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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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흥미롭게, 재밌게 책을 읽은 후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건……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善)한 본능. 의미 있는 일에 대한 참여욕구. 

인터넷을 도구로 무언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사회적 이슈에 끌리고 쏠리고 들끊는 현대인들에 대한 이야기. 새로운 사회상과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새로운 대중에 대한 고찰. 신지식과 새로운 조직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치고는 좀 낭만적이다. 사랑하는 마음과 선(善)한 본능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고 그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고, 급속히 때로는 천천히 진화해 가는 인터넷 공간. 저자는 가히 혁명적이라는 말로 이 엄청난 변화의 세기를 표현하고 있다. 중요한건 그렇게 변해가는 세상의 중심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벨로루시의 아이스크림 몹, 가톨릭 평신도들의 반란, 라이프치히의 시민들, ‘도난당한 사이드킥’ 등등의 사건들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들은 의외로 간단하다. 신속하며 간단하고 광범위한 인터넷 도구의 사용으로 빠른 속도의 정보 전달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가 바로 그것이다. 과거 정보의 유통이 매우 경직된 구조에서 귀찮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가능했다면 현대는 클릭 한번으로 엄청난 정보가 전 세계의 유저들에게 광속으로 전달된다. 사람들은 스스로 사회적 이슈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서면 조직을 만들고 뭉치고 행동한다. 이러한 일련의 조직화와 행동에 걸리는 시간 또한 과거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다. 휴대폰 하나면 누구든 이 혁명적인 인터넷 망의 일원이 될 수 있고 누구든 정보를 생산하고 전파할 수 있다. 기존의 막대한 비용과는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비용으로 말이다.

전통적인 정보 유통, 과거의 조직화 이론, 기존의 소비자 집단과 비교 할 수 없는 속도로 변해가는 새로운 사회, 대중이 탄생한 것이다. 탄생과 더불어 그 변화 속도는 혁명적이다. 유저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위키피디아가 브리태니커의 아성을 무너뜨렸고, 핸드폰 문자로 시작된 시민들의 행동은 한 나라의 정권을 굴복시킨다. 8절판 인쇄물로 인쇄혁명에 작은 기여를 했던 현대판 마누치오들이 전 세계에 수십만 명으로 불어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터넷 혁명을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플랫폼을 통해 공유하고 협력하고 행동하는 새로운 패턴의 대중들이 또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소극적인 자세로 현재의 변화를 일시적인 유행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변화의 핵심은 기존의 상식을 버려야만 체득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는 사실이다. 유사 이래 인간에게 가장 급격한 사회조직의 변화와 대중의 근본적인 변화의 시대가 함께 도래 한 것이다.

‘반면 사회적 도구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이런 도구에 대한 통제는 카약 조종과 훨씬 더 비슷해졌다. 기술적 환경에 크게 좌우되는 물길을 따라, 빠르게 떠밀려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도구들의 확산에 대해 약간의 통제력은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을 되돌리거나, 멈추거나, 하다못해 홱 돌릴 수 있는 정도의 힘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목적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중심을 잃지 않고 몸을 똑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룹 형성을 촉진하는 도구들의 발명은 일반적인 기술적 변화라기보다는 이미 일어나 버린 사건에 가깝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과연 이런 도구들이 확산될 것인가”, 또는 “사회의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사회는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 가” 이다.’ p.319-320

