데, 온라인에서 정보를 모을 때 사람들은 실제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고 지적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정보의 시대‘의 도래는 실상 세상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모르면서, 그 이전의 어떤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세대의 등장을 가져왔다"라고 결론내렸다.
(중략)
전화기가 그 안에 존재하는 프로파간다, 독단적 도그마, 증오 등으로 당신의 식견을 무디게 해놓을 경우 당신은 전화기가 쏟아내는 어떤 정보라도 믿을 것이다. 자신의 지능을 과대평가한다면 기만적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행동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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