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변화시키는 두뇌 음식
조엘 펄먼 지음, 김재일 옮김 / 이아소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리핀에 갔을 때 수도 마닐라에서 하루를 보낸 뒤 이름도 생소해서 지금은 잊은 '섬'으로 의료봉사팀과 함께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겨울이었지만 필리핀도 긴 팔을 입은 겨울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에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날씨여서 무척 더웠다.   

 

플래카드를 걸고 진료를 시작했을 때 필리핀의 아기부터 엄마, 허리가 굽어 지팡이에 의지해 온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종 병자들로 금새 넘쳐났다. 천막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환자들은 앉아서 진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제는 10 여 일간 진료봉사팀이 있는 동안 가장 말 발이 센 약사에 의해 일어났다.    

 

태어나서 병에 걸려도 자연요법이나 식품으로만 치료를 해서 대부분이 병원이나 약에 대한 경험이 없어 항생제를 한국인의 1/4 만 써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 약사는 감기 환자에게 조차 10일 분의 약을 지어주면서 항생제를 2알 씩 써서 약 한 봉지에 든 알록달록한 약들이 7-8알이 넘었다. 의사들은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그 약사에게 현지인들에게 한 꺼번에 이렇게 많은 약을 먹이면 내성이 강해져버려 다음에 병에 걸리면 지금보다 더 많은 약을 써야 듣기 때문에 약을 조금만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대형약국을 경영하고 있던 그 약사는 절대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포기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필리핀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항생제의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료인들조차 앞 장 서서 약을 판 이익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데 조엘 퍼먼이라는 이 책의 저자는 그래도 내가 만났던 그 약사보다는 양심있는 의사 축에 드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특히 아이스스케이팅 국가대표로 활약할 때 중상을 입어 다리를 절단하라는 담당의의 소견을 거부하고 단식투쟁에 들어가 다음 해엔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동메달을 따 낼 만큼 고집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졸업 후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되어서 그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아이만을 위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른이지만 모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학적 편견들을 바로 잡아주는데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약은 독이다> 편에 들어있는 항생제 남용에 따른 부작용을 읽는 순간 위에서 언급한 필리핀 의료봉사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욕심 때문에 많은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일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해악을 끼치는 일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배웠다.

 

조엘 펄먼은 단지 식품의 선택에 중점을 둔 것 뿐만이 아니라 의사들이 처방하는 약에 대해서도 경고를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한국인 의사가 쓴 책 가운데 아직까지 이런 내용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의사를 믿어야 병이 낫는다 식의  강요된 믿음만 요구받았는데 이런 점에서 한국의 의료인 가운데서도 조엘 펄먼같은 '이단자'가 속히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얼마 전 읽었던 <병 안걸리고 사는 법>의 신야박사도 동양권인 일본인 의사이지만 자신의 책에서 분명히 '약의 독성'에 대해 경고 하고 있었다. '약을 투여하고 나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약이 가장 위험하고 독성 또한 강하다' 부득이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식품과 좋은 습관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라고 하는 그의 예방의학에 대한 주장은 이 책 <두뇌음식>과도 긴밀하게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즉 일시적이며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은 약에 의존하지 말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시간 동안 계속해서 꾸준히 식생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 식품을 알맞게 섭취하라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유난히 많은 질병을 앓아서 늘 먹는 것에 신경을 써야했다. 식욕도 없지만 먹는 데 드는 시간이 친구들의 배는 들었기 때문에 항상 따뜻하고 소화가 잘 되는 식물성 위주로 식사를 했다. 그래서 체격도 외소하고 밤 샘도 전혀 못하고 조금 무리했다 싶으면 앓듯이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약한 체력을 갖었으면서도 아토피와 거리가 먼 맑고 깨끗한 피부와 분석적인 두뇌를 갖게 되었다. 모두 어린 시절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의 반도 안 먹이시고 통조림이나 컵라면은 손도 못 대게 하시고 약한 딸에게 손수 밤과 사과를 깎아 먹이시는 어머니의 놀라운 의학지식 덕분이었다. 

 

어머니께서는 3대 째 의사로 활동하는 집안에서 자라셔서그런지 무슨 병이든 걸리기만 하면 병원에 가거나 약국에 가던 친구 어머니들과는 달랐다. 열이 올라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도 대부분 찬 물수건으로 열을 내려주시고 아스피린이나 해열제를 먹이지 않으셨다. 대신 훨씬 민망하고 불편한 좌약은 몇 번 쓰시긴 했어도! 그리고 병원에서 처방 받아 온 약도 위를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먹이신 다음 약을 쓰셨다. 빈 속에 약만 달라고 우는 아이에게 져 주신 적이 없었다. 그 때 만큼 어머니가 야속하고 다른 어머니와 다르다는 것이 속이 상한 적이 없었다. 당장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면 될 텐데 왜 저렇게 특별하게 고집을 부리시는 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진짜 친 엄마가 맞는 지도 의심해 보았다. 

 

만약 자상하시고 마음 여리신 우리 어머니께서 약에 대해서만큼은 그렇게 단호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벌써 약물 중독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만큼 의학에 대해 언론에서 선전하는 바를 믿는 대신 정확하고 바른 지식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유익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엘 펄먼이 이야기하는 음식의 선택, 약물에 대한 경고, 식습관, 가족이 동참하는 식탁만들기 등 내 안데 생명을 다루는 정직한 이야기를 담을 때마다 자꾸만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느 의사보다 훨씬 앞 서 있었던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하나의 이론으로 왜 그래야만 하는 지를 어린 자식에게 충분히 납득시켜줄 수는 없었지만 아픈 자식이 독을 달라고 보챌 때마다 눈물을 머금고 펄펄 끓는 자식의 온 몸을 만져주시며 차갑게 식혀주시던 그 손길과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제는 내 주변의 가족들을 보살피고 챙겨주어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과연 나는 우리 어머니께서 내게 해 주셨던 그  반의 반 만큼이라도 진정으로 가족들을 위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가 자문하고 싶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양심적이고 정직한 전문가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