웹2.0세대들로 대표되는 현재의 인터넷 공간. 이 변화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분명 사랑과 선한 의지로 또 의미 있는 일을 위하여 모여서 협력하고 이야기하고 때론 행동하고 있다. 기술적 도구의 발전이 아무리 변화무쌍하더라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선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 나가는 수많은 웹상의 그룹들은 그래서 아름답다. 얼마 전 우리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청계광장에서 시청 앞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아니 지금도 진행형인 끌리고 쏠리고 들끊는 현재의 대중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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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라면 교양 2
하승우 지음 / 뜨인돌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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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구실을 한다는 말이 있다. 근데 그 사람구실이란 것이 체제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몸으로 익히는 것이라면 군대를 가야하는 건 맞다. 또 군대 가면 인간돼서 돌아온다는 말이 정신이 황폐해지고 단순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군대가 인간을 만드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군대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남자들은 쉽게 우리사회의 병영문화와 잘 적응하고, 수직구조의 사회 시스템과도 잘 어울린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군대는 우리나라에서는 별 문제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매우 고도의 인간개조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이 독특한 군대문화는 우리 국민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반감시키는 동시에 지구촌 인류가 지향하는 절대적 가치인 평화와 공존의 흐름을 역행한다.

국가가 상비군이라는 직업 군대를 유지하게 된 것은 많이 가진 사람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국가가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확보와 식민지 경영 그리고 강대국 간의 식민지 쟁탈을 위해서였다. 냉전의 분위기에서는 군대와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연관된 듯 보였지만 본질적으로 군대의 필요성은 자본과 돈의 논리에서 좌우된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어찌 보면 각국의 군인들은 돈을 위해 싸우는 용병과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다.

국익을 위해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민간인들의 목숨을 빼앗고 그네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군대의 징집을 반대하고,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아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는 군대를 없앤다는 가정을 통해 인류의 진정한 평화를 위한 해법을 제시한다.

종교적인 이유와 평화의 신념으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비겁자도 아니고, 매국노도 아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공통된 의무이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과 주변 열강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이유 때문에 스스로의 양심을 거스르고 총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는 한 인간의 양심을 자유를 철저히 유린하는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꼭 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대체복무의 기회를 만들고 정비해서 평화를 위해 총을 들지 않는 대신 범죄자가 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인권을 지켜주어야 한다. 나아가 구태의연한 국민개병제를 포기하고 모병제를 거쳐 종국에는 군대 없는 국가로 발전해 나가야한다. 국민의 의무라는 이유로 신성시되는 병역의 의무에 관한 논의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 그리고 논의의 끝은 잠정적으로 군대가 없는 사회로 향해야 한다. 아직 이러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성숙한 사회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우리나라에서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양심에 의해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용감한 사람들이다. 알면서 침묵하며 사회와 타협하는 대다수 사람들에 비하면 말이다.

