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자서전 - 전2권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지음 / 삼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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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번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자서전을 읽지 않으려 했다. 대통령님을 매일매일 만났다. 남은 분량이 자꾸 줄어들수록 이상하게도 성취감과 만족감은 없고 그 자리엔  초조함과 배고픔, 그리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는 이별의 고통이 들어찼다. 이산가족들이 처음 설렘과 흥분된 마음이 차츰 앞으로 떨어져서 살아야하는 질기고도 깊은 이별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하듯이 날짜가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곱절이 되어 찾아오는, 생살을 찢어내는 이별의 고통,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느낀 고통이 바로 이것이었다.




영화상으로 직접 보는 것도 아닌데, 단지 딱딱하게 굳어진 정형화된 출판물을 대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생생하고 절절하게 1부,2부, 3부로 넘어가며 아플까? 책 속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생명력이 있었다. 나와 같은 땅에서 태어나 같은 조건에서 초월적인 힘이 아닌 맨 살과 뼈를 가진 인간이 찢기며 꺾이는 인생의 도가니를 여과 없이  통과한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이런 눈물은 처음 흘려본다. 활자화된 문자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흐르지 않고 한 서너 시간 쯤 지나서야 한꺼번에 터지곤 했다. 책에서 떨어져 나와 글을 쓰는 지금도 고통이 머리끝으로 저릿저릿하다. 무지와 몰이해가 주는 아픔을, 회한으로 다 터뜨릴 수 없을 만큼 거대했기 때문이다.




이별의 충격과 아픔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2권의 6부는 각별히 읽지 않고 남겨두려 했는데  중단할 수가 없었다. 이희호여사와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는 사진 옆에 또 한 장의 사진, 웃으며 서 있는 이희호여사께 대통령께서 몸을 굽혀 정중하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사진을 본 순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대통령님의 생에 가슴이 뭉클했다. 
 

 
작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의 일이 떠올랐다. 2시에 컴퓨터를 켰을 때 ‘김대중대통령서거’ 라는 제목을 보고서 머리와 몸이 텅 비어버렸다. 악인이 번성하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세상에 진실을 말하지 말하며 눈알을 부라리며 큰 주먹으로 위협하는 다수의 무리 앞에서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분이셨다. 아무리 꺼보려고 다수의 무력으로 짓밟고 뭉개어도 꺼지지 않던 정의와 화목의 성화가 마침내 꺼졌다.  

 

김대중도서관에 처음으로 간 날, 1층 로비에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화통하게 씩 웃고 있는 대통령님의 얼굴 앞에 어머니, 동생과 함께 흰 국화 한 송이를 올려놓았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 사진 옆 국화화병은 없어졌지만 갈 때마다 그 사진 앞에 서게 된다. 작은 감투만 써도 가식적인 웃음을 남발하는 허세 가득한 나라에서 가장 근엄해야할 통치자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마음이 평안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전시관에서 대통령께서 입원 전 마지막까지 입고 사용하시던 옷과 지팡이, 안경, 신발을 보다가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손목시계의 초침이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님의 죽음을 신속하게 순순히 사실로 여기고 있는 가운데 시계와 나는 주인이 잠시 외출했다가 다시 돌아올 것을 굳게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김대중자서전은 총론에 가깝다 특히 1권의 경우엔 1924년 탄생부터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만 74여 년의 기록을 675페이지짜리 한 권에 담았기 때문에 시대별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간략하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1권에 대한 각론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생존해 계신 김대중대통령의 누님, 하의도의 친인척분들, 가족, 그리고 생존해 계시는 민주화인사들의 기억 속의 이야기를 끌어내길 기대한다. 1부 부터 6부 까지 자서전에 이름이 올라 있는 분들이 갖고 있는 자료와 함께 현장에서 본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기록을 담은 각론이 꼭 나오길 희망하며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알아주길 희망한다.이희호여사께서 감수를 하셔야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데 시간이 많지 않다. 



각론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이것이다. 양화진에 묻힌 한 외국인의 묘비를 보았다. 고인은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였다. 깜짝 놀랐다. 그는 이승만대통령의 강권에 못 이겨 한국에 왔다가 결국 과로로 세상을 떠나 그 곳에 묻혔다. 그런데 그의 묘비를 써 준 분은 이승만대통령이 아닌 김대중대통령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재임시절에 몸을 갉아 먹으며 일하셨던 분의 소중한 뜻이 지면의 한계 때문에 싣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휴지와도 같은 책엔 마음껏 비싼 종이를 낭비하면서도 꼭 기억되어야 할 역사적 사건들이 묻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자서전엔 웃음이 넘쳐나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현실은 눈물 나게 혹독했지만 그것을 살아내는 주인공이 긍정적이고 밝았기 때문일 것이다. 첫 째로 대통령께서는 퇴임 후 나운규예술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고서 영화인들의 감사인사에 그만 눈물을 보이셨는데 나는 그만 웃음이 나왔다. 대통령께서 백수시절 화신백화점 5층의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내곤 하셨는데 그 때는 비록 버스비도 없어 궁색하게 지내셨지만 지나놓고 보니 그 때가 아니면 줄 곳 공인으로 살아오신 대통령께서 언제 한가하게 영화 한 편을 맘 놓고 감상하며 사색에 잠길 수 있었겠나. 당시엔 방해꾼 없이 두 편을 내리 볼 수 있었으니 그 보다 좋은 환경은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인생은 뺄 것이 없다’는 말이 진리이다.


