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R. 에비슨 -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샘터 솔방울 인물 12
고진숙 지음, 안재선 그림 / 샘터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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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표정의, 콧수염까지도 깔끔하게 다듬은 서양인 닥터 에비슨의 실물은 아무리
흑백사진이지만 그리 정이 가진 않았다. 이과계통의 공부를 하다보니 정확한 것을 추구하다보니 교수가 된 에비슨의 모습은 까다로운 지식인의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중원의 주사들이 치료에 사용해야 할 돈을 사비로 유용하고 수술실로 써야 할 낡은 건물을 일본인 의사들에게 세를 놓아 장사를 하는 것을 본 에비슨박사가 긴 말 대신 결단을 내린 장면을 보니 그의 차갑도록 냉철한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해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저녁 때 모든 의약품과 기구들을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그, 제중원과는 영영 관계를 끊겠다는 그의 단호함에 수 년을 묵은
조선인 병원관리인인 주사들이 항복을 하는 장면에서 시원함을 넘어 그런 타협하지 않는 냉철함이 아니었다면 망해가는 나라의 관리들을 항복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자신의 조국이 희망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눈치 빠르게 알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들 앞에서조차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대적 배경이 어두운,
더더욱 앞으로 숨가쁜 혼란기가 예상되는 남의 나라에서 에비슨은 어떤 기대와 희망을 보며 40여 년이란 인생을 통째로 바친 것일까! 그의 얼굴로 보아서는 특별히 자비로운 마음이 있거나 사람이 따스해서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쉽게 알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대대로 가난한 공장인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오면서 경험한 사회적 배려에 대한 보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캐나다 이민자의 아들로 살아가면서 11살 때 집안형편 상 공부를 계속하는 것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새벽 6시 30분에 양털공장으로 출근해저녁 7시에 돌아오며 받아오는 봉급에 더 매력을 느낀 에비슨이 그 공장 안에서 만난 인부들의 선생이 되었던 그 일,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들에게 읽기, 쓰기,셈하기 등을 가르치며 그들이 배워야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가르치는 환경이나 조건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일을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제중원의 의사가 되어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을 퇴치하고 옻이 올라 고생하던 고종임금의
병을 치료한 일 등은 여느 선교사들도 했던 일이지만 그만이 했던 놀랍고 선구자적인 일은 역시 '교육'이었다.


에비슨도 처음부터 의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주변 사람들에게 '넌 의사가 될 재목이야!'라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렇듯 의사가 되는 길은 의사 수업을 받을 기회와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되었습니다. 에비슨은 조선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의학생도 없었던 나라에서
그리고 단 7명의 의학졸업생들의 의사면허도 대한제국이 아닌,
일본의 통감부 총독 이토히로부미의 손에 의해 결정이 되고 안 되었던 나라에서
그는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씨앗을 뿌리는 농부처럼 부지런하고 열심히 의학이란
씨앗을 뿌렸다,

사람을 가르치고 만들기에 앞 서 의사를 만들려고 할 때 면접을 온 의학후보생들에게
왜 의사가 되고 싶냐고 묻고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그릇을 찾기에 열심이었던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눈물이 날 만큼 그가 심혈을 기우려 선별한 의학생 7명은 모두가 선생님 소리를 듣는 신세계의 전문직업인이 되지 않고 제 목숨을 먼저 바치는
진짜 '선생님'이 된다. 정신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 그래서 멋있다. 제중원을 맡은 선교사들 가운데 헤론이나 에비슨처럼 신명을 바쳐 죽어가는 환자들의 치료에만 매진한 의사가 있었나하면 찰스.C빈튼과 같이 제중원은 공직이고 따로 의원을 개업해서 그 곳에서
부자환자들만 특별 치료를 했던 의사도 있으니 말이다.

에비슨 역시 7명 이나 되는 자녀들을 둔 대식구의 가장인데 어찌 돈벌이에 관심이 없을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조선이란 남의 나라에서 돈을 벌어가는대신 치료약, 수술만 받으면 살 수 있는 생명이 힘 없이 죽어가는 현실을 보며 그것을 퇴치하는데 생명을 걸었다.
수학과 물리학 등 과학과목에 대한 기초지식이 전혀 없는 조선인 중에서 희생정신이 투철한 학생들을 골라 진정한 의사가 되는 길로 이끌었던 그 에비슨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결단력이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맙다.


세브란스라는 병원건축비를 후원한 실업가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알고 있었지만 올리버 R.에비슨이란 이름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자신도 처음부터 의사가 될 수 있었던 환경이 아니었기에 가난을 경험해 보았던 사람이었기에 의학대학은 물론,의료병원을 꿈도 꿀 수 없었던 우리 나라에 그런 무지막지한 거대한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국경과 종교, 그리고 문화의 차이를 넘어 사람은 누구나 가르치면 변화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라는 타협하지 않은 믿음을 가졌던 에비슨박사의 정신을 나도 꼭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스미스 폴스의 힐크레스트묘지로 찾아가 볼 수 있으면 꼭 그의 언어인 영어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그가 생전에 우리말, 한글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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