인류는 전쟁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기에 평화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늘리고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고 말이다. 맹목적인 국가주의와 애국심을 버리고 “환대”라는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자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덜 쓰고, 덜 소비하면서 가난하지만 타인을 끌어안고 환대하는 분위기가 개인과 사회를 넘어서 국가 간에도 이루어진다면 우리 인류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과거 가난했지만 안정적이었던 시대에 돈이나 경제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맞이하고 환대해서 돌려보내고, 열 사람 각각의 밥 한술을 덜어 한 사람 몫의 밥을 더 만들어내는 지혜가 절실하다. 군대를 없애면 나라가 망할까? 현재와 같은 경제구조와 국제관계에서 보면 군대 없는 나라가 망할지도 모를 일이겠다. 하지만 지독히 자본위주로 돌아가는 매우 비인간적인 현재의 세계를 바라본다면 머지않아 군대를 운용하는 국가들 때문에 인류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지금의 경제구조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통해 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군대가 없는 나라는 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대가 사라지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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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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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벽두를 장식했던 1, 2차 세계대전을 돌이켜 보면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제국주로로 인해, 더 나아가 경제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로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실상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과거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정책과 맞물린 제국주의 팽창으로 인류를 커다란 비극으로 치닫게 했던 서양역사의 한 장면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에 오버랩된다는 주장은 섬뜩하고 오싹하다. 게다가 책에서 지적된 동북아시아의 전쟁위기론을 현 정권의 자원외교와 경제정책기조 그리고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점점 보수적 경향의 민족주의적 단결을 주장하는 중국과 일본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미래예측일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회가 혼란해지면 당연히 강력한 민족주의가 대두되기 마련이다. 이를 제어 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전쟁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는 먹고 살기위해,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전쟁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또 그런 상황이 충분히 가능하며 점점 전쟁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의 전쟁위기는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의 경제시스템에 그 원인이 있다. 초고속 경제성장의 과정에 있는 중국은 막대한 자원을 소비하며 그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한 중국경제에서 자원은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버린지 오래다. 이는 해외에서 대부분의 자원을 얻어야 하는 우리나라와  일본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시간이 문제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남중국해의 자원수송로가 동북아 삼국의 전쟁기폭제가 될 장소로 지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중국은 유럽연합의 나라들처럼 자원에 대한 의존력이 낮은 경제시스템으로 전환하기에 구조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점점 가속화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필연적으로 양극화문제를 야기한다. 책에 언급됐듯이 극단적인 소득분배의 양극화는 경제구조를 불안정한 8자형  경제구조에서 점점 이중국가로 치닫게 한다. 소수의 최상류층과 다수의 빈민층으로 양분되는 두 개의 시장, 두 개의 국가로 단절된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그 연장선에 강력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점령된 암울한 미래가 보인다. 이는 중국도 예외가 아니며 일본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제구조로 인해 발생한 국내 문제와 불안을 해결한다는 명목아래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인해 이성이 마비된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전쟁이란 항상 경제혼란과 함께 형성된 민족주의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에서 한,중,일 삼국의 전쟁위기론이 힘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고유가를 통해 본 에너지 수급의 문제와 이를 동반한 국제 곡물가의 폭등으로 인한 식량대란의 위기, 해가 갈수록 강도가 심해지는 기후변동과 맞물려 동북아시아 삼국은 점점 어두운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에너지를 놓고 벌이는 일촉즉발의 위기는 몇 년내에 우리 눈으로 확인 할수있을 것이고,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상황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배타적인 국가간 대립은 현재에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의 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북아시아 아니 우리나라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현재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전쟁의 위험은 평화시에 대비해야한다는 단순한 이치에 대해서도 일반 국민들은 무관심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전쟁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하더라도 과거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역사적 사건들과 유사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배운 내용을 제대로 접목시키는 능동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능동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쟁을 통한 성장이라는 허상에 기대어 경제만 잘 되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위험한 생각 속에서 말이다. 종국의 비참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 그나마 현재 유지되고 있는 평화시기에 우리는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다양한 평화정착론에 대한 내용은 책을 통해 정보를 얻기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니 인류의 사고 방식의 변화만이 잠정적인 평화를 약속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화에 대한 숭고한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세계는 여러 민족으로 나뉜 개별자가 아닌 모두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촌놈들처럼 우리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사고를 버리고 평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지혜를 보여야 할 것이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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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바꾼 기다림의 리더십 - 독일 최초의 여성 수상이 연출하는 '빈약'의 미학
하요 슈마허 지음, 배인섭 옮김 / 아롬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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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방 하나를 차지한다. 다음에는 두 개, 곧 세 개, 언젠가는 한 층을 점유하고, 결국에는 건물 전체를 차지하게 된다. 슬그머니 스며든 불법 점유자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저항에 부딪히는 일이 없다. 그리고 어느 날, 몇 년 전이라면 아직 정치적 재산권으로 여겨졌을 일이 아주 당연하고 합법적인 일이 된다.

앙겔라 메르켈은 불법 점유의 전형적인 순서를 밟아본 적이 있었다. 첫 번째 남편 울리히 메르켈과 이혼한 이후 베를린 마리엔 가로 옮겨 친구들과 함께 방을 나누어 썼다. 곧 동료들이 거처를 찾아냈다. 마침 비어 있었던 프렌츠라우어베르크의 허름한 거처는 분명 국가 주택공급 관리시스템에서 누락된 것이었다. 메르켈은 그 거처로 옮겨 자신의 새로운 성을 쌓기 시작했다. 집을 조금 고치고 얼마 지나서는 주택관리청에 월세를 송금했다. 몇 년 후에 재개발 사업을 이유로 모든 세입자들은 새로운 주택을 배정받았고, 그 과정에서 메르켈은 저절로 합법화되었다. 앙겔라 메르켈은 공손한 게릴라의 모습을 지켜나갔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조사 과정을 넘겼다. 메르켈이 사용한 트릭은 단순하다. 계속해서 관습에 따라 행동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투입한 비용은 미약했지만 최대의 성공을 얻었다.」 - 본문중에서(p.72~73)


