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페스트 (한글판+영문)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172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4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난 소설의 탈을 쓴 철학소설. 초반부터 중간 중간 작가의 사유가
만연체로 전개되는데 이는 4부에서 정점을 찍는다. 특히 4부 후반부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타루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그때서야 나는 이 소설이 단순히 스릴
넘치는 재난소설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페스트가
장악한 도시. 그 안에서 전개되는 여러 인물들의 삶을 통해 카뮈는 신이 없는 시대,
이전시대까지의 견고했던 도덕적 잣대가 사라진 시대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기준을 보여준다. 1947년도에 간행된 소설이지만 여전히 현대사회에 접목시켜 생각할 부분이 많다. 다양한 등장인물 중 다섯 명의 사람에 대해 논하고 싶다.
1.장 타루
카뮈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닐까. 장 타루는 신이 없는
사회에서 성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자이다. 4부에서 타루는 리외에게 자신의 역사에 대해 털어놓는다.
…(중략) 간단히 말하자면, 리외, 나는 이 도시와 전염병을 만나기 훨씬 전에 이미 페스트로
고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과 똑같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세상에는 그걸 모르거나 또 모르는 상태에서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알고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나는 항상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어
했어요…(중략)
이
책을 기점으로 ‘모르거나 또 모르는 상태에서 잘 지내는 사람’에서 적어도 내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상태를 자각하는 데 한걸음 내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타루처럼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타루는 우리 모두가 페스트 환자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페스트 환자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간다. 물론 타인에게 기쁨이 되는 순간들도 있겠으나 부정적인 요소의 특성상
이것들은 긍정적인 것들보다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타루는 그가 페스트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아
정치를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페스트가 더 구체화 된다. 페스트. 그것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무엇이다. 그가 말하는 ‘우리 모두가 페스트 환자’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하는 무수한 행동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타인의 죽음에 일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선량하다고 해서 수단까지 선량할 수는 없는 것이 정치이고
그는 이곳에서 또한 좌절을 맛본다. 정치야 말로 페스트가 들끓는 곳이었고 사람들은 괴로워하는 그에게
말한다. For the greater good, sacrifices must be made.
…(중략) 물론 우리 역시
경우에 따라 사형선고를 선언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몇몇 사람의
죽음은 어떤 사람도 더 이상 살해당하지 않을 세계를 가져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하곤 했죠. 어떤
점에서는 그것은 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쩌면 나는 이런 종류의 진실을 견지할 능력이 없었습니다…(중략)
…(중략) 선량한 사람들이
잠자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연히 나쁜 맛이 남게 되니, 맛이란
곱씹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아요. 하지만 나는 그 무렵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나쁜 맛이 계속 입 속에 남아 있었는데, 그 맛을 곱씹었어요. 다시 말해 그것을 생각했던 겁니다…
…나는 그때 적어도 내 경우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페스트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분명 페스트에 맞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 온 세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내가 간접적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숙명적으로 이런 죽음을 유도한 행위나 원칙을 선이라고 여김으로써 그것을 야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해서 오늘날에는 너도 나도 가장 많이 죽이려 듭니다. 그들은 모두 살인에 광분하고 있고, 달리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오늘날에는 이런 일을 막을 수 없고, 또 우리는 사람을 죽게 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 나는 이걸 알게 되어 계속 부끄러웠으며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또 그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적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있습니다…
…결코 멈춰서는 안될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선량한 사람, 거의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을
안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방심하지 않으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긴장해야
합니다!
…역사를 만들 사람들, 그건
다른 사람들 입니다. 나는 또한 내가 이 사람들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나에게는 이성적인 살인자가 될 자질이 부족해요. 그렇다고 이게 우월성은
아닙니다…
기나긴
타루의 독백을 보다보니 이전에 전쟁터의 장군들과 성인으로 추앙되는 역사적인 인물들, 그리고 현대의 정치인에 대해 했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결국 그들이 어떤 기치를 내걸던 희생자는 발생한다는 점이 그것인데 혜택을 보는 사람만큼 피해를 보는 사람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중 가장 밑바닥에 있었던 사람일 수록 그것을 더욱 처절하게 느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쟁영웅이 타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참함을 초래한 학살자가 되는 것처럼...
20.08.25.
위 감삼은 20.08.02. 거의 한달 전에 책을 읽자마자 쓰기 시작한 리뷰인데 중간에 배고파서 적다 만 뒤로... 지금 다시 열어보게 되었다. 타루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글쎄. 그는 인간이라는 것의 가치를 너무 높게 평가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도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시혜적 관점의 맹점에 빠져버린 것이 아닐까? 인간도 결국 동물이다.. 그저 사회적 동물로서 수천년의 역사를 지내오면서 동물적 본능의 표출이 다각도로 섬세화 되었을 뿐이다. 이 사회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엔..글쎄 모든 인류가 행복한 사회, 그것이 가능할까? 아(我) 와 비아(非我)를 구분하고 끊임없이 아(我)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이하는게 인간 아닌지.. 하여튼 그래서 신이 죽은 사회에서 성인이 되고자 하는, 스스로는 타인에게 페스트가 되지 않고자 하는 타루의 삶의 태도는 매우 인상깊었다.
아니 리뷰 다시 읽어보니 너무 웃기는군. 다섯 명에 대해서 논하겠다고 했는데 장타루만 쓰다가 기력이 빠져서.. 아마 다섯명은 장타루, 의사 리외, 공무원 장?, 그 범죄자 코타르 그리고 신문기사 랑베르, 그정도가 아니었을까... 어쨋든 장 타루라는 인간이 가장 인상깊게 남는다.
만연체가 만연한 카뮈의 페스트..번역본으로 봐도 만연체가 얼마나 만연한지 종종 읽기 지루했다..페스트..글쎄.. 아마 한 50, 60대 중반 쯤 내가 인생에서 만난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진심으로 측은지심을 느끼고 인간삶에 대해 고뇌할 때 다시 읽어보면 가슴 절절하게 와닿을지도..
페스트가 뭐기에?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