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독깨비 (책콩 어린이) 23
마이클 모퍼고 지음, 피터 베일리 그림,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운 글이다! ‘나는 페티그루 아주머니를 위해 아직도 노래하고 또 노래하며 파란 하늘로 사라져가는 종달새를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로 끝을 맺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쉽사리 닫을 수가 없어 회색빛 건물만 우중충하게 눈에 들어오는 창밖을 보며 ‘이 세상에 천국이 있군!’을 혼자서 중얼거렸다. 천국이 죽어서 가는 곳,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행성, 이상향이란 막연한 상상만 하던 내가 천국을 가 본 것이다.

‘바람이 잔잔한 날에는 방파제 너머로 바다가 숨 쉬는 소리가 들려오고 폭풍이 이는 날에는 바다가 용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오. 더운 여름날 오후에는 종달새들이 날아오르며 노래하고 8월 밤에는 별들이 폭포처럼 흐르는 곳이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새들과 별이 하나의 시어들처럼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 풍경을 보며 내가 속해서 살고 있는 세상이 이토록 멋지고 끝내주는 곳이라니 너무나 놀라웠다. 나의 상식 밖의 천국은 너무나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천국을 달리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야생풀들이 끝도 없이 뒤 덮여 있는 그 곳을 빠름이, 더빠름이, 왕빠름이와 함께 자의식이 강한 당나귀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림은 어떤 장식이나 특수기법이 없이 너무나 평범하지만 그 생동감 충만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규칙이나 법칙 따위의 사회적 사슬에서 풀려나 아무런 제한이나 장벽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삶을 살 수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 강요하거나 억압하지 않는 곳, 드넓게 펼쳐진 들판을 아무리 전속력을 내어 달려도 끝이 없는 곳, 사람과 동식물이 제 생긴 대로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의 모습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낡은 기차간을 집으로 개조하여 야생 동식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앉은 그 자리에서 눈만 돌리면 하늘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 천혜의 공간에서 사는 그 맛이 어떨까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천국을 너무나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잡아서 방수 페인트를 칠한 새장에 넣어 어느 때나 볼 수 있도록 집안에 두기도 하고 북극에 사는 흰 곰을 잡아다가 얼음을 띄운 동물원에 가두기도 하고 산을 깎아 잔디를 입힌 후 골프장을 만들기고 하며 그리고 가장 큰 실패는 바로 수 천 가지의 바다생물들이 살고 있는 갯벌을 농지와 상업용지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한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 두뇌가 우수하며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들, 전문가들의 결정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결정에 순순히 따른 것이 정말 큰 실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티그루 아주머니가 살고 있던 그 ‘천국’에 한 번 발을 디뎌보니 자전거에서 떨어져 큰 상처를 입고 친구에게 레몬사탕을 봉지 째 빼앗겨버린 주인공의 앞으로의 이야기보다는 습지의 모습, 우주의 광대한 모습, 인간사의 갈등대신 평소 눈을 뜨고도 미처 보지 못했던 밤하늘의 모습에 흠뻑 취했다. 다른 이웃들과 달리 페티그루여사는 번화하거나 조금 더 편리한 시설을 욕심내지 않고 습지를 원래 상태로 보존하며 그 곳의 원래 주인인 수많은 야생동식물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자연 위에 군림하며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데 급급한 작금의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라 더더욱 인상 깊었다.


그래서 천국을 빼앗겨 버린 페티그루여사가 기차간에 제 손으로 불을 질러 없애는 장면은 제 자식을 죽이는 부모의 심정처럼 무척이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불타는 객실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나타난 실망과 노여움, 허탈감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나 역시 현장에 있었더라면 감히 그 어깨에 손을 댈 수 있었을까 싶다. 쉽사리 값싼 이해와 위로를 건넬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갑자기 페티그루여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 역시 활발하던 당나귀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던 때처럼 황량함과 서러움을 느끼게 했다. 과거를 추억하는 형식으로 되짚어 갔기에 감정을 절제하게 만들었지만 깊은 여운이 남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처음엔 자신들의 마을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반대를 하던 마을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소가 자신들에게 줄 혜택과 이익을 계산하느라 반대의 목소리는 점점 찬성으로 기울어지고 어느새 두 여성의 시위현장에 냉혹한 비난과 적의를 보내던 그 시절의 사람들의 이기심에서 암울하고 답답함을 느꼈다. 수천 년 이래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임에도 항의를 못하는 동물들의 딱함과 순진함이 배가되어 가슴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조금 더 편리하고 조금 더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자 약하고 천진무구한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훼손하는 것을 ‘개발계획’을 세운다고 치켜세우는 두뇌는 우수하지만 천국엔 결코 갈 수 없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시원스레 한 방을 날려 준 이야기였다.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는 사안을 이토록 서정적이며 목가적으로 풀어 쓸 수 있는 작가의 여유와 지혜,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한국에 살면서 ‘대세에 따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우리와 우리 후세대에겐 결코 이 말이 용납되지 않길 바란다. 작은 탐욕에 천국을 팔아버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남아 있는 천국을 지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이런 의식이 높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고 이런 깊이 있는 문제를 책으로 쓸 수 있는 작가가 이 나라에서 많이 나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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