동독출신, 여성, 이혼녀, 개신교도, 물리학자.
빈약과 기다림 그리고 인내와 귀납적으로 분석하기.
최초의 여성 총리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을 이르는 말들이다.

동독출신이자 물리학자라는 정치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카톨릭 성향의 독일 기민당을 제압하고 결국 총리라는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녀가 가진 강력한 무기란게 어찌보면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기다림 바로 기다림이었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서서히 본질을 파고 들어가는 인내심이 거기에 더해진다. 보수성향이 짙은 기민당에서 동독출신의 물리학자의 정치적 성공은 그리 만만치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기다릴 줄 알았고, 천천히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며 거대한 남성중심의 권력집합체인 정치권력을 서서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 누구에게도 위협적이지 않게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가며 스스로의 역량을 펼칠 기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이다. 이는 포퓰리즘에 덫에 걸려 감정에 휩쓸려 일을 그르치는 많은 남성 정치인들과는 차별화된 전략이었다.

그녀가 가진 또 하나의 무기는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을 토대로 한 귀납적 추론 능력이다. 대부분 정치인이 법률이나 정치 혹은 언론관련 학문을 전공한 것과는 달리 메르켈은 탄화수소를 연구한 물리학자였다. 확고한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통해 모든 현상들을 이해하고 정립하는 연역적 방식은 많은 법률가 출신 정치가들의 일반적인 사고 방식의 흐름이다. 일의 원칙을 결정한 후 일사천리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일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요즘과 같이 다양성이 존중받고 그 다양성으로 인해 정치적 생명이 결정되는 시대에 다양한 의견들과 다양한 세력들의 균형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에는 연역적 추론 방식이란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이에 반해 자연과학적 실험주의를 바탕으로 한 귀납적 사고 방식은 모든 사안에 대해 포괄적인 이해가 가능하고, 다양한 주장들을 통합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배경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정치에 있어 힘의 균형과 권력의 배분등을 에너지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메르켈의 두뇌는 정치적 힘을 단순하게 권력의 연장선에 놓지 않고, 힘과 작용, 상호관계등을 포괄적으로 읽어낸다. 또한 모든 정치적 행동을 실험의 연장에 놓고 최종적인 목표인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탐구한다. 이는 치밀하고 정확한 실험주의자의 모습을 지닌 메르켈의 절대적인 강점이다.

