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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방식 - 서로 기여하고 번영하는 삶에 관하여
베론다 L. 몽고메리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22년 4월
평점 :
옥수수, 호박, 콩은 세 자매 농법의 주인공이다. 옥수수는 콩이 타고 자랄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콩은 질소 고정을 통한 비료로, 호박은 잡초를 억제하고 수분을 유지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북미 원주민 부족이 오래전부터 사용한 농법이란다. 이들 세 자매는 기막힌 타이밍으로 서로에게 가장 효과적인 협력체로 작동한다. 바나나와 카사바를 함께 재배하는 경우와 같은 복합작물재배의 선지자쯤 된다고 한다. 우리가 이 세 자매를 주목할 이유는 바로 호혜성이다.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다는 그 호혜성말이다. 본질적으로 옥수수와 호박 그리고 콩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삶을 산다. 중요한 건 자신의 행위가 남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호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각각의 전략이 한데 어우러져 호혜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책에 “호혜적 교차먹임”이라 표현된 세 자매 농법은 매번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인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 해법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냥 정답이라 하겠다.
사실 별 관심 없었다. 강원지사가 누가 되던.
이젠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분법이 무색해진 거대 양당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있으니 양당에서 한명씩 나온 선거에서 누가 지사가 되던 말든 딴 세상 얘기였다. 그런데 후배의 권유로 본 토론 영상 속 두 후보는 내 예상과 사뭇 달랐다. 서로를 헐뜯고 할퀴던 대선토론의 연장쯤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상대의 공약을 주의 깊게 듣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토론이었다. ‘내가 도지사가 되면 당신의 공약도 추진하겠다.’, ‘그렇다면 내가 낙선해도 도지사가 된 당신을 돕겠다.’라는 식의 훈훈한(?) 토론이었다. 네거티브가 전부였던 대선 피로감을 의식했든 아니든 신선했다. 협잡과 야합이 난무하는 정치판 속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공중파 토론 방송에서 양당의 두 후보가 협력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인 것 만으로도 난 감동(?)했다. 이것이 바로 세 자매 농법이 아닌가? 두 후보의 협력은 스스로의 정치적 성공을 위한 바탕일지 모른다. 인간이 주고받는 호혜성은 뭔가를 얻기 위한 밑밥일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를 깍아내리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행위는 식물보다 못한(식물을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후진 행동이다. 공생을 위한 호혜성은 혐오와 차별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현재 대한민국에 필요한 가장 효과적인 백신이다.
식물은 위기를 감지하면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분비해 주변 식물에게 위험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면 좋을 듯싶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니 말이다. 여하튼, 평생 자신이 성장한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식물이지만 어쩌면 식물은 혼자 살 수 없음을 직감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함께 살아가는 생태적 다양성이 생존의 필수임을 유전자에 각인된 그런 존재 말이다. 어쨌든 위기상황에서 식물은 생존을 위해 생명활동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에너지를 아낀다. 이러니 인간보다 나을 수밖에. 우리는 우리가 속한 인간 종을 고등생물이라 스스로 정의한다.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고등한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지능이 높고 주변 환경을 상황에 따라 이용하는 능력이 인간종의 영원한 번성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수 십년 전부터 기후니 식량이니 자연생태니 하며 붕괴의 신호를 접하면서도 눈앞의 이익과 욕망으로 미래를 갈아넣어버렸으니 말이다. 다양성의 이해는 고사하고 우린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적으로 삼고 혐오하기 일쑤니 말이다. 그러니 오만함을 버리고 식물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호혜성만이 아니다. 미래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대비하는 지혜도 배워야한다. 가뭄에 대비해 에너지 절약에 모든 걸 거는 식물마냥 우리는 더 불편하고 더 배고픈 시절을 살아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경험이 가장 적기 때문에 배울게 가장 많다. 우리는 다른 종들 가운데 우리의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그들의 지혜는 살아가는 방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직접 본보기가 되어 우리를 가르친다.” -p.14
여기서 그들은 바로 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