 

  
한국전쟁당시 절체정명의 위기의 순간 역시 웃음이 나왔다.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어 재판도 없이 즉결처형을 당할 위기 가운데 하루하루를 목숨을 구명하기에도 모자랄 시간에 지나치게 ‘밥’의 문제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감방에서 배가 너무 고팠다, 밥을 허천나게 먹었다.”라는 표현이 훗날 청주교도소와 진주교도소시절의 감방 속 질긴 배고픔을 암시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사형선고를 받아 놓고서도 감옥에서조차 그렇게 배가 든든해야 좋아하시는 분이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일위원장을 만나러 가는 아침에 콩나물국과 달걀 반숙, 그것도 절반도 제대로 못 드셨다니 그 아침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가 가히 짐작이 갔다. 역사는 그렇다. 과거의 일이기에 역사에 이끌려 가는 군중들은 당시의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역사를 이끌어가는 당사자에겐 공포와 불안감은 현재의 매섭고 거센 눈바람이다. 누구도 가 보지 않은 설원에 온 몸으로 눈 폭풍을 맞으며 도무지 얼마나 걸어야 끝이 보이는 지도 알지 못하는 길을 앞으로 전진만 해야 하는 대통령의 심정, 누구도 모른다.




이 점에서 세상의 이목을 끌기 위함이라거나 권위 있는 평화상을 탐하는 마음에서 북한을 방문했다는 폄하는 수치스러울 뿐 아니라 말의 근원의 저급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5년의 보장받은 권좌에 앉은 대통령 어느 누가 상 한 번 받겠다고 목으로 콩나물국 한 모금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서 55 년 만에 군사경계선을 넘겠나! 다른 사람도 아닌, 발 치 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다섯 차례나 넘기고 살아 남은 김대중대통령의 이야기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질투하고 깍아내리고 싶어하는 악한 인간의 본성은 알지만 이 문제만큼은 절대로 천하고 비열한 인간의 혀가 만들어내는 대로 본질을 왜곡시켜 묻어버리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진실만을 새겨야 한다. 

  

아무리 흉직한 괴물도 함부로 처단하고 소외시키지 않고 직접 만나야한다는 대통령님의 소신의 뿌리는 어디일까? 마태복음(25장 40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함 받고 누명을 쓰고 박해를 받을 때 예수님의 삶을 떠올렸다. 악의 무리에 비폭력으로 저항하면 그 저항이 상대를 깨우치게 해서 결국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믿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무조건 나를 핍박하고 저주했다. 나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조건 매도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의 최후를 떠올렸다. 군중들이 침을 뱉고 욕하며 돌을 던졌다. 그럴 때마다 예수 편에 서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나는 감히 예수 편에 서려 했다. 진정한 용기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다.”



 

예수께서 가신 길을 십자가를 메고 그 뒤를 따랐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결국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불의와 싸우는 것이고 힘 있는 자들에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의 미움을 사고 박해를 받는다. 예수께도 유대 독립을 획책하고 유대의 왕이 되려 했다는 누명이 씌워졌다.” 그렇다. 박해 받는 것을 필연적이라고 이해를 하셨다. 대통령께서는 이것을 아셨기에 한 평생을 진리를 따라 불편한 몸으로 십자가를 지고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성 토머스모어(Saint Thomas More)의 경지에 오르신 것이다. 가혹하고 잔인한 음해와 모함, 국민 선동 앞에서 민주주의는 이웃사랑의 실천이었기에 목숨을 바쳐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알아주지 않는 먹통 세상에 대고 끊임없이 외치고 외쳤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절망해도 다시 힘을 내어 그 길을 완주하셨다.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이것이 김대중대통령께서 이 땅에 남겨진 자들에게 보낸 마지막 가르침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개인적으로 대통령님을 존경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인사치레, 립서비스 정도였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헤아릴 수 있었다. 김정일위원장은 남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괴뢰국 수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음습, 괴팍, 성격 파탄을 넘어 양 쪽 이마에 쇠뿔과 함께 멧돼지의 송곳니를 달아주어도 그림이 나오는 ‘살아있는 악마’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도 희로애락을 느낄 줄 아는, 감정이 있고 사고력이 있는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존엄성을 갖은 인간으로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세계인들로부터 매도당하고 갖은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며 철저히 소외된 채 돌팔매질을 당하는데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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