기다림과 인내를 기본으로 한 그녀의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이 그녀를 정치적으로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메르켈이 단순히 조용하게 기다리고 항상 인내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을 때 그녀는 전통적인 우호관계였던 미국을 지지했었다. 자국과 기민당내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실용을 위한 동맹의 강화를 선택했고 결국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통해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즉 확고한 신념이 바탕이 되었을 때, 확실한 의지가 섰을 때 그녀는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나아가는 추진력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유대인 관련 연설로 기민당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호만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당이든 정치권력이든 장악 할때는 드러나지 않게 서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일을 진행하지만 일단 결단이 서면 단호한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 그녀의 진면목이며, 이전 콜 총리의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졌을 때 그의 은퇴을 요구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또다른 메르켈의 잠재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보수와 실용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독일의 메르켈은 현재 우리나라 정부와 많은 부분이 겹쳐진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부와 메르켈은 많은 부분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관용과 인내 그리고 적절한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메르켈의 능력이 부러운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가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통해 국민 대부분의 지지를 얻어 일관된 자세로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메르켈의 능력은 약해보이면서도 강한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합의와 협조를 위해 항상 열려있는 세심한 마음은 분명 여성 총리가 지니는 장점이다. 통제보다는 책임있는 자리에 사람들을 중용하는 자세 또한 부드러운 배려심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항상 귀를 열어두는 그녀의 자세는 이시대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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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 - 미국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가치 있는 가정들 라면 교양 1
김준형 지음 / 뜨인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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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문제에서 가장 골치아픈(?)것이 있다. 바로 증명하는 것인데, 단순한 계산력만을 수학이라고 배운 아이들은 논리적으로 수학공식이나 수학개념들 혹은 도형에 대한 증명문제에서 많이들 어려워한다. 특히 당연하다고 받아 들이던 개념들을 증명하라는 문제에 맞닥뜨리면 아이들의 표정은 굳어진다.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수학개념을 증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것이 귀류법이라는 방법과 대우증명법이라는 방법이 있다. 결론을 부정하거나, 주어진 명제의 부정에 가정, 결론 자리까지 바꾸고 증명에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냥 보기에 까다로운 증명문제 가운데는 이렇듯 문제자체를 뒤집어 봄으로써 쉽게 풀리는 문제가 많다.

이 책은 미국에 대한 책이다. 미국에 대해 미국의 패권과 국제 정세 그리고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에 대한 책은 그동안 적잖이 출판되었다. 그런 미국 관련 책들과 비교해 책은 약간 독특하다. 부정이라면 부정이고 비틀어보기라면 비틀어보기랄까 있는 그대로 미국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차근차근 서술하지 않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구성자체가 우선 신기했다. 미국이 이랬다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주위를 환기시키고 책 속에 집중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 가정이란게 패권국가 미국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기에 단순히 이렇다라고 서술되어 있는 여타의 책보다 확실히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들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책의 구성도 알차다. 크게 네개의 섹션으로 구분하여 각 섹션별로, 의미 있는 가정으로 시작하고 전체적인 내용들을 간략하게 비틀어 보고 난 후 소주제에 맞게 유기적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게다가 내용이 쉽게 전달되고 있고, 좀 어렵다 싶으면 부연설명 또한 친절하다.

2차대전 후 스스로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성장해 온 미국에 대한 평가와 견해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속성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경제대국이며 군사대국 그리고 문화대국이기까지 한 미국이 현재의 막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던 고립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사실 이외에 미국 스스로 경쟁의 룰을 만들어 왔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룰이 정해져 있다면 당연히 그 룰를 정한 쪽이 패권을 차지하기 쉽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패망을 통해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충분한 시간과 소프트 파워였다는 교훈과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쟁의 룰에 군사력 이외에 경제력과 문화적 힘을 혼합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규칙을 만들어 나가며 패권을 움켜진 미국이라는 나라는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부시행정부의 탄생과 9.11사태로 피크를 찍은 현재의 미국은 더이상 유연하면서도 강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예전의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은 분명 흔들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위시한 아시아 강국들의 블록화와 유럽연합 그리고 전통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남미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하드파워만을 신봉하며 기독교 근본주의에 입각한 미국의 폭력적인 군사정책들은 패권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을 점점 깍아내리고 있다.

국제정세의 변화 즉 미국의 패권이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과 혈맹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가 한미동맹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한다. 책의 4장에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이 이야기 되고 있다. 미국를 대놓고 무시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지금까지 유지해온 것처럼 미국의 행동대장 노릇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변하는 세계에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능동적인 대처 방안 중 가장 시급한 것이 바로 한미관계를 재조명하고 우리의 실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쇠고기 수입 사태에서 보인 일방적인 대미관계는 분명 구시대적인 한미동맹의 맹점을 그대로 확인시켜준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과거를 비틀어보기도 하고, 가치있는 가정을 통해 현재의 문제들을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었다. 특히 그 대상이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꽤나 흥